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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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한겨레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언론사 윤리강령이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한국기자협회를 중심으로 언론윤리헌장을 제정‧선포했다. ‘강제성 없는 자율규제’인 언론사 윤리강령은 지금 취재 보도 현장과 가까이 있는 걸까. 

26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언론윤리강령 실태와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이영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는 언론인 18명 심층 인터뷰 분석 결과를 내놓으며 “대부분 사내 윤리강령을 몰랐고 찾는 것도 어려워했다. 윤리강령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이영희 겸임교수는 “모두 윤리강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고 가장 중요한 조항은 언론자유‧공정보도라고 답했지만 ‘상업적 이유 때문에 조직적으로 윤리강령을 위반하는 경우도 있다’는 입장도 있었다”고 전했다. 인터뷰에선 자사 윤리강령 공개에 반대한 언론인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외부인사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역공을 당할 수 있다” 등이었다.  

이영희 겸임교수는 “(인터뷰 결과) 윤리 교육은 수습기자 시절 한국언론진흥재단 교육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으며 “다수가 윤리강령 교육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언론인들은 “윤리강령 개선 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례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강령이 필요하다”. “직급별‧데스킹 관리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영희 겸임교수는 “현재 경미한 사안은 문제 삼지 않고, 대외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때만 윤리위가 아닌 인사위에서 보여주기식 조치가 이뤄지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개 언론사 윤리강령 내용 분석 결과 “대부분 언론 자유 수호를 규정했는데 이런 가치선언이 강령 성격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으며 “매체 환경 변화에 비춰볼 때 강령이 전반적으로 너무 올드하고 구체성이 필요한 대목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윤리강령에 공통적으로 명시된 차별금지 사유는 ‘성별‧지역‧학력‧종교’ 4개에 그쳤는데, 오늘날 차별금지법에 나와 있는 사유는 23개여서 현실과 괴리감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윤리강령에 ‘사내민주주의’ 관련 규정이 있는 언론사는 분석대상 중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이라 전했으며 “윤리규정에 주기적 교육이 규정되고 실행돼야 하지만 교육 관련 규정을 포함한 언론사는 TBC와 부산일보 뿐이었다”고도 밝혔다. 또 “언론사 윤리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권한과 기능을 갖는지,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고 결정했는지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윤리위 규정의 구체성과 개방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교수는 언론윤리강령 실효성 확보를 위해 △내부통제시스템 도입 △취재 및 보도에 관한 실행지침의 구체화 △윤리강령 공시를 제안했다. 무엇보다 “연구분석 과정에서 윤리강령을 찾기가 어려웠다. 언론사에 공문을 보냈지만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며 폐쇄적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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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윤리강령과 별개로 취재보도준칙을 만들고 저널리즘책무실을 운영하면 언론사에 도움이 된다”고 전한 뒤 이들이 갖는 명확성‧구체성의 한계를 언급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취재보도준칙에는 ‘한 기사에 익명 취재원을 2명만 허용한다’고 나와 있지만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에는 ‘가급적 익명 취재원 인용을 삼간다’고 나와 있다”고 밝힌 뒤 “(강령이나 준칙을 어겼을 때) 처벌이나 강제규정도 부족하다. (처벌이나 강제규정이 생기면) 내부적으로 감당이 안 될 것이고, 문제가 된 사안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인지 고의인지 실수인지 여부도 따져야 할 것”이라며 현실적 접근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권태호 한겨레 실장은 “우리는 두 가지 기로에 있다. 모범적이고 우아한 윤리강령을 만들고 사문화하는 형태로 나갈 거냐, (강령 수준이) 너무 높으니 떨어트릴 거냐다”라고 진단한 뒤 “(강령이나 준칙) 하나하나를 다 따지면 제대로 지키는 것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면서도 “지키지 못한다 해도 만드는 순간 지키려는 요인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며 효과적인 강령은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윤리강령이나 보도준칙 교육은 젊은 기자들보다 데스크들에게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민수미 쿠키뉴스 기자는 “지난해 취재보도 가이드북을 새로 만들었다. 소셜미디어 준칙에선 SNS인용 보도나 기자의 SNS 계정 운영 기준을 제시했다. 온라인에 특화된 기사 작성과 편집방법을 정리하고 현장에서 (기준을) 수월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기자들 편의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민 기자는 그러나 “속보나 단신의 경우 시간 압박 탓에 기자들이 윤리강령을 참고하는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모든 딜레마에 맞춰 준칙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기자 개인의 윤리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고, 개인차가 크게 난다는 것도 고민”이라고 밝혔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로이터저널리즘 디지털뉴스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뉴스 이용자 3명 중 2명은 뉴스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경험이 있다. 가장 큰 회피 이유가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어서다. 언론 신뢰도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부끄러운 사실도 잘 알고 있다”면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책임 있는 언론이 되려면 언론인 스스로 나서야 한다. 자율적 규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언론윤리강령을 두고 있지만 중요한 건 준수 여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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