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EBS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방송사와 외주라 칭해지는 독립 PD (혹은 독립제작사) 사이에 ‘공정거래’는 없다. 고정수입 없고, 보너스 없고, 4대 보험 없고, 퇴직금은 더더욱 있을 리 없는 독립 PD들은 잠을 줄여 촬영시간을 늘리고, 혼자 감당하기엔 아니 두셋이 감당하기에도 무겁고 다양한 장비를 들쳐 메고 일인다역의 현란한 플레이를 펼친다.
열악한 제작환경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립 PD는 환경을 탓할 수 없다. PD이기 이전에 생활인인 독립 PD는 늘 부족하기만 한 제작비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푼의 생계비라도 가족에게 더 전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한 프로그램 끝나면 또 한 프로그램. 끝나면 또 한 프로그램. 힘들다는 불만, 쉬고 싶다는 푸념은 함부로 꺼내면 안 된다. 일이 있다는 자체로 “닥치고 감사”할 일이니까.
독립 PD에게는 어떤 한계도 허용되지 않는다. 제작비가 적어서, 제작일정이 짧아서,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제작비를 초과하거나 제작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경제적 책임은 오롯이 독립 PD가 져야 한다.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자연스럽게 퇴출당한다. 입이 있되 말은 할 수 없는 독립 PD는 독립 PD 자신 이외에 어디에도 귀책사유를 물을 수 없다.
방송국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붙인 이름이 그 이름도 아름다운 ‘상생’이다. ‘외주사 상생 협력방안’. 조폭이 “거 같이 먹고삽시다. 협조 좀 해주소” 하면서 영세상인 피 빨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명분은 있다. 조폭은 ‘보호비’를 명분 삼지만, 방송사는 제작에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하고 전파에 태워 송출하는데 드는 비용을 명분 삼는다. 돈을 받고 방송을 틀어주는 그들, 그들에게 “프로그램은 돈 주고 사서 트는 것”이 아니다.
독립 PD는 방송사에 제작비 지출계획도 제출한다. 독립 PD가 얼마를 남기는지 방송사는 뻔히 안다. 어디서 지원이라도 받으면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조목조목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재량껏, 능력껏 아껴서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만들어 내는 건 원천봉쇄다. 그들에게 독립 PD는 “밥이 아닌 열정을 먹고 사는 존재. 원래 가난한 존재”인 것이다.
독립 PD들은 방송 전 시사를 하면서 인격적인 수모도 감수해야 한다. 시사 책임자를 잘못 만나면 물리적인 폭행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내 배 아파 나은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내 자식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방송이 나가는 순간 저작권이 방송국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방송국이 재방에 삼방을 해서 광고 수입을 올려도, 해외에 팔아도 그 수익은 고스란히 방송사가 챙긴다.
이런 지독한 착취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독립 PD들은 꿋꿋하게 버티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유수의 해외 영화제와 스크린을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워낭소리’,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달팽이의 별’, ‘철 까마귀의 날들’ 등 예로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던 고 박환성 PD도 해외에서는 이름깨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도 살아생전엔 갖은 한계와 부조리에 시달렸다. 이역만리 촬영현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수천만 원의 제작비 손실을 떠안을 걱정에 속을 태워야 했다. 그럴 때마다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목숨을 건 촬영을 감행해야 했다.
그는 ‘인내는 여기까지’라며 저항을 선택했다. 골리앗과의 싸움이라는 걸 알지만 갈 때까지 가보자며 결기를 다졌다. 그러던 그가 떠났다. 그것도 이역만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장대비 쏟아지던 날, 마주 오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어린 두 아이의 아빠인 후배 독립 PD 김광일과 함께….
너무 많은 독립 PD들이 원통해 하고 있다. 슬픔과 분노가 처음과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살아생전 그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박환성, 김광일 두 PD의 삶이 다른 독립 PD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처럼 최후를 맞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독립 PD들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알아버렸다. “갈 데까지 가보자”
박환성, 김광일 두 PD에게는 명복을, 독립 PD에게는 승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