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제 77주년 광복절 경축식 축사의 서두를 열며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서,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선언하였다. 얼핏 그럴듯하다. 하지만 각 단어들을 곱씹어보면 꽤나 중의적 의미 조합이다. 특히 인용한 두 번째 문장은 세 문장이 합쳐진 복문인 탓에 명징하게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각 문장을 쪼개면 다음과 같다. ①전체주의 국가는 자유와 인권을 무시한다. ②어떤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국가를 목표로 삼는다. ③우리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국가를 거부한다.

이 중 ①은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②에서 시작된다. 내선일체를 강제한 일본 전체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이 또 다른 전체주의를 지향할 리 없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그럼에도 왜 ②가 삽입되었을까? 이는 ③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4·19 혁명으로 타도된 이승만 정권과 자유·인권이 탄압된 박정희·전두환 군부 정권을 떠올려 보면 우리의 독립이 의도치 않게 전체주의 국가를 낳아 비극적이었다는 이야기다.

남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로 이어지는 봉건적 전체주의 국가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그러니 실질적 독립은 논리적으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라는 한국사의 오점을 지워나갈 때, 북한을 전체주의의 폐해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 달성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축사 말미에 말한 ”우리의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흡사 공산주의 이론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떠올리게 만드는 윤석열 대통령 버전의 영구독립운동론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8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영구혁명론은 트로츠키가 레닌 사후 스탈린과 충돌한 지점이다. 소련에서의 혁명이 성공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적으로 혁명을 확산시킨다는 영구혁명론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압제에 시달리는 피식민 국가의 독립운동을 자극했고 지지했다. 일제강점기 아래 이루어진 우리의 좌익적 독립운동의 뿌리다.

그러나 실권을 잡은 스탈린은 세계혁명보다는 신생국가 소련의 내실화를 우선에 둔 일국 사회주의를 기치로 걸었다. 스탈린의 권력 기반 다지기였고 그 결과 전체주의가 도래한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피의 숙청이 이뤄졌다.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식민지 국가 출신의–인도인, 이란인, 조선인, 중국인 등등-공산주의자들이 사라졌다.”(로버트 영 저,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광복절 주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 소개된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이어간 홍범도 장군과 17만 명의 고려인이 지옥열차를 타고 6000km 떨어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진짜 배경이다. 그들의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사회에 의해 다시 좌절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를 무려 서른 세 번이나 말한다. 이때의 자유가 단지 내 마음대로 하는 자유는 아닐 것이다. 영단어 ‘free’에는 ‘…이 없는’, 즉 부재와 박탈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자유는 자유를 온전히 펼치는 충만의 운동만이 아니라 그로부터 빼앗긴 무엇을 거두어들이는 회수의 운동이다. 어느 한 쪽만 강조하거나 선별할 경우 그 자유는 방종이 되기 십상이다.

▲ 2021년 8월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21년 8월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노자 교수는 작년 광복절 때 최고의 예우로 한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귀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고려인 전체의 의중을 반영했는지, 그리고 고려인 전체도 단지 체류권 부여가 아니라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수 있는지를 따지며 이들을 이등국민으로 폄훼하는 한국사회의 위선을 비판했다. 옳은 지적이며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구독립운동론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여러 자질들을 빼앗겼거나 혹은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자유로워졌을지도 모른다. 이들을 위한 자유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계보를 잇는 정당에 속한 윤석열 대통령이 감당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독립운동은 윤 대통령의 생각보다 훨씬 정치적인 이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