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새던 바가지, 밖에서도 줄줄 샜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정치권 쟁점으로 떠올랐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26일 성명에서 "여기저기 줄줄 새는 깨진 바가지에게 더 이상 외교부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겨둘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당장 유 장관을 해임하고 '불법적인 망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이 지적한 문제의 발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26일자 지면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유명환 장관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노컷뉴스  
 
유명환 장관은 기자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는 게 언론 보도 내용이다.

언론은 유명환 장관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채 정부 고위당국자라고 밝혔지만, 한겨레는 26일자 사설에서 문제의 고위당국자는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야당 국회의원을 향해 "여기 왜 들어왔어. 미친놈"이라고 말한 당사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명환 장관이었고, 욕을 들었던 당사자가 바로 천정배 의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저지했던 야당 국회의원을 향해 현직 장관이 '욕설'을 내뱉은 황당한 사건이다. 유명환 장관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욕설을 내뱉었다가 입방아에 오르고 말았다.

   
  ▲ 한겨레 2009년 4월30일자 사설.  
 

당시의 황당 사건은 언론의 매서운 비판으로 이어졌다. 한겨레는 지난해 4월30일자 <어물쩍 넘길 수 없는 유명환 장관의 '망언'>이라는 사설에서 "부지불식간에 입 밖으로 나온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과 품격, 평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유 장관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거의 시정잡배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가 생명인 외교 최고위층의 황당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를 보여준 대목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처럼 물의를 일으킨 유명환 장관이 인사에서 물을 먹기는커녕 '장수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는 점이다.

유명환 장관은 결국 다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유명환 장관의 발언은 야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을 종복주의자로 모는 편협한 시각이 담겨 있다. 천정배 의원은 "유 장관의 발언은 7.28 재보궐 선거를 불과 4일 앞두고 나온 정치편향 발언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국민의 신성한 주권행사를 비하하고 왜곡한 반민주적 폭언이다. 사퇴 사유를 넘어 형사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당 의원도 트위터에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정동영 의원은 "사람의 말은 생각의 반영입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젊은이들에게 '북이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라'고 한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평소 유 장관의 왜곡된 사고와 인식의 반영"이라고 비판했다.

정동영 의원은 "정부가 진정으로 6자회담 재개와 남북간 화해협력을 바란다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외교안보팀부터 교체해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외교안보팀의 교체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도, 동북아 평화도, 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G20 성공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외교부 장관은 외교적 발언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유명환 장관은 하는 말의 수준마다 저급하거나 반말"이라며 "이런 장관이 어떻게 외교의 전면에 나서서 외교전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외교부 장관이 이런 말을 언론인들을 모아 놓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정권 전체의 오만이 극에 달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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