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 유치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한 ‘서킷 브레이커’ 자율 도입을 논의 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보조금 ‘불법’ 기준을 27만 원에서 상향 조정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보조금 규제를 풀고, 사업자들은 영업비용을 줄이는 방향이다. 영업 제한과 영업비용 유연화로 ‘보조금’을 얼릴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 방안들은 통신비를 낮추는 수단이 아니다.

서킷 브레이커 제도는 주가가 급등, 급락할 경우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거래 중단’ 수단이다. 이동통신사들은 번호이동 건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과열 기준 하루 2만4천 건), 사업자 간 협의를 통해 번호이동을 제한하자는 방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사업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5월 이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자들이 서킷 브레이커를 도입하려는 목적은 보조금을 얼리려는 것뿐이다. 최근 잇따라 ‘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보조금’까지 경쟁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업자들은 보조금을 풀지 않는 게 좋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업정지 기간 동안 3사가 절약한 영업비용은 6천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이 ‘영업정지’를 반긴 이유다.

데이터를 보면 이통사들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지난해 번호이동 건수는 1116만5786건으로 하루 3만591건 수준. 이중 통신사 내 번호이동을 제외하면 2만8천 건 정도가 타 통신사 이동건수다. 방통위 기준은 2만4천 건인데 이 기준대로라면 시장은 일 년 내내 시장은 과열이었다. 서킷 브레이커는 지금보다 더 시장이 과열될 때 발동할 보조금 통제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킷 브레이커 제도는 통신비와 관계가 없다. 수혜자는 사업자들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서킷 브레이커 도입의 최대 수혜자를 1위 사업자 SK텔레콤으로 보고 매수 의견까지 내놨다. 하나대투증권은 20일 “번호이동 자율 제한제(서킷 브레이커) 도입은 특히 SKT에 호재가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후발사업자와 경쟁이 줄어 효율성 낮은 마케팅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SK텔레콤만 이득이 아니다. 경쟁이 줄어들면 마케팅 비용도 줄어든다. 3사는 보조금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단기간에 번호를 바꾸는 이용자는 ‘효율성 낮은 마케팅 비용’을 유발하지만 경쟁 상황을 유지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경제는 21일자 사설에서 “지금의 통신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한 건 그나마 번호이동성 때문”이라며 제도 도입을 원천 반대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21일 통화에서 이 제도 도입 목적을 ‘보조금 얼리기’로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조금은 ‘악’이 아니고, 보조금이 요금제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적정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시장을 잠시 쿨다운시키는 제도적 장치라는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열을 막으려다 경쟁까지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이통사는 보조금 ‘불법’ 기준을 27만 원에서 30만 원대로 높이자고 방통위를 흔들고, 방통위는 국회가 불법 보조금 규제 대상에 제조사를 포함하는 ‘단말기 유통법’을 만들기 전 이 기준을 바꾸려고 한다. 이통사 영업이익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규제를 현실화”하는 측면도 있으나 제조사 보조금을 더 얻어내거나 출고가를 낮추려는 이통사들의 전략도 있다.

이동통신사의 불법을 줄이고, 제조사의 책임을 강화하면 이통사는 ‘보조금’을 더 얼릴 수 있다. 실제 방통위 장대호 통신시장조사과장은 “이통사 수익은 많이 줄었는데 상한을 올리더라도 이통사가 보조금을 더 줄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단통법이 통과되면 제조사 보조금이 갈 곳이 줄게 되고 그러면 출고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얼리는 조치는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만 고려한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는 “(서킷 브레이커든 보조금 상한제든) 통신비와 전혀 관계가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영업비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없는 비정상적인 규제”라며 “애초 27만 원 이상 주면 사업자들이 망한다는 논리인데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보조금 상한을 높이는 정책이 ‘불법보조금을 합법화’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머니투데이는 19일자 기사에서 “보조금 상한을 마냥 높일 수도 없다”며 “자칫 현재 불법 보조금을 합법화하는데 그치고 규제 개선 효과는 떨어질 수 있어서”라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방통위 조치는) 현재 불법 보조금을 합법화하는 것일 뿐”이라는 업계 관계자 말을 인용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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