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를 보유한 동화그룹의 YTN 인수 의사가 공식화되면서 한국일보 논조 변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기업 지분 매각, 방송통신위원회 승인 등 YTN 인수에 사실상 정부 의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근 단행한 한국일보 사장·주필 인사 배경에도 YTN 인수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불안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신임 대표로 이성철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을 임명하면서 이영성 한국일보 사장과 이충재 주필이 물러난다고 밝혔다. 통상 연말에 이뤄지는 대표이사 인사가 한 달 정도 일찍 진행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지만 당시 한국일보 측은 “원래 사장 임기가 3년”이라며 “새로운 연도의 원활한 준비를 위해 조금만 일찍 변경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은 지난달 22일 뉴스레터 ‘이충재 인사이트’를 통해 “만 35년의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12월1일자로 한국일보 고문으로 비켜선다”고 밝혔다.
▲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은 지난달 22일 뉴스레터 ‘이충재 인사이트’를 통해 “만 35년의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12월1일자로 한국일보 고문으로 비켜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팎에서 여전히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던 이충재 주필이 갑작스레 칼럼과 뉴스레터 발행을 중단해 내부에선 놀랐다는 분위기다. 이 주필이 발행하던 ‘이충재의 인사이트’는 지난달 22일을 마지막으로 예고 없이 중단됐다. 한국일보 A기자는 “대부분 마지막 뉴스레터를 보고 이제 그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식적으로 내부에서 어떤 이유라고 설명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들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달 22일자 이충재 칼럼.
▲ 지난달 22일자 이충재 칼럼.

이충재 전 주필은 2001년 한국일보 기자협의회 회장 선출 이후 경영진의 ‘기사 빼기’ 등 편집권 침해 사례를 비판하며 언론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10년 후 2011년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10개월 만에 광고 매출 부진으로 경질된 경력도 있다. 편집권 독립에 있어 상징적인 그가 지난달 22일 마지막으로 쓴 칼럼은 대통령을 비판한 ‘오만이 가장 무섭다’이다. 이 전 주필은 칼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적 태도와 언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A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서 확실히 신망이 높은 편이었다. 칼럼도 뉴스레터도 어떻게 보면 한국일보 간판이었기 때문에 중단된 것이 더 의아하다”며 “당연히 주변에서 YTN 인수 때문에 회사가 눈엣가시인 사람들 걸러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고 본다. 논조의 친정부화, 친기업화 우려가 일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고문으로 위촉되면서 칼럼 발행을 중단한 이 전 주필과 달리 한국일보 사장을 지냈던 이준희 고문은 현재 수년째 지면에 칼럼을 연재해 오고 있다. 보통 장기적으로 칼럼을 써왔던 기자는 고문 위촉 후에도 칼럼을 계속 연재한다. 이 전 주필도 칼럼과 뉴스레터 발행에 애정을 쏟아 의지를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레터 연재를 위해 이 전 주필이 매일 새벽 4~5시에 출근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 한국일보 로고.
▲ 한국일보 로고.

한국일보 B기자는 “회사 입장에선 어차피 월급도 나가는데 고문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전 주필이 정부 비판 칼럼들에 대해서 부정적 반응을 받았다는 것도 널리 퍼진 이야기”라며 “YTN 인수 관련 사측의 특정한 분위기가 있다는 것도 내부에선 시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YTN 인수엔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기업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 매각이나 매각 대상 선정에 정부 의사 결정이 반영된다. 더군다나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YTN 최대주주가 바뀔 경우 새 최대주주는 방통위에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신청을 해야한다. 

▲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한국일보 측은 계약기간 등 설명이 부족해 구성원 간 오해가 쌓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일보 경영 담당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 전 주필은 11월 15일까지가 계약이었다. 원래 정년이 지났고 1년씩 계약을 한 것인데 계약이 끝나고 난 뒤의 판단은 회사 내부의 경영적 판단”이라며 “이번에 교체된 분들이 60대 초반이고 새로 신임된 분들이 50대 후반이다.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인데 YTN 인수와 시기가 맞물렸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칼럼이나 뉴스레터도 주필과 소통하며 회사와 공감을 한 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나온 아쉬움들이 조합이나 구성원들에게 흘러 와전이 된 것 같다”며 “한 달 전부터 충분히 얘기가 된 상황인데 현장에 자주 나가는 기자들은 계약 관계나 임기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어 오해가 쌓일 여지가 있다. 아직 한국일보 차원에선 YTN 인수 관련 공식화된 것도 없는데 사장과 주필을 YTN 그 이유로 교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는 6일 기자들 의견을 취합해 국장단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부 불안에 대해 국장단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기자들 요구다. 질문지에는 YTN 인수와 이충재 전 주필 관련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환구 한국일보지부장은 “국장 취임 6개월을 맞아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차원에서 시도하는 일”이라며 “인터뷰 결과는 기사 형식으로 구성원들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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