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가 미투 보도로 5000만원 손해배상 패소 판결을 받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목사가 5000만원을 청구했는데 재판부가 이를 모두 받아주면서 “미투 보도 흐름을 제어하기 위한 본보기식 판결”이라는 주장이 CBS에서 나왔다.
CBS는 지난 3월 A씨가 목사 B씨에게 상습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을 기사 두 건으로 다뤘다. A씨가 약 3년간 어떻게 성폭력을 당했고 B씨에게 어떻게 압박을 받았는지 사건을 잘 아는 교인의 증언, B씨가 최근 목회하던 교회 교인의 인터뷰, B씨의 반박 등을 담아 보도했다.
B씨는 2000년대 초 A씨와 관련한 성폭행 논란이 불거지자 해외로 갔다가 몇 년 뒤 돌아와 경남에서 목회를 재개했다. 성폭행 논란 당시 B씨가 사라지자 청빙위원회를 꾸렸는데 이 중 한 위원이 직접 일지를 적기도 했다. 이 역시 A씨 주장의 신빙성을 더했다. 교계에는 B씨의 성폭행 논란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CBS 보도 직후 교단에서는 B씨를 면직·제명조치 했다.
해당 사건을 보도한 송아무개 CBS 기자는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B씨의 반론을 비중있게 실었다”면서 “당시 노회장, 노회 회의록, 청빙 위원이 작성한 일지, 교인의 추가 진술 등을 볼 때 남녀관계 자체까지 부정하는 B씨의 해명과 배치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A씨의 주장을 사실로 볼만한 정황이 있었고 B씨가 목회자로서 도덕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B씨는 지난해 자신이 A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수사기관이 A씨의 주장을 허위로 본 것을 근거로 결백을 주장했다. 송 기자는 “판단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명예훼손 여부를 다툰 것이지 성폭행 진위 여부를 판단했다고 보지 않았다”며 “당시 A씨가 제대로 다투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국선변호인을 썼는데 국선변호인이 A씨의 주장을 온전히 사실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훼손 소송만으로 성폭행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다는 게 송 기자 판단이었다. 반면 B씨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CBS 뿐 아니라 해명을 요구하는 교인들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3일 “CBS 측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했고 B씨를 비방할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성폭행 사실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제시하는 전 교회 교인들의 진술 등은 확정된 형사판결을 뒤집을 만한 객관성과 신빙성이 담보된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5000만원 청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송 기자는 “재판부가 언론의 역할을 인정한다면서도 ‘사법의 근간을 흔든다’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이런 식이면 사법적 판단이 난 사건에는 사실상 의혹 제기를 할 수 없으며 현재의 미투 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송 기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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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의혹제기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송 기자는 “지금 논란이 되는 인천 ‘그루밍 성폭행’도 법으로는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만큼 법의 역할과 언론의 역할이 다르다”며 “미투 보도는 사실상 언론사 데스크한테 데스킹을 받는 게 아니라 법조인에게 데스킹을 받는 꼴”이라고 말했다. CBS는 오는 22일까지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