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취재방해 논란과 관련해 감봉 6개월 징계를 받은 김태현 YTN 선임기자가 징계 무효소송 1·2심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1심에선 취재윤리위반에 따른 징계 사유를 인정한 대목이 있었던 반면, 2심에선 “공익적 가치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판부가 기사에 대한 가치판단까지 내리며 대부분의 징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취재방해’ 논란은 2018년 3월5일자 “YTN간부, 이건희 동영상 제보 삼성에 ‘토스’” 뉴스타파 보도로 시작됐다. 보도에 의하면 2015년 8월27일 대가를 요구하는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제보가 있었고, 당시 류제웅 사회부장은 제보를 보고한 취재기자에게 기밀 유지를 요구한 뒤 제보자에게 삼성 측 연락처를 알려주며 “(삼성쪽 전화번호 알려주는) 그 부분은 후배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류 부장은 “방송에 나가는 순간 이건 꽝”이라고도 했다. 이후 여러 언론사가 이 사실을 보도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2018년 3월5일자 SBS 보도화면 갈무리.
▲2018년 3월5일자 SBS 보도화면 갈무리.

당시 언론노조 YTN지부는 “‘국내 최대 재벌 회장의 성매매와 이에 대한 동영상 협박 사실’을 알게 된 YTN 사회부장이 후배 기자들의 취재를 속이고 방해하면서 제보자들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수 있도록, 또 삼성은 돈을 주고 성매매 동영상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그해 7월 류제웅 사회부장은 감봉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이후 YTN 바로세우기 및 미래발전위원회가 김태현 기자를 조사했고, YTN은 2019년 9월 김 기자에게도 감봉 6개월 징계를 통보했다. 2015년 8월28일 당시 경제부장이었던 김 기자는 취재기자들 모르게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에게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제보 사실을 알렸다. 

YTN은 “취재 초기 삼성과 접촉한 것은 제보 누설 가능성이 큰 행위이며, 현장 취재진 배제는 심각한 취재방해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태현 기자는 “취재를 방해하거나 취재무산에 책임을 질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삼성 측과 취재를 두고 뒷거래를 한 사실도 없다”며 징계 무효소송에 나섰다. 

서울서부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이종민 차성안 최지영)는 2020년 10월22일자 판결문에서 “이인용에게 연락해 제보자가 연락할 삼성측 연락처를 알아내고, 제보자에게 알려줘도 된다는 승낙을 받아 류제웅에게 전달한 행위는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으며 “동영상을 미끼로 거액을 뜯어내는 범죄 목적에서 삼성에 접촉하려는 제보자에게 삼성측 연락처를 전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은 취재윤리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김 기자의 행위를 두고 “범죄행위에 결과적으로 조력하는 행위”이며 “결과적으로 다른 언론사에서 보도가 이뤄지는 것을 막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어 “제보자가 삼성과의 협상을 택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양측을 연결하는 행위를 한 것은 결과적으로 취재무산에 기여한 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류제웅과 원고(김태현)가 이러한 제보자와 삼성에 대한 접촉 사실을 취재기자들에게 비밀로 한 것은 그런 의심을 더욱 키운다”며 “류제웅이 제보자에게 삼성측 연락처를 전달하는데 관여하고, 취재기자에게 제보자·삼성과 접촉 사실과 제보자에 대한 삼성측 연락처 전달 사실을 숨긴 행위는 징계사유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 상암동 YTN사옥.
▲서울 상암동 YTN사옥.

그러나 “이건희 동영상 보도와 관련해 삼성 측 입장을 듣기 위한 접촉이 어느 시점에서는 필요한데, 원고가 그 시점을 잘못 정해 접촉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러한 접촉 자체가 취재윤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주요 간부진을 통한 취재 그 자체를 취재방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이어 “회사가 징계처분한 실질적 근거인 미래발전위원회 조사 결과 취재방해에 해당한다고 본 항목 중 ‘원고가 취재 초기 단계에 삼성측과 접촉한 행위’, ‘사장 주재 회의를 통해 현장 취재진이 배제된 것’ 등은 징계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면서 “징계 사유 중 절반 이상이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된 이상, 감봉 6개월 징계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취재윤리 위반’ 인정한 1심, ‘면죄부’ 준 2심

