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명품가방 수수’ 몰래카메라 영상은 보도 윤리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달 27일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와 장인수 전 MBC 기자가 공개한 몰카 영상엔 김건희 여사가 300만 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거절하지 않는 장면이 포착됐다. 몰카 공개 후 김 여사의 김영란법 위반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보도는 일부 언론이 대통령실 입장을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논평을 인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몰카는 통일 운동을 해온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가 지난해 9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위치한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방문해 촬영했다.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건넨 명품브랜드 ‘디올’의 파우치는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가 구매해 최 목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서울의소리와 최 목사가 함정을 파고 몰카를 기획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방송 뉴스 가운데 이 소식을 상세히 다룬 JTBC 뉴스룸도 몰카 영상을 보도하면서 “김 여사에게 전할 명품 가방을 사주고, 촬영할 카메라 달린 손목시계를 준비한 것 모두 서울의소리 측”이라며 함정 취재 논란을 강조했다.

▲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와 장인수 전 MBC 기자는 지난달 27일 김건희 여사가 300만 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거절하지 않는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도했다. 사진=서울의소리 화면 갈무리.
▲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와 장인수 전 MBC 기자는 지난달 27일 김건희 여사가 300만 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거절하지 않는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도했다. 사진=서울의소리 화면 갈무리.

“집에 불 지르고 단독 영상이라 촬영한다면…”

다수의 기자들도 서울의소리 측이 취재 윤리를 위반했다고 평가했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기자는 “정치적 찬반을 떠나 너무 의도가 명확하다. 소위 ‘함정 취재’를 한 것인데, 취재 윤리 위반 소지가 크다”며 “내가 어떤 집에 불을 질러놓고 그걸 휴대전화로 촬영해 단독 영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취재 윤리를 위반한 만큼 보도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시사 주간지 기자도 김 여사의 금품 수수를 비판하면서도 “기자는 어디까지나 관찰자로 머물러야 한다”며 “기자가 플레이어가 되는 것에 어떠한 망설임이나 고민이 없다면 그게 더 문제다. 기자가 플레이어가 되는 현상에 대한 윤리의식이 부재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취재 과정과 자료 확보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보도 신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함정 취재는 접근이 어려운 현장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아주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이 기자는 “매체(서울의소리)는 과거에도 ‘김건희 7시간 녹취록’이란 이름으로 김건희 여사와의 통화 녹취를 그대로 공개해 논란을 자초했는데, 김건희 여사를 타깃으로 촬영한 기획 몰카를 인용하는 것 자체가 취재 윤리 위반에 동조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흔 조선일보 차장은 지난달 29일 조선일보 유튜브 방송에서 서울의소리 측을 겨냥 “이 사람들은 허위 주장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며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기성 언론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같은 방송에서 박은주 조선일보 부국장은 “함정 취재이자 조작 취재이고, 사람에 대해 작업을 친 것”이라며 “법원도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취재 자체가 작전과 모의에 의해 실행됐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김영란법 위반에 대해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매체 기자는 “제3자가 제공한 몰카 영상이라면 공익성이 현저히 높다는 판단이 들었을 경우 보도할 수 있다고 본다”며 “나도 사기 사건을 취재할 때 제3자가 몰래 녹음한 것을 보도에 인용한 적 있다. 해당 취재물은 사기꾼과 다른 사기꾼의 연결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경우는 서울의소리가 함정 취재를 해서 사실상 서울의소리가 보도한 것 아닌가”라며 “취재 윤리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 체류 중인 한 외신기자는 “영부인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이권을 챙기는 장면이 포착됐다면 영상의 공익성은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게 아닌, 의도적으로 선물을 제공하고 받는 것을 유도한 영상이 얼마만큼의 공익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실·김건희 비판을 안 할 수 없는 보도

반면, 취재 과정과 보도물에 대한 평가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영방송의 한 기자는 “그동안 몰카와 함정 취재는 탐사 보도뿐 아니라 온갖 고발·검증 보도에서 빈번했다. 이를 통해 우리사회에 덮여 있던 부조리가 드러나는 성과가 적지 않았다”며 “물론 그런 취재에 부작용이 있고 남용해서도 안 되지만, 판단과 책임은 취재 기자 본인과 데스크의 몫”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이번 사안은 이런 방식 아니고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내용으로 취재가 지향하는 목적과 그 결과의 가치가 다소 거친 취재 방식을 압도한다고 본다”면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TV조선이 CCTV를 통해 최순실의 사적 발언과 행보를 고발했던 것도 떠오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방송사의 한 기자는 “서울의소리가 취재해서 그렇지, 사실 이번 보도로 대통령실 경호 및 보안이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김 여사의 금품수수 장면은 왜 제2부속실이 필요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보도 가치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 유튜브 방송에서 박은주 부국장도 최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던 전력을 언급하며 “이런 사람을 대통령 부인이 왜 만났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며 “(최 목사가) 몰카를 차고 들어갔는데 대통령실 경호는 전자기기인 몰카를 걸러내지 못했다. 당시 보안을 책임졌던 사람들은 사후적으로라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 대통령실은 지난 3월31일 ‘2023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대통령실
▲ 대통령실은 지난 3월31일 ‘2023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대통령실

2016년 TV조선 최순실 영상을 보도한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는 5일 오마이TV에 출연해 “메이저 언론은 (김건희의 금품수수 및 인사청탁 의혹이라는) 사안의 본질은 이야기하지 않고 취재 논란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취재 윤리상 권력자에 대한 취재 방식과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토론할 수 있으나 취재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최 목사는 김건희 여사 사무실에 들어갈 때) 카톡에 사전 고지를 하고 갔다. 속이고 들어갔다면 주거 침입이 법적으로 문제 될 수 있지만, 카톡 메시지로 미리 선물 사진을 보냈고 (김건희 측이) 약속시간을 잡아 만남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장인수 기자는 서울의소리에 출연해 “함정 취재가 무조건 금지되는 건 아니다. 많은 나라 많은 언론사들이 함정 취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다만 함정 취재를 통해 얻게 되는 국민의 알 권리가 함정 취재 위험성이나 비윤리성보다 현저히 높을 경우, 또 함정 취재를 사용하지 않고는 취재원 접근이나 취재가 불가능한 경우, 함정 취재 대상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권력자인 경우에는 함정 취재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취재 윤리 논란과 별도로 야권은 대통령실을 압박하고 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4일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일주일째 전혀 입장이 없다. 계속 침묵을 지키는데 이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대통령실이 입장을 밝힐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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