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보조금을 규제하겠다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삼성이 개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의 말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새누리당이 삼성의 반발에도 ‘단말기 유통법안 개선법(안)’(5월 27일 발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마케팅비를 줄여 영업이익으로 돌리려는 이동통신사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적극 추진하고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이 발의한 이 법안은 △단말기 판매자가 구매자, 지역, 시기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하지 않고(단, 15% 자율) △보조금을 대가로 특정 요금제와 부가서비스를 강요하지 않고 △보조금을 못 받은 가입자에 해당 금액을 할인해주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보조금의 또 다른 주체’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는 미래부와 방통위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이동통신사 또한 자료 제출 의무 대상이다. 사업자들은 단말기 판매형황과 관련 비용, 수익 등 유통 관련 자료를 미래부에 제출해야 한다(12조). 방통위는 이 자료를 가지고 상시적인 사실조사를 벌이고(13조), ‘긴급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11조).

구매자와 구매지역, 시기에 따른 보조금 차별 지급을 처벌하는 것은 이용자에게 이득이다. 정보격차에 따른 가격 차별(일명 ‘호갱님’)을 해소할 수 있을뿐더러,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아 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가격경쟁은 없고 영업경쟁만 있는 ‘성숙기’ 이동통신 시장”에서 실제 영업현장의 출혈경쟁을 어느 정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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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법안을 뜯어보면 몇 가지 행정편의적 조항이 발견된다.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를 다루고 있는 제 3조에는 △번호이동, 신규가입, 기기변경 등 가입유형 △이동통신서비스 요금제 △이용자의 거주 지역, 나이 또는 신체적 조건 등에 따라 지원금을 차별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부당하게 차별적인 지원금”의 기준은 없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규제기관 입맛대로’ 기준을 채워넣을 수 있다.

이를 두고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상임이사는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마지막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은 경쟁하기 싫은 이통사들의 담합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행 보조금 상한선인 27만 원은 이통사의 손익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통사는 이를 낮춰 마케팅비를 줄이고 이익을 늘리고 싶고, 정부가 규제거리를 찾아보니 이 법안이 탄생했다”는 게 전응휘 이사 설명이다.

전 이사는 ‘법안 내용’에 대해 일부 환영할 내용이 있지만 대부분은 경쟁이 아닌 담합을 촉진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년 동안 신규 매출을 발생시키는 고객과 기존 고객, 고가 요금제 가입자와 저가 요금제 가입자에 대해 보조금을 달리 지급하는 것을 차별로 규정, 규제하는 것은 정부가 ‘담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부와 방통위의 법안 추진을 환영하는 건 보조금 ‘주범’ 이동통신사다. 내수시장이 꽉 찼고 장기적으로 무선전화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어 굳이 출혈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SK텔레콤은 최근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이 법안이 “보조금 과열 폐단을 해소해 유통시장 건전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이통사의 상품/서비스 경쟁 확산 및 단말기 출고가 인하로 이어져 전체 고객의 혜택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라는 제조사와 한 그룹에 묶는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관계자는 “LG전자가 우리에게만 전략폰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각자 경영하는 것”이라며 “큰 틀에서 보면 제조사를 같이 관리해야 보조금이 현실화된다”고 말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제조사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며 “체감 상 보조금은 이통사 6, 제조사 4 정도 수준인데 최근 제조사가 절반으로 올라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통사들이 이 법안에 찬성하는 배경에는 마케팅비를 줄여 영업이익을 높이고, 제조사를 압박해 삼성의 출고가를 낮추자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KT와 SK텔레콤은 오는 21일 구글과 LG전자의 합작 스마트폰인 ‘넥서스5’를 출시하는데 2.3㎓ 쿼드코어 CPU에 4.95인치 디스플레이의 고사양인 이 단말기의 출고가는 45만9800원이다. 두 통신사는 최근 이 같은 사실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전응휘 이사는 “출고가를 낮춰봤자 통신요금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 이사는 “보조금을 얼리고 경쟁을 안 하면 영업판촉비를 덜 쓰게 된다. 1인당 3~40만 원씩 지출하던 걸 15만 원만 지출한다고 가정하자. 통신사의 영업이익만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보조금 차별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이통사 카르텔인데 (논란에서)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보조금 규제’ 논란은 정부와 삼성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제조사의 보조금을 ‘출고가 거품’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규제하면 가격도 낮아지고 단말기 교체주기도 늘어나는 등 이용자에게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삼성은 부적절한 규제이며, 오히려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단말기 보조금 조성 재원 및 경로, 문제점. 미디어미래연구소 이종관 연구위원 발제문에서 갈무리.
 
미래부와 방통위는 삼성을 타깃으로 브리핑까지 열었다. 방통위 장대호 통신시장조사과장은 “제조사의 장려금은 통상 이통사를 통해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며 “투명하게 분리가 안 돼 있어 제조사 보조금 규모는 추정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 관계자는 “현장에서 ‘제조사가 보조금 장난을 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자료가 아예 없다보니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규제 대상’에 포함된 삼성전자는 “제조사와 이통사 관계에서는 이통사가 ‘갑’”이라며 “제조사 장려금은 분담금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가 보조금 규모를 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보조금은 이통사가 집행하는 것이고, 집행 주체인 이통사의 마케팅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 관련 ‘염가판매’ 행위 등을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법안은 ‘이중규제’로 주장하고 있다. 미래부에서 보조금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6월 미래부에 공문을 보내 “제조사 관련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삼성은 지난 7월부터 미래부 등 주무부처와 다섯 차례 이상 만났으나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최근 삼성 등 제조사의 입장은 언론에 더 잘 드러난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제조사의 주장을 전달하는 것은 잘못된 건은 아니지만, 업계의 주장을 과다하게 반영하는 기사로 도배하면서 법 자체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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