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고 이한빛 PD는 ‘0년차’ 조연출이었다.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사망 요인은 과도한 노동강도와 일터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
(관련기사: 사과는 했지만 '가해' 책임은 없다는 CJ E&M)
미디어오늘은 고 이한빛PD가 일했던 tvN 2국에서 이PD보다 먼저 이PD와 유사한 노동을 했던 조연출 김성주씨(가명)에게 실제 해당팀의 노동 강도와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성주씨는 tvN에서 예능이나 드라마를 만드는 2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우선 근무강도에 대해 들었다. 앞서 나온 대책위원회의 보고서처럼 일주일에 휴일은 보통 1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월요일~토요일까지 퇴근이 없는 날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주 널널한 프로그램이 걸리면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채널에 1~2개 정도다. 작가가 하는 일이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은 보통 일주일에 휴일이 하루다. 나머지는 그냥 계속 깨어있는 동안,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캐리어 들고 월요일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면 수면실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고 이한빛PD에 대해 근무태만이라는 묘사를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자는 시간외에 다 일해야 하는 환경에서 근무태만이란 말이 안된다.”
“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새벽 3~4시에 끝난다. 편집본이 있는 날은 밤을 새운다. 이건 1년차뿐 아니라 4~5년차도 그렇다. 일주일에 2~3일은 밤을 샌다고 보면 된다. 어느 프로나 막내PD가 가장 힘들다. 경비처리를 0~1년 차 PD들이 하기 때문이다. 다른 채널에는 있는 FD가 없는 것이 0~1년차 PD에게 일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다.”
FD란 연출가 및 조연출가의 지시·감독을 받으며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보조하는 역할로, 방송의 섭외, 정산, 출연자 소품 준비부터 촬영 시 구역설정 등 방송에 관한 보조를 총망라한다. 성주씨는 “촬영장 음식 준비 등은 물론이고 촬영장에서 개가 짖으면 개를 조용히 시키는 일, 잡일은 그냥 다 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하지만 CJ E&M은 그런 FD의 역할을 모두 PD가 한다”고 말했다.
“CJ E&M의 경우 지상파와 달리, 케이블 회사였다가 큰 경우이다 보니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이 전부 섞여있다. 그래서 PD들 출신이 제각각이다. 공채PD, 케이블 경력 PD, 지상파 경력PD 등 ‘파벌’이라는 게 열 개는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서로 경계하는 것이 있다. 특히 공채PD에게 ‘쉽게 PD됐다’라며 괴롭힘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주씨 외에 CJ E&M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지상파 PD는 “CJ E&M은 작은 케이블에서 시작했던 회사여서 그런지 방송시스템이나 위계질서가 안 갖춰져 있다”라고 전한 뒤 “위계질서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심하게 뒤섞여있어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 PD는 “PD, FD, 스태프의 역할이 전혀 나눠져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PD들 사이에서도 경계심이 강하다”며 “다른 회사로 오니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촬영 때 눈치 보여서 화장실을 못 간다. 나 같은 경우는 3주 정도 화장실을 잘 못가니, 방광염에 걸렸다. …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말을 못하는 분위기였고 차라리 그냥 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CJ E&M의 경우 공채에서 6주 인턴을 거치는 과정이 있는데 이러한 과정 때문에 ‘눈치 보기’ 문화가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팀 내 PD들이 평가자가 되고, 정규직 PD가 되려는 인턴들은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받는 느낌이라고 한다. 성주씨 역시 그랬다.
“감시라고 해야 하나. 화장실을 못간 것도 내 행동 하나하나가 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인턴들에 대한 말이 많이 오간다. ‘누구는 싸가지가 없다’, ‘누가 어떤 행동을 했다더라’ 같은 말들이 수시로 나온다. 인격 모독이나 욕은 일상다반사다.”
가장 황당했던 사례를 물어봤다. 성주씨는 ‘간식을 잘못사와서 크게 혼난 일’을 꼽았다. 성주씨는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면 밤에 간식을 사오라고 하면서 PD가 ‘너가 골라오는 간식으로 너의 감각을 테스트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거 진짜 실화다”라며 “어떤 사람은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사왔다며 계속해서 다시 사오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 PD가 여성 인턴에게 “왜 화장을 했냐”고 괴롭힌 일도 있었다고 했다. 성주씨는 “PD가 화장을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몇 시간을 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현직PD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 PD는 자신의 SNS에 “조연출 시절 왜 치마를 입고 다니냐고 꾸중을 들었다”는 글을 공개했다. 이 PD는 “나의 의상을 지적한 선배는 나보다 2살이 어렸다”고 전하며 “성별과 연령대 관계없이 모두가 군인을 흉내 낸다”고 썼다.
그러나 방송계 특유의 폐쇄적 분위기도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만 둔다고 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너 방송계에 못 붙어있게 할 거야’ 같은 소리다. 게다가 PD는 공채에 합격하기 정말 어렵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도 그냥 다니게 된다. 만약 이 회사를 그만두면 나는 평생 PD를 못할 거야,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퇴사를 한다는 것은 사실 회사를 그만둔다기보다, PD를 그만 둘 생각으로 하는 것 같다.”
성주씨는 이러한 CJ E&M 속 문화를 고치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CJ E&M에는 노동조합은커녕 PD협회를 비롯한 직능단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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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가 ‘노조 있는 회사로 가라’고 조언한 것을 들은 적 있다. 노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도 소리 낼 수 없다. 예를 들어 고 이한빛PD가 ‘근무태만’했다는 소문이 돌아도 이에 반박할 만한 단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