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확진자 발생으로 오늘 수업 비대면 전환합니다. 확인 문자 주세요.”종강하는 그 날 까지도 다급한 문자가 도착했다. 올 한 해도 학교는 혼란스러웠다. 예술 대학에 다니는 나는 서로가 만나고, 관계 맺고, 감정 나누는 것에 대한 가치를 거듭 배웠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으로 만남에 대한 기대는 낮아지고 ‘학교 폐쇄’ ‘비대면 전환’ 등 기약할 수 없는 미래와 좌절되는 현재 때문에 피로감은 치솟았다. 선생님은 매번 수업 방식에 대해 비밀 투표를 했다. 학생들은 줌 화면 속에서 눈을 꼭 감고 손을 들고 내렸다. 오랜만에 어릴 적 교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20대 표심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대가 왜 보수화 되었느냐 질문하는 이들도 많다.부모세대와 달리 20대에게 정당은 투표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며칠간 또래 친구들에게 짧은 인터뷰를 했다. 대선을 앞두고 어떤 결정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20대 표심을 몇 가지 키워드와 그 안에 섞인 심리적인 요인들을 짧게 정리했다. 오간 이야기를 편집 없이 실었다.1. “진정성 없는 대통령 선거! 난 관심 없다!”‘다싫어’파는 대선이나 정치에 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해 할 수가 없어.’매일같이 카톡을 주고받는 동네 친구들과의 흔한 대화주제는 바로 ‘연애’다. 그 중 90%이상이 연애 상담이다. 죽이 척척 잘 맞다가도 도통 여자, 남자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기 때문이다.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는 여자친구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남자친구,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한 후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남자친구 때문에 속상한 여자친구, 일에 치여 힘들어하는 남자친구를 도와주고 싶어 손을 내밀지만 ‘알아서 하겠다’는 답변에 속상한 여자친구.
21살 공연 연출 기획을 전공하고 있는 J씨는 올해 초 영등포에 위치한 청년주택 ‘아츠스테이‘에 입주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학교 근처 원룸에서 생활했으나 5000만원이라는 비싼 전세값을 주고도 ‘잠만 자는 곳’이 되어버린 방을 벗어나고 싶었다. 코로나19로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으니 친구들도 사귈 수 없어 외로움은 더해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나와 카페로 가길 반복했다. 사람들과 마을을 이뤄 살았고 마을 사람들과 만나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느꼈던 J씨는 이대로 살 순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LH 홈페이
2020년 가을. 작년 이맘때 쯤 부천시에 공공 전기자전거 ‘일레클’이 생겼다. ‘부천시에도 서울의 따릉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자전거를 타며 도시를 누비는 기분을 만끽하려 일부러 서울에 갔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어려운 코로나 시기, 자전거 타며 소소하게나마 콧바람 쐴 수 있으면 좋으니까.일레클은 전기 자전거 업체 이름으로 민간사업자이다. 그러니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릉이’ 시스템과는 다르다. 요즘 지자체에서 공공 자전거 시스템이 활발히 도입되면서 적자 규모가 커짐에 따라 부천시처럼 민
동네 영어학원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과 단톡방(단체 카톡방)에서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한 친구가 중학교 때 생활기록부에 적힌 ‘장래희망’ 칸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줬다.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무용과 음악을 하길 원했던 친구는 중학교 3학년 때 ‘국제 변호사’라는 장래희망을 써 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때 외고에 갔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0년. 중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하는 애들은 외고, 특목고, 자사고 등 유명 명문 학교에 입학하길 희망했다. 그야 당연히, 인서울 대학은 물론이
명절이 코앞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큰 삼촌을 떠올린다. 어려서부터 간식 대신 밥을 좋아하는 내게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얘는 밥 밖에 몰라” 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밥을 잘 먹는 손녀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 싶은 대목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밥을 축내는 것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러고 있자면 옆에 앉은 큰 삼촌이 한마디씩 꼭 거들었다. “얘는 어려서부터 울순이. 울순이였잖아.” 삼촌은 혼자서 키득키득 대며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그 눈길을 알면서도 매번 피했다. 제일 먼저 밥그릇을 비워내고 삐쭉
