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주요 사건이 터지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어디까지 실명(實名)을 밝히고 누구를 익명(匿名)으로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부분이다. 사안과 내용에 따라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저널리즘의 원칙은 존재한다. 사례를 통해 그 원칙을 적용해본다.

2010년 7월 26일자 상당수 미디어는 "친북성향 젊은이들, 차라리 북한 가 살아라"란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중앙의 메이저 신문들은 ‘정부 고위당국자’라는 모호한 익명의 이름을 동원하여 보도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천안함 사태 이후 국내의 국론분열 양상을 지적하며 ‘이런 정신상태론 나라 유지 못한다’며 ‘친북성향의 젊은이들은 차라리 북한에 가서 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7월26일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겨레신문 등)

연합뉴스 서비스를 받은 대다수 지방언론 역시 ‘정부 고위당국자’로 표현해서 보도했다. 언론에서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도록 ‘배려하여’ 신원파악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사설을 통해 비판에 나선 한겨레 신문에서도 ‘정부 고위당국자’로 익명처리했다.

유명환 외교부장관 '막말' … 연합뉴스 등 익명 처리

그런데 ‘미디어 오늘’(7월 26일자)에서는 “국민을 '철부지'라 매도하는 유명환, 이런 외교장관 세상에 또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실명으로 보도하며 사진까지 공개했다. 미디어 오늘은 유 장관을 거명하며 "(6·2 지방선거 때)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를 얘기하면서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고 해 거기에 다 넘어갔다.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 나라로서의 체신이 있고 위신이 있고 격이 있어야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익명으로 할 것인지 실명으로 할 것인지 판단 여부의 첫 번째 원칙은 발언의 내용이 사사로운 것인가 공적인 것인가 혹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가 등이다. 위에 인용한 유 장관의 발언을 보면 바로 판단이 선다. 공적 사안으로 국민은 한나라의 외교총책임자의 인식과 발언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발언 당사자의 신분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같은 발언이고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신분보호가 우선시 돼야 할 사인(私人)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 장관 등 고위공직자는 공인중의 공인이다. 공인의 사생활 보호는 제한을 받듯이 공인의 발언도 익명보다 실명이 원칙이다. 공인의 언행은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적 자리에서 외교장관의 발언, 국민 알권리 있다

세 번째로, 이런 발언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경위로 나오게 됐느냐가 변수가 된다. 보도에 따르면, 유 장관은 지난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일정 중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해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어떡하느냐'고 질문받자 "계속 북한한테 당하고도 제발 봐주쇼, 북한에게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응대하면서 문제의 발언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찮게 내뱉은 말이 아니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작심하고 쏟아낸 발언을 익명으로 처리한 것은 언론 스스로 저널리즘의 원칙을 훼손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발언이후에 오프더레코드(보도금지)나 엠바고(보도유예) 등의 제한이 있었느냐 여부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는 후속보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들의 일종의 빗나간 담합으로 우려된다. 외교부 장관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장관의 공개적 발언은 뉴스밸류에 따라 실명공개가 원칙이다. 과거 암울한 시절에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익명의 보도’가 필요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기자단 알아서 '익명보도' … 기자 양심과 원칙 되돌아봐야

그러나 보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선진언론에서는 익명보도 보다 실명보도를 선호한다. 특히 AP통신사 같은 곳에서는 고위 공직자의 경우 혹은 타인을 비판할 때는 반드시 실명보도를 하도록 윤리강령에 규정하고 있다. 익명보도의 편의함에 숨어서 비겁한 돌팔매질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흔한 ‘정부고위당국자’라는 익명의 보도가 기자들의 자발적인 협조에서 나온 것이라면 취재원과의 유착을 의심해야 한다. 그것도 모르고 한 언론사에서 익명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우리도 덩달아 익명보도했다면 기자의 양심과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발언의 내용에 대해 찬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철저하게 논외로 했다. 다만 저널리즘의 원칙 차원에서 익명과 실명 보도에 대한 정당성과 논리를 미디어에 묻는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목적의 이해관계를 따지더라도 언론인들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원칙도 정의도 혼란스러운 시기, 저널리즘의 원칙 존중은 더욱 강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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