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코앞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큰 삼촌을 떠올린다. 어려서부터 간식 대신 밥을 좋아하는 내게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얘는 밥 밖에 몰라” 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밥을 잘 먹는 손녀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 싶은 대목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밥을 축내는 것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러고 있자면 옆에 앉은 큰 삼촌이 한마디씩 꼭 거들었다. “얘는 어려서부터 울순이. 울순이였잖아.” 삼촌은 혼자서 키득키득 대며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그 눈길을 알면서도 매번 피했다. 제일 먼저 밥그릇을 비워내고 삐쭉대는 입으로 안 방에 들어가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을 켜 놓고 앉아 생각했다. “이 시골에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할머니와 삼촌은 비슷한 시기에 암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다. 요즘엔 워낙 다양한 이유로 암이라는 병에 걸리긴 하지만 가족력이 없던 집안에서 두 명의 암환자가 나온다는 것이 우리 가족으로썬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나를 놀렸던 건장했던 삼촌이, 굽은 허리로 새벽같이 밭일을 하고 땀 흘리며 집 안으로 돌아오셨던 할머니가 투병 생활을 하며 조금씩 마른 몸으로 생을 마감하는 얼굴은 아직까지도 내 잔상에 남아 지워지지가 않는다. 어떤 원인도 정확히 알 순 없었다. 스트레스, 음주, 흡연, 노화 등. 수많은 변수를 상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겐 남몰래 생각해오던 것이 있었다. 바로, 송전탑이다.

나의 친가 댁은 충청남도 당진이다. 충남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이 집중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새 부터인가, 국도를 타고 시골에 갈 때마다 뿌연 연기를 내뿜는 화력발전소가 하나 둘 씩 늘어났다. 이에 따라 대규모 송전탑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2016년 자료 결과만 보더라도 당진에 765kV 송전탑이 80여개로 전국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345kV 송전탑 개수를 합치면 수백 개가 예상된다. 실제로 2010년 이후부터 송전탑이 주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큰 효력이 없었다. 송전탑과 건강에 대한 인과관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인데, 해외 사례만 봐도 우리나라의 기준이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전, 충청지역 인터넷 신문 <디트뉴스24>에 따르면 한전은 주민들의 전자파 우려에 대해 ‘국내 기준치인 883mG(밀리가우스)보다 훨씬 낮아 안전하다’고 말했으나 883mG는 장기적인 노출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웨덴은 2mG, 네덜란드 4mG, 스위스 및 이스라엘 10mG에 비해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 충남 당진시와 한전이 송전시설 건축허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2014년 3월 당진지역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시위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 충남 당진시와 한전이 송전시설 건축허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2014년 3월 당진지역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시위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사람이 못살게 되어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고 가축들이 새끼를 낳지 못하여 재산상의 피해를 입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서 하늘을 보면 거대한 송전탑에서 뻗어나가는 전선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시골이 더 공기가 좋을 거라는 착각, 살기 좋을 거라는 착각. 모두 송전탑이 낳은 결과다.

송전탑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할아버지나 아빠는 송전탑을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 나의 생각을 말했을 때, 아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마을에서 죽음이 계속되고 암환자가 늘어나면서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할머니와 삼촌이 안 계시는 쓸쓸한 시골집. 나의 명절은 그 어떤 날 보다 슬프고 슬픔에 뒤섞여 복잡한 감정들을 마주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원망과 분노다. 밭 위에 세워진 저 송전탑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놀림을 받으며 시끄러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겠지. 그리고 더는 그 말들이 나를 향한 화살이 아닌 사랑의 다른 방식이라는 걸 알고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겠지. 내게 이 일은 웬만한 괴담보다도 끔찍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충청남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화력 발전소 송전선로 영향에 따른 환경 역학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 건강 피해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소식을 또 전해듣게 됐다. 할머니와 삼촌이 살았던 집에서 걸어서 10분, 한 동네에 살던 또 다른 친척이 암에 걸렸다는 비보였다.

한 가정의 안정감과 평화가 깨지는 것은 이토록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더 많은 가정이 파괴되어야, 갑작스럽고 황망하게 가족을 잃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되는 걸까? 하루 빨리 송전탑 가동을 멈춰야 한다. 아직도 송전탑의 무시무시함을 모른다면 묻고 싶다. 바다뷰도 아니고 마운틴뷰도 아니고, 송전탑 뷰인 곳에서 살고 싶습니까?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내는 회색 연기 안에서 숨을 크게 쉬고 싶은가요?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평범한 하루를 반납할 준비가 되었나요?

이혜원은 다큐멘터리를 전공하며 자유롭고 틀에 갇히지 않은 시선으로 20대 청년들의 삶과 세상을 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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