요즘 따라 방송사 공채가 계속 뜨고 있다. 참 모순적이지만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헉 또 떴네’ 나는 공채가 뜨길 바라지만 격렬하게 뜨지 않길 바란다. 무슨 X소리인가 싶을 거다.대학교 4학년, 그러나 두 번째 대학이라 스물일곱이나 먹어버린 나는 새해부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늦으면 입사 적령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나이로 27살이 넘으면 나중에 족보가 꼬일 수도 있다느니, 회사가 선호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들을 떠올렸다. 난생처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쳤던 새벽, 불안한 마음으
얼마 전 학교에서 이런 문자가 왔다.‘2학기 개강 대비 코로나19 백신접종 협조 요청’ 관련, 사이트(학교 사이트)에 코로나19 백신 예약 및 접종 현황 조사 기능이 구축되었습니다. 해당 기능에 ‘개인별 백신 예약접종 필수정보 입력’이 8.10(화) 19:00부터 가능하오니, 입력에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잡음이 많았던 ‘비대면 전환’간단히 말해 학교 홈페이지에서 학생들의 백신 접종 관련 정보를 수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코로나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비대면으로 전환된 수업 때문에 혼란을 겪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곤욕을 해결해
정전은 갑자기 찾아왔다. 그 날 저녁은 모처럼 엄마와 펜싱경기를 보며 막걸리에 선풍기, 등 뒤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던 날이었다. 연애 상담과 사랑 이야기까지, ‘이게 진짜 행복이다’ 싶었던 시간을 보내던 찰나. ‘푸욱-’ 눈앞이 깜깜해졌다.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10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 엄마도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누가 우리를 속이고 있나봐! ‘트루먼’이 되었다두꺼비 집을 올려보고 앞뒤 베란다를 살펴본 결과 아파트를 분양한 두 건설사 중 한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가 정전되었
며칠 전 난생처음 점을 뺐다. 귓바퀴에 꽤 커다란 점이 생긴 걸 엄마가 발견했다. 엄마는 사진까지 찍어 보여주며 “점의 모양이 좀 이상한데? 너무 크잖아?”라고 말했다. 그날 밤 소름 끼치게도 유튜브 채널에 ‘점인 줄 알았는데 피부암?!’이라는 썸네일이 떴다.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피부과에 방문하기 전까지 유튜브 동영상에서 일러준 ‘흑색종 판별하는 ABCDE 방법’을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로 점을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은 악성일 확률은 적지만 위험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빼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
마음이 웅장해진다는 말. 아마도 이럴 때 쓰는 걸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쏜다!” 집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에게 연락해 양손 가득 간식을 담아가는 넉넉함,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던 책을 동네 서점으로 사러 가는 발걸음, ‘최저가’가 아니어도 당장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쿨함 까지! 밋밋했던 일상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설렘으로 지냈던 2020년. 내겐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이 있었다. 물질적 풍요로 말미암은 정신적 풍요랄까? 함께 청년기본소득을 받았던 한 친구는 “있다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며 “취준생은 책 값 달라고
요즘 부천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놀이터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벌써 6개월째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다섯 개의 놀이터는 10년 전까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구성과 테마가 달라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은 공룡 놀이터 갈까?” “지네 놀이터에서 만나!” 그런데 놀이터를 상징했던 놀이기구가 철수되었다. 대신 죄다 똑같은 소재와 크기, 빨갛고 파랗고 노란 플라스틱 놀이기구가 들어섰다. 가장 넓었던 놀이터는 크기가 반에 반으로 줄었다. 이제 이 놀이터는 주차장이 됐다. ‘안전제일’ 이라는 플라스틱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