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의 발언에 새삼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나이들어 이런 저런 결기를 잃어버리고 현실에 순응하거나 지독한 실망감에 악담을 일삼는 그런 저런 ‘아버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한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어찌보면 대한민국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
지난 1일(화) 끝으로 막을 내린 jtbc의 드라마 (이하 )는 지상파 드라마가 별다르지 않은 내용과 자극적인 설정으로 구습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표방’한 종합편성채널의 개국 취지를 대중들에게 설득하기에 좋은, 훌륭한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다
맞다. 캔디 스토리다. 외로워서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 캔디는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거쳐 결국 ‘키다리 아저씨’ 알버트와 결혼하고 행복을 얻는다. 그 후에도 행복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행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캔디가 시집간 그곳은 그 흔한 ‘시월드’도 없고 명품백에 “출생 신분으로 인한 타
다큐멘터리가 주는 강점은 ‘사실’에 있지 않다. 그 사실로 밝혀지는 맨몸의 진실에 있다. 아무리 데이터와 자료를 통해 사실을 나열한다 할지라도 그 사실이 나열되거나 해석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생길 수 있다는 저널리즘의 기초를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리고 그 과정
냉전이 끝나고 첩보물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스파이들 마냥 퇴물이 되어 버린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도 시리즈를 계속하고 있는 시리즈를 비롯해서 최근작 이 개봉한 007 시리즈까지 첩보물은 변주를 거듭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선과 악이 분명한 액션영화에서 반주인공(안타고니스트)를 누구로 설정하는가는
‘풍수’와 ‘명당’,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의미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며 좋은 토양과 지역에서 잘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 의미는 고대와 중세를 지나며 샤머니즘의 성격 또한 아울러 갖게 되었고, 이성 중심의 합리적 세계관이 힘을 얻은 이후부터 미신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처음엔 흔하디 흔한 ‘영혼바꾸기’ 설정에 약간의 슬랙스틱이 가미된 단순한 코믹드라마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정이 아니라 디테일에 있었다. 바로 KBS 월화드라마 얘기다. 는 우연한 기회에 몸과 영혼이 바뀐 부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다. 전생에 있었던
그렇다.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 ‘7년간의 사랑’을 끝내고 다른 사람을 만나 또 사랑에 빠질 수 있듯, 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다. 내가 지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처음 만날때의 설레임이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을 바라보
삶의 질은 금전적 풍요로움에서 오는 것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은 매년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현재 벌어들이는 수익과 그것의 간극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고 만들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집단은 뗄려야 뗄수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들이다. 경제공동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개
세상은 끔찍하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지 않느냐는 희망 섞인 말은 앞에 언급한, 세상이 끔찍하다는 것에 일정 정도 동의할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렇게 비관적이냐는 문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듣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은 (가능하다면) 떠나고 싶은 나라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MBC에서 방영되었던 은 ‘설중매’ 등을 통해 역성혁명과 형제의 난 등 궁중암투를 적극적으로 묘사하여 현대사에서 쿠데타와 군사독재가 가지는 약점을 정치적 격변이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치환, 정당성을 부여했다. 사극은 모든 역사가 그렇듯 ‘어떤’ 역사를 가져다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살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족, 성공, 명예 등 여러 가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간과...
‘성’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 예전에 비해 많은 금기가 사라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솔직담백하게 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화제를 꺼내는 것은 술자리 같은 곳에서나 가능했다. 그것은 욕망에 대해 밝히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죄스럽게 생각하는 문화 탓이기도 하며, 근엄함을 강조하며 억압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려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통제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룡 블록버스터로 알고...
메디컬드라마가 주는 매력의 대부분은 매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사연이 주는 비교하기 힘든 긴장감이다. 이런 기본 바탕 위에 메디컬드라마들은 권력지향적 의사(), 반골성향의 천재 의사와 병원의 대립()과 같은 의학 외적인 갈등을 덧붙였고, 이런 갈등은 환자의 생명이라는 절대 가치와 만나 많은 시너
영화 의 첫장면은 개를 안고 있는 상태로 자살을 시도하다 재건축 아파트 옥상에 버려져 있는 오대수(최민식)을 만난 ‘자살남’(오광록)부터 시작한다. 그 ‘자살남’은 오대수가 어떻게 15년간 감금방에 갇혀 있었는지에 대한 사연을 듣고 “이제 내 얘기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어디에 사는지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굳이 광고카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그 사람이 사는 곳이 곧 그의 계층과 지위를 대신 상징해준다. 그것은 쓸데없이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일 수도 있고, 사는 곳에 조성되어 있는 문화적 인프라 때문일 수도 있다. 적어도 하나 확실한건 ‘강남 진입’이라고 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모두에게 같은 시대였지만 기억하는 주체에 따라 기억의 내용이 달라지듯, 90년대는 누구에게는 민주화의 시대로, 누구에게는 문화의 시대로, 또는 팬덤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 와 에 이르기까지 요즘들어 90년대를 적극적으로 독해하려는 시도가 대중문화에서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하VS홍철’의 결과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시청자들은, 하하의 승리로 끝났지만 대결 종목의 사소함에 비해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대결에 놀라야 했고, 부둥켜 안고 서로를 위로하는 하하와 노홍철에 모습에 눈물 흘려야 했다. 공교롭게도 이런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소비자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소비자(대중)들은 마치 객관식처럼 답이 주어져야 그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택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뿐 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을 ‘택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