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학폭) 문제가 방송가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자고 나면 터진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연자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문제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송가에는 전례 없는 긴장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차, 통편집, 재촬영, 방영 연기 잇따라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에 출연했던 배우 지수는 드라마 방영 도중 ‘학폭’ 전력이 폭로됐다. 20부작 드라마 가운데 19회를 촬영했고, 6회가 방영된 시점에서 KBS는 배우 교체 및 지수 촬영분 재촬영을 결정했다.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에 출연했던 배우 지수. 학폭 논란이 일자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에 출연했던 배우 지수. 학폭 논란이 일자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TV조선 ‘미스트롯’ 시즌2에 출연한 가수 진달래는 학폭 폭로가 나오자 이를 인정하고 하차했다. KBS는 박혜수가 학폭 논란에 휩싸이면서 2월 방영 예정했던 ‘디어엠’ 편성을 무기한 연기하고 후속작 ‘이미테이션’을 대체 편성했다. 현재 박혜수는 의혹을 부인하며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조병규 역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데 출연이 예정됐던 KBS 예능 ‘컴백홈’ 출연이 보류됐다. 웨이브가 투자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는 괴롭힘 논란에 휩싸인 그룹 에이프릴 이나은이 하차하고 표예진으로 교체해 재촬영했다.

이 외에도 잇단 논란이 방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조선 ‘아내의 맛’은 함소원의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프로그램 자체가 종영됐다. 서예지는 ‘가스 라이팅’ 논란에 인성 논란 등이 겹치면서 하반기 방영 예정 OCN 드라마 ‘아일랜드’ 하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제작비 VOD 판매 등 피해, 법적 분쟁 소지도

학폭 등 문제에 있어 제작사, 방송사, OTT 사업자 등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방송사와 제작사 입장에선 여러 측면의 피해가 이어지면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등 4개 단체가 지난달 발표한 입장문을 보면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다. 이들 단체는 ‘학폭’ 문제를 언급하며 “그 누구보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고개 숙여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해 연예인이 연기 활동, 음반 활동 및 기타 프로그램 활동 도중 하차 할 경우, 이미 제작된 많은 분량이 취소됨에 따라 재제작이 불가피하며, 이로 인해 작업에 참여했던 수 많은 종사자와 연예인들이 덩달아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배우가 교체돼 재촬영을 하게 될 경우 제작비가 이중으로 투입된다. 드라마 제작비는 편당 5억 원 전후 규모인데, 논란이 된 출연자의 비중과 재촬영 대상 편수에 따라 비용 차이는 크지만 ‘달이 뜨는 강’처럼 주연급 배우 교체에 따른 전면 재촬영을 하면 수십억 원의 제작비가 추가로 투입될 수 있다. 재촬영 이후 ‘달이 뜨는 강’ 제작사는 지수 소속사에 3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재촬영으로 제작비가 급격하게 늘어나거나, 제작이 중단되면 피해가 일선 스태프들에게 이어지는 문제도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제작 단계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제작사와 방송사 가운데 누가 이를 감당할지를 두고 분쟁의 소지도 있다. 드라마제작업계에 따르면 방송사에서 사전에 구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과 계약금만 주고 방영 이후 중도금, 잔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전자는 방송사가 손실을 직접적으로 부담할 수 있고, 후자는 제작사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손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자산 규모가 큰 유명 연예인이 아닌 경우 매니지먼트사가 연예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일도 쉽지 않고, 유명 연예인 인력풀을 가진 매니지먼트사 소속 배우가 논란에 휩싸이면 방송사가 추후 섭외 등을 고려해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제작비 외에 손실도 있다. 한 종편 관계자는 “예능은 덜한 편이지만 드라마는 시즌제가 아니라면 시청자의 반응을 보고 나서 광고주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에 논란이 불거지면 광고·협찬 손실도 있다”며 “중간에 배우 및 출연자를 교체하거나, 혹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방영이 이어지면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여론이 악화되는 등의 이유로 광고가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브랜드에 악영향을 피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브랜드에 치명타가 있다. IP를 갖지 않고 편성만 하더라도 방송사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콘텐츠 유통 자체가 중단되면서 프로그램의 판매 역시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지상파, 종편, CJENM은 콘텐츠를 제작하면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등 OTT와 IPTV를 통해 VOD를 판매한다. 온라인 클립 콘텐츠는 SMR 등을 통해 유튜브, 네이버TV 등에 유통한다. 출연자 이슈가 불거지면 통상 이들 영상을 모두 삭제한다. 이 경우 콘텐츠 유통에 따른 수익 자체가 사라진다. 수출을 하게 되면 배우 교체가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어 전편을 재촬영하지 않으면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계약서에 학폭 문제 명시, 방송사 사안별로 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자 일선 매니지먼트사, 제작사, 방송사 차원에서 출연자에 대한 검증을 보다 까다롭게 하면서 계약서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8년 제정한 ‘대중문화예술인(연기자중심) 표준전속계약서’는 ‘연기자’의 성범죄로 인해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계약 해지를 한다는 조항이 담긴 정도다. 현장에서는 음주운전, 마약 등 불법 행위를 할 경우 계약 해지를 하는 조항을 담았는데 최근 들어 ‘학폭’을 비롯한 ‘사회적 물의’ 조항을 추가하는 추세다. 

▲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pixabay
▲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pixabay

드라마제작업계 관계자는 “외주제작물은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 제작사의 3자 계약으로 이뤄진다”며 “학폭 논란 이후 매니지먼트사에서 1차적으로 확인한 다음, 사회적 물의를 빚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증하는 형식의 계약을 각서 형태로 맺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를 분명히 알 수 없기에 불확실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지상파·종편 등 방송사 관계자들은 출연자 심의를 통해 관련 사안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도 현실적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KBS 관계자는 “학폭, 미투 등 유죄 판결을 받지는 않았지만 논란이 발생하면 사안별로 판단한다”며 “방송사, 제작자, 소속사가 논의를 하고 충분히 조율해 출연자 거취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MBC 관계자는 “현행법 위반 사항은 명쾌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폭 이슈는 반복 지속됐는지, 당사자가 인정했는지 등을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SBS 관계자 역시 “학폭은 논란이 불거지긴 하지만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한다. 제작진과 소속사 등 관련자들이 함께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했다.

JTBC 관계자는 “드라마, 예능, 보도 등 담당자들이 참석해 자체적으로 학폭 논란 대상자들에 대해 출연 심의를 하고, 대상자들에게도 소명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다른 방송사 관계자도 “법적 판단이 나온 것이 아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안에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지금 이슈가 되는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살펴보는 식이다. 현재는 학폭 등 사회적 논란에 대해 더 주의 깊고 심도 있게 논의한다”고 했다.

콘텐츠 유통 측면에서는 논란이 된 출연자가 나온 작품에 대한 VOD 서비스 중단의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콘텐츠를 삭제할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특정 출연자가 문제가 됐을 때, 다른 출연자도 나온 예능 콘텐츠를 다 삭제하는 게 맞는지, 과거 어느 방영분까지 삭제해야 하는지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