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정치권 공방으로 이어졌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주목을 받을 때마다 정치적 메시지와 연결 짓는 ‘영화 정치’가 이어졌다. 

영화 메시지 현실 투영하며 정치적 공세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하자 야권 인사들은 연일 현 정부에 빗댄 발언을 냈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총칼 대신 합법의 탈을 썼다. 군부독재와 지금의 검찰 독재는 모습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은 페이스북에 “하나회가 검란을 일으켰던 검찰 특수부와 오버랩됐다. 훨씬 더 잔인한 역사가 2023년에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했다.

▲ 영화 '서울의 봄' 갈무리
▲ 영화 '서울의 봄' 갈무리

여당은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의 전작 ‘아수라’를 언급하며 반박에 나섰다. 장예찬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상대를 몇십년 지난 군사정권과 결부시켜 악마화하는 것은 나쁜 정치인”이라며 “오히려 그분들에게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 ‘아수라’를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앞서 지난 8월 10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연루 의혹을 언급하며 “영화 ‘아수라’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이 영화의 메시지를 현실 정치와 연결 짓고 상대 당이나 정파를 공격하는 일은 전부터 반복됐다. 2015년 ‘연평해전’ 개봉 때는 보수 정치인들이 적극 공세에 나섰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트위터에 “대통령 한 번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된다”며 “그 다음 대통령은 아예 NLL을 적에게 헌납하려 했다”고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페이스북에 “국가안보에도 보수, 진보로 갈리는 한국이 참으로 안타깝다”면서도 “영결식보다 일본에서 거행된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한 대통령을 보고 얼마나 국가를 원망했을까”라고 했다. 

2014년 영화 ‘변호인’을 관람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영화평을 남겼다.

대통령 직접 관람하고 메시지까지 내놓는 ‘영화정치’

영화의 ‘메시지’가 정치적 지향에 맞으면 직접 관람에 나서고 집단 관람을 추진하는 등 영화 정치에 시동을 걸기도 한다. 

민주당은 ‘1987’,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올 때마다 집단 관람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놓는다. 보수언론에선 이를 민주당의 전매특허로 규정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 <또 영화 보고 흥분한 야권… “尹, 총선 승리 땐 계엄령”> 기사를 통해 “현대사 관련 영화가 나올 때마다 민주당은 ‘영화 정치’에 몰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 영화 '1987' 포스터
▲ 영화 '1987' 포스터

보수 정치권이라고 해서 영화 정치에 나서지 않는 건 아니다. ‘인천상륙작전’ ‘국제시장’ 등 ‘안보’ ‘산업화’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주목한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시장’ 개봉 당시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와 함께 영화를 보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보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국제시장’ 개봉 후인 2014년 12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은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를 보니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나라가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발언했다. 

▲ 영화 ‘국제시장’ 속 한 장면
▲ 영화 ‘국제시장’ 속 한 장면

이후 공개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으로 ‘국제시장 투자 애로 교훈. 건전한 애국영화 독려.’라는 내용이 있었다. 건전한 애국영화인 ‘국제시장’ 투자 관련 애로 사항이 있었던 점을 교훈 삼고 애국영화 관람을 독려하자는 내용으로 보인다. 

‘민주화’ ‘산업화’ 영화에 ‘외연 확장’ 시도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의 메시지가 상대 당의 정체성과 결부될 경우엔 외연 확장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2018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개봉하자 정치권은 ‘소유권 논쟁’을 벌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단체관람을 주도한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보도되자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 진실을 누가 밝혔느냐. 보수 정부에서 밝힌 것”이라고 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연출하며 이 영화가 자신들의 영화인 것처럼 포장을 꼭 해야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의 ‘소유권 주장’에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보수 진보를 넘어 오늘을 사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면서 “누구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 자체가 조악한 역사 인식만 드러내는 일임을 자유한국당은 명심하기 바란다”고 했다. 

반대로 2014년 산업화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국제시장’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를 보는 증 눈물을 터뜨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보수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관람에 나서기도 했다.

문재인 의원은 영화 관람 후 “보수의 영화라는 식의 정치적 해석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애국도 보수만의 것이 아니고 보수 진보를 초월하는 가치”라고 했다. 영화 비판에 대한 평가였지만 산업화가 보수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한 발언이었다. 문재인 의원은 “영화가 제 개인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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