▲KBS '저널리즘토크쇼J' 진행자였던 정세진 KBS 아나운서.
▲KBS '저널리즘토크쇼J' 진행자였던 정세진 KBS 아나운서.

KBS를 대표하는 언론인을 비롯한 87명의 직원들이 대거 회사를 떠난다. 

박민 KBS 사장은 28일 열린 KBS 정기이사회에서 특별명예퇴직과 희망퇴직 접수를 받은 결과를 보고하며 “이번 특별 명예퇴직에 대비해 명예퇴직금 예산 98억 원을 편성했는데 당초 예상보다 많은 87명이 최종 접수했고 명퇴금 예산은 약 19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KBS는 앞서 수신료 분리징수 여파 등에 따른 ‘유례없는 재정·경영위기’를 이유로 15일~26일 명예퇴직 접수를 받았다. KBS는 27일 특별인사위원회를 개최한 뒤 이들 87명을 오는 29일자로 면직처리하는 발령을 냈다.

퇴직자 명단에는 △공아영 기자(전 KBS 기자협회장) △김원장 기자(전 ‘사사건건’ 앵커, 전 방콕특파원) △박유한 기자(전 주말 ‘뉴스9’ 앵커, 전 워싱턴특파원) △박종훈 기자(전 경제부장, 전 ‘박종훈의 경제한방’ 진행) △임장원 기자(전 보도국장, 전 뉴욕특파원) △정세진 아나운서(‘뉴스9’ 앵커, ‘저널리즘 토크쇼J’ 진행) 등이 포함됐다.

박 사장은 “이번 조치로 87명의 직원들이 KBS를 자발적으로 떠났지만 향후 인건비 규모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KBS 직원들이 회사 예상을 뛰어넘은 규모로 퇴직을 택한 데에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가 보도·제작자율성 침해 논란을 빚어온 가운데 느끼는 답답함과 무력감이 배경으로 꼽힌다.

이번에 특별명예퇴직을 신청한 A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본인을 포함한 다수 언론인이 퇴직을 택한 배경을 두고 “지금 KBS가 온전한 저널리즘 가치를 추구 실현하기에 척박한 환경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기 영향을 받는 부분은 KBS 구성원들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고 내부에서 개선을 위해 싸웠지만 근본 개선이 안 된 상태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은 어느 때보다 아프다”고 했다.

또 다른 퇴직 신청자 B씨는 “조직 안에서 역할이나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공간과 부분이 거의 없다고 느꼈다”고 퇴직을 결심한 배경을 밝혔다. B씨는 “누가 봐도 KBS에서 우수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대중의 기억을 받고 있는 기자들이 나가는 것은 KBS로서도 참 큰 손실”이라며 “이번 상황은 (회사가) 기자들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방향으로 인사를 해서, 그 기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결과라는 점이 핵심”이라고 했다.

일례로 이번에 퇴직을 신청한 김원장 기자는 ‘사사건건’ 앵커 등으로 활동했고 KBS에서 가장 많은 네이버 구독자(1만9640명)를 기록해왔다. 박종훈 기자는 경제 전문 기자로 50여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박종훈의 경제한방’ 유튜브를 맡아 진행했는데 최근 재난미디어센터로 발령됐고, 해당 콘텐츠는 진행자가 바뀌면서 조회수가 급감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퇴직 신청자 C씨는 “일하는 사람들이 서 있을 공간이 없어졌다”며 “진영 가리지 않고 유능한 사람을 썼던 문화는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췄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문재인 정부, 노무현 정부 때도 맹렬히 비판했다”며 “지금 리더십에서는 한 마디도 못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KBS는 박민 사장 취임 뒤 △시사프로그램 일방 폐지·개편 △윤석열 대통령 홍보성 대담 논란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 △감사 독립성 훼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엔 ‘총선 영향’을 이유로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4월 방영을 무산시켜 논란이 커졌다. 지난 22일엔 KBS ‘뉴스9’ <영화 ‘건국전쟁’ 80만 돌파…이승만 공과 재평가 점화> 리포트에서 ‘3·15 부정선거’ ‘6·25전쟁 한강다리 폭파’ 등 이승만 전 대통령 책임이 지적된 역사적 사건들의 일방 주장을 다루며 ‘건국전쟁’ 띄우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