2심 판결은 김 기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이숙연 서삼희 양시훈 부장판사)는 지난 23일자 판결문에서 “사회부장이 제보자를, 경제부장이 삼성을 담당해 직접 취재하고 일단 취재기자를 배제하기로 한 간부진의 의사결정이 취재를 방해하거나 무산시킬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충분한 입증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은 판단을 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취재기자들에게 류제웅 사회부장의 제보자 접촉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원고가 취재기자들에게 이인용을 접촉한 사실을 알려야 할 취재윤리나 사내 규정상 의무가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취재기자들에게 제보자나 이인용과의 접촉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만으로는 취재윤리에 반하는 취재방해 내지 데스크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한 “사장 주재 회의에 관여한 간부진들이 보도 후 삼성 측에 의한 광고 수주상 불이익을 고려해 취재를 멈추기로 결정했다거나, 취재 중단 이후 YTN의 삼성 광고 수주가 유의미하게 증가했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이 사건 동영상은 그 내용이 가지는 선정성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공익적인 가치가 크다고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YTN 같은 주요 언론사가 특종으로 다루기에는 격에 맞지 않거나 부적절한 면이 없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스스로 제보의 보도가치 여부를 평가한 대목으로, 2016년 7월 뉴스타파의 이건희 성매매 영상 단독 보도를 두고 공익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여론을 찾기 힘들었던 점에 비춰보면 다소 의아하다고 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2심 재판부 판결문의 한 대목.
▲2심 재판부 판결문의 한 대목.

이 같은 대목에 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순 변호사는 “재벌이라는 사회 지도층의 윤리의식 문제다. 오히려 YTN이 다뤄야 할 아이템”이라면서 “공익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재판부 판단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흔히 재판부는 범죄사실 보도에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하는데 2심 재판부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은 것”이라며 “재판부가 징계 무효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쓰다가 쓰지 말아야 할 내용까지 쓴 것 같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YTN지부는 26일 “사회부 야근자들에게 들어온 동영상 제보를 기사화하기 위해 당시 경제부장은 어떤 취재 활동을 했는가. 삼성 측 누군가의 연락처를 제보자들에게 줘도 되는지 물어보는 역할 말고 동영상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어떤 질문을 그들에게 던졌는가”라고 되물은 뒤 “재판부가 이 사건 자체를 YTN이 보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점에 대해서는 강한 유감”이라면서 “선을 넘은 훈계”라고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 YTN지회도 27일 “2015년 상황은 상식적인 취재 방식이 전혀 아니다. 정상적인 언론사에서는 간부 몇 명만 하는 취재를 절대 하지 않는다. 경제부장 자격으로 취재 대상인 삼성에게 초기부터 제보 내용을 알렸다는 건 공격 들어갈테니 충분히 방어하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준 것”이라며 2심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간부진들로서는 삼성 측을 통해 조기에 제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도 보이는바, 이러한 판단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거나 불합리하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으며 “원고가 취재 초기 이인용과 접촉한 것을 두고 선행 취재 없는 접촉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또 “삼성측을 접촉한 것이 취재를 방해하거나 무산시킬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도 YTN측의 입증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김태현 YTN 선임기자는 29일 “나는 누구에게도 어떤 삼성 번호도 전달하지 않았다. 모든 조사와 1심, 2심의 공통 내용”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인용 사장과 통화에 대해선 “여러 가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인용 사장이 제보 사실도 알게 된 것이지 그 사실을 알리는 게 통화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또한 “2심은 어떠한 징계 사유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류제웅 전 YTN 사회부장도 29일 “‘삼성에 연락처를 알려줬다’는 부분은 처음부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고 법적으로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표면적으로는 회사의 결정을 따르면서도 회사의 결정과는 달리 두 후배들에게 관련 영상을 공익제보로 확보할 수 있게 길을 터놨다”고 주장했다.

(7월29일 오후 2시25분 김태현·류제웅 입장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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