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 징집’이 인터넷에서 논란이 됐다. 발단은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여성 징병 대신에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다. 청원인은 “현역 입영 자원이 부족하면 여성 대신에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을 징집하라”며 “이 정도 연령의 남성이면 충분히 현역병으로 복무가 가능하다는 걸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고 했다. 청원인은 6·25 전쟁 당시 학도병 사례를 제시하며 주장을 이어갔다.

이 청원이 화제가 되자 여성과 여초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전시 상황도 아닌데 미성년자에 대한 군복무를 무리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의 확산 과정을 보면 언론이 ‘스피커’ 역할을 했다. 포털 네이버 기준으로 해당 청원을 처음 다룬 기사는 4월21일 부산일보의 “‘여성 징집 대신 중3~고2 소년병 징집하라’ 국민청원 등장”이다. 21일 부산일보 보도 이후 파이낸셜뉴스, 세계일보, 머니투데이,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이 이 청원을 다뤘고 22일 MBN, 매일경제, 머니S, 헤럴드경제, 뉴데일리, 아시아경제 등이 이어 보도했다. 23일 기준 포털에 송고된 관련 기사만 21건이다. 일부 기사는 청원이 확산되는 과정의 문제를 짚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청원 자체를 전하거나 여성 징병 청원과 대립하는 구도로 전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갈무리
▲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갈무리

그런데 이 청원은 언론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대표성’이 있거나,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을까. 최초 보도인 부산일보 기사 내용을 보면 “해당 청원은 21일 오전 9시 30분 현재 1840여 명이 동의했으며”라는 내용이 있다. 이 정도로 청원이 큰 주목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진 이후인 23일 오후 기준으로 봐도 청원 참여 인원은 4594명으로 다른 청원에 비해 큰 파급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이 숫자가 믿을 만하지 않다는 정황이 드러난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소년징병 vs 여성징병 대결구도 프레임 만들자”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 작성자는 해당 청원에 집단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프레임을 저렇게 짜버리면 여성 징병을 해야되냐 안 해야 되냐보다 여성징병과 소년징병 중 어떤게 더 타당한가 이렇게 프레임이 짜여져서 여성징병이 당연하게 되는 흐름으로 가버림. 주작이고 아니고 상관없다 판만 잘 깔면 그만”이라고 썼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적극 참여해서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후 여초 커뮤니티에선 애초에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가 이 청원을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자 여초 커뮤니티 이용자가 신분을 속이고 남초 커뮤니티에 청윈 참여를 조장하는 글을 올린 것 아니냐는 반박도 제기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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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병 징집' 청원은 오히려 청원을 공격하기 위해 참여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CC0)

매일 쏟아지는 국민청원 가운데 특별히 주목할 만큼 참여도가 높다고 보기도 힘들고, 어떤 의도로 청원을 만들고 참여했는지 논쟁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참여자가 적은 청원도 언론이 보도할 수는 있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2019년 4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청와대 청원이 보도되는 경향을 짚으며 “언론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청원 글만 골라 ‘국민 여론’으로 규정하고 자기주장의 근거로 활용했다”며 “언론은 청와대 청원을 인용하는 기준조차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청와대 청원이라 하더라도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근거가 정확한 것만 보도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서명동의자가 많은 내용 중심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워마드의 부적절한 게시글들이 논란이 되곤 했는데, 언론은 경쟁적으로 워마드 게시글 가운데 극단적인 사례를 가져다 쓰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들 게시글을 보면 조회수가 수백, 적게는 수십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이어지는 논쟁이 생산적이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대측의 가장 극단적인 일부의 입장을 대표적인 입장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극단적인 청원 내용을 경쟁적으로 기사화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언론은 온라인 공간 속 논쟁이 벌어질 때 생산적인 논의가 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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