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 지면에서 유심히 살피는 소식이 있다.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오늘은 또 누구를 사사(師事)했는지, 어떤 주제로 ‘열공’하고 있는지다. 유권자로서 학생 숙제를 검사하는 선생님이 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한평생 검사로 살아온 검찰주의자가 수험 생활보다 짧은 대선 기간, 어떤 벼락치기를 구사할지, 그가 앞으로 보여줄 초식이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등을 만나 노동·외교·경제 정책을 논의했다는 기사를 보고선 ‘강화된 능력치’가 어느 정도일지 기대하면서 한편으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설픈 벼락치기는 낙제 성적을 부를 수 있는데….’ 벼락치기 양면성은 9수 끝 사시에 합격한 윤 전 총장 본인이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밤을 새우는 벼락치기는 몸만 해할 수 있다. ​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그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람과 세력은 물론 정치를 위한 자금도 필요할 것이며 출마 선언 뒤에도 공세에 흔들리지 않을 명분을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는 일부 법조기자들 펜을 빌려 ‘공정’을 내세우곤 있지만, 그의 정치적 자산인 ‘검찰’ 역시 정부·여당 만큼이나 내로남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그간의 역사다.       

언론 표현을 빌리면 윤 전 총장은 현재 “주로 집에서 책과 논문을 보거나 온라인 등을 통해 경제, 외교·안보, 복지 문제 등을 탐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책 공부를 하고 있다면,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뉴스타파 심인보·김경래 기자가 지난 4월 말에 쓴 ‘죄수와 검사’라는 책이다. 

책은 지난 2019년~2020년 뉴스타파가 같은 이름으로 보도했던 영상 시리즈를 텍스트로 옮긴 것인데, 보도 영상을 봤음에도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검찰의 빨대, 프락치 역할을 하는 죄수들과 이들을 수사에 적극 활용하는 검사들의 불법 행태를 고발한다. 

▲ 뉴스타파 심인보·김경래 기자 ‘죄수와 검사’
▲ 뉴스타파 심인보·김경래 기자 ‘죄수와 검사’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전달했다는 고 한만호씨가 검찰에서와 달리 법정에서 자기 증언을 뒤집는 과정을 다루면서, 한씨 주장을 또 다른 죄수들 증언으로 반박하려는 검사들의 ‘분투’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파헤친다. 한씨의 동료 재소자들을 소환해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입맛에 맞게 증언을 연습시켰다는 정황과 그 근거를 보면, 검찰이 과연 ‘공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집단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책에는 재소자를 이용한 검찰의 불법 수사는 물론, 검찰과 스폰서 문제, 비위 검사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검찰집단 문제와 선택적 수사 등을 고발한다. 두 기자는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특수부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검찰의 출세 코스인 특수부, 인지수사의 부담, 범죄 정보의 보고인 구치소, 절박한 죄수들, 그리고 죄수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검사의 막강한 권한. 이 모든 조건이 합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검찰 특수부의 하수도에는 오수가 흐르게 되고 그 자양분을 먹고 자라난 독초에서는 썩은 꽃이 피게 된다.”(P.166)

​18일자 한국일보 26면 “윤석열의 선택적 헌법정신”이라는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황상진 논설실장은 윤 전 총장이 수사는 물론 각종 정치·사회 이슈에서 헌법 가치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가 말하는 헌법정신은 자기 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유와 민주를 강조하면서 독재나 전제와 손잡은 검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없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검찰의 기본권 침해 수사에는 입을 닫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 ‘무소불위’ 검찰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 것이다. 윤 전 총장에게 정경사 만큼이나 대한민국 검찰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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