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민간에 맡겨진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영화를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공단의 소임인 공공성 강화를 핵심 요구로 걸고서다. 그러나 5일차에 접어든 보도 흐름에선 파업 본질을 찾기 어렵다. ‘정규직의 반대’를 앞세운 ‘노노 갈등’과 ‘공정성’ 프레임 일색이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이날 오전 같은 프레임에 올라타 단식 선언에 이르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지난 10일부터 강원 원주 건강보험공단 로비와 사옥 앞 주차장에서 파업에 돌입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한 시민과 직접 상담 업무를 전담한다. 휴직자나 관리자를 뺀 1400여명 중 950여명이 농성장에서 김용익 공단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다. 공단이 2006년부터 민간에 맡긴 건강보험의 직접 민원 창구 업무를 직영화하라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로고
▲국민건강보험공단 로고

민간업체가 민감정보 다루고 상담권리 훼손하는 상황 괜찮나


이들은 건강보험공단 상담이 민영화 구조에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공단과 계약한 민간업체 측은 각 상담사를 실시간 감시하면서 메시지로 3분 내 전화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5분을 넘기면 관리자가 함께 청취하며 빨리 끊도록 지시를 한다. 옥철호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정책국장은 “특히 노약자 등 정보 취약계층 시민들이 문제 상황을 벗어나려면 상담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친절하고 책임감 있게 대하면 무능한 상담사가 된다. 민영 고객센터에서 상담 능력이란 빨리 끊는 기술”이라고 했다.

민간업체가 국민의 민감한 건강정보를 다루는 비정상적 상황도 문제다. 건강보험은 의무가입제이기에 공단은 거의 전국민의 민감정보를 가지고 있다. 상담사들은 전화를 건 시민들의 성명과 주민번호, 소득, 가족관계와 직장, 출입국 내역, 전과기록, 직장 동료의 건강정보까지 열람할 수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민간위탁업체가 아닌 공단이 직접 고객센터를 운영해야 의료정보와 사생활 보호 의무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인권침해 환경에 놓였다. 하루 120건의 상담을 소화하고, 업체는 개인·팀 간 ‘콜’ 수 순위를 매겨 소수에만 인센티브를 준다. 상담 시간이 길어지면 ‘팀 내 역적’이 된다. 대다수가 최저임금을 받고, 근속이 10여년인 노동자도 이보다 10~20만원을 더 받는 정도다. 옥철호 정책국장은 “노동시간 문제는 노조를 세우고 나아졌지만, 실시간으로 감시당하면서 동료와 눈치 보기와 경쟁을 하는 ‘전자감옥’”이라고 했다.

▲지난 10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한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 가운데 50여명이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공단 로비에서 김용익 이사장에 대화를 요구하며 연좌 농성 중이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지난 10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한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 가운데 50여명이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공단 로비에서 김용익 이사장에 대화를 요구하며 연좌 농성 중이다. 사진=공공운수노조

공단에 공공성 대신 ‘공정성’, 파업 입장 대신 민원대책 물어


결국 건강보험공단이 고객센터를 직영해야 풀리는 문제인데, 정작 파업을 다룬 기사에선 노동자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닷새간 파업 보도 양태는 두 갈래로 나뉜다. 공단 직원의 정규직화 반대 의견을 앞세운 ‘노노 갈등·공정’ 프레임과 파업에 따른 민원 대책을 묻는 ‘시민불편’ 프레임이다.

“건보공단 콜센터 노조, 다시 무기한 파업…공단 ‘불편 최소화’”(연합뉴스),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 무기한 총파업 돌입…‘직고용 해달라’”(조선비즈), 건보공단 콜센터 ‘직고용’ 요구 파업…제2의 인국공 사태 되나(JTBC), “’직고용하라’ 건보 상담사 파업에…‘역차별 반대’ 청원 떴다”(중앙일보) 등이다.

기사들은 파업 소식을 스트레이트 기사로 다루며 “민간 기업의 정규직으로 고용된 콜센터 직원들을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취업준비생과 현 입사자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JTBC)는 정규직 노조 주장을 주로 전했다.

▲공공운수노조 고객센터지부가 지난 10일 파업에 들어간 이후 주요 보도 제목 갈무리
▲공공운수노조 고객센터지부가 지난 10일 파업에 들어간 이후 주요 보도 제목 갈무리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12일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12일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보도들의 또 다른 특징은 공단에 ‘파업에 대한 입장’을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수 언론이 “공단이 전화 상담 불편 등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민원대책을 마련했다”고 전했지만, 노동자의 공영화 요구에 대한 답변을 묻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정부와 건보공단이 시간 끌기식 태도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기존 직원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설득해야 하는 건 경영진과 정부의 역할”이라고 보도한 한국일보 정도가 눈에 띈다. 

건보노조 소속 정규직 조합원 A씨는 미디어오늘에 “공정을 말하는 이들은 채용시험 볼 때의 공정을 얘기하지만, 진짜 공정을 말하려면 시험보기 이전의 ‘공정 상태’, 출발선상의 공정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본래 전화업무는 공단 ‘전화반’에서 직접 맡았는데 직원들이 워낙 (업무를) 힘들어하다보니 노동조합이 당시 민간위탁 흐름에 일시적으로 눈감은 문제도 있다. 이후 어느 정권이든 이 문제에 미봉책으로 일관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공공성 차원에서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고객센터 노동자 파업의 핵심은 겉으로 보기엔 정규직 전환으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국민의 민감한 건강정보를 다루는 건강보험의 창구를 민간에 맡겨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건강보험에 강제가입한 시민들이 지금처럼 충분히 상담받지 못한 채 권리를 훼손당해도 좋으냐는 질문”이라며 “언론의 물음도 여기에 집중돼야 한다”고 했다.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4일 단식을 선언했다. 사진=온라인 보도 갈무리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4일 단식을 선언했다. 사진=온라인 보도 갈무리

김용익 이사장, 노조와 대화거부하며 단식


이런 가운데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14일 돌연 단식을 선언했다. 김 이사장은 건보노조가 고객센터 정규직화 여부를 논의할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하고, 고객센터지부가 파업을 중단할 것을 각각 요구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두 노조가 대화로 합리적 방안을 찾도록 다양한 노력을 다했으나 대립만 깊어진다”고 밝혔다. 사측이 고객센터지부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는 가운데 노조를 상대로 단식하는 것도 초유이지만, 이 역시 공단이 ‘공공성 확립’ 책임을 노노 갈등 프레임에 미루는 행보의 연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이사장은 통화에서 고객센터 공영화에 대한 입장을 묻자 “논의 방향을 정해둘 수는 없다. 사무논의협의회에서 얘기해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센터지부와 만남을 거부해온 이유에는 “따로 만나는 게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 되지 않는다. 양쪽 노조를 참석시켜 대화해야 하는데 우리(정규직) 노조 쪽에서 결정을 못하니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고객센터지부는 지난 2월 같은 요구를 내걸고 첫 파업에 돌입했다, 지부가 참여하는 직접고용 논의 테이블을 조건으로 쟁의를 중단했다. 그러나 건보공단(정규직)노조가 일관되게 테이블 참여를 거부하자 공단은 이를 이유로 고객센터지부의 참여도 배제해왔다. 김혜진 활동가는 “지금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로비에 있는 이유가 바로 ‘대화를 해달라’는 것이다. 공단은 ‘정규직 노조가 불참했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해오던 터”라며 “그런 상황에서 고객센터노동자들이 대화 의지 없이 파업하는 것처럼 묘사하며 단식하는 건 적반하장”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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