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한나라당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의 화두는 역시 멀리 떨어진 서울의 '도곡동'이었다. 국민들에게 그저 금싸라기 값을 자랑하는 땅으로만 알려졌던 지역이었지만 13일 검찰의 중간조사발표 이후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의 가장 큰 화두가 됐다.

마지막 지방 합동연설회가 열린 대구에서는 연설자의 입에서 '도곡동'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그 내용에 따라 박근혜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 사이의 반응이 엇갈렸다. 

14일 오후 2시30분부터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는 특히 대구가 자신의 '홈그라운드'임을 고려해 지지자들을 향한 감성적 호소도 잊지 않았다.

   
  ▲ 이명박(왼쪽)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 ⓒ연합뉴스  
 
박 후보는 "대구 경북의 딸 박근혜가 경선 5일 앞두고 고향에 왔다"라며 시작한 연설에서 "내일은 광복절이면서 어머니 기일이기도 하다. 22살에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오랜 시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왔지만 고향의 어르신, 형제, 자매 여러분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설의 끝은 "어제는 아버님 생가에 다녀왔다. 아버님께서 못 다한 선진국의 꿈, 어머님의 사랑과 헌신의 삶 제가 마무리하겠다"였다.

자신의 말대로 고향에 와서인 듯 다른 연설회 때보다도 훨씬 자신감 있는 어투로 연설을 이끈 박 후보는 하루 전 발표된 검찰의 발표를 최대한 활용했다.

박 후보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고 나서 도곡동 땅과 BBK의 실제 주인이 우려한 대로 밝혀지면 그때는 이번 대선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어제 검찰이 도곡동 땅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고 했고, 땅 판 돈에서 매달 수 천 만원씩 현찰이 빠져나갔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9월에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김경준씨와의 관계에 대해 한겨레21이 보도한 것도 거론하며 "김경준씨가 5500명의 투자자에게 1000억원대의 피해를 입혔고 피해본 사람이 자살까지 했는데, 김씨가 9월에 (한국에) 와서 BBK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밝힌다고 하는데 만에 하나 그(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연설 내내 조용했던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은 박 후보의 '도곡동 땅' 관련 발언에 이어 BBK 관련 이야기까지 나오자 일부 지지자들이 야유를 하기도 해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명박 후보는 이렇게 현장 분위기가 '도곡동 땅' 의혹을 부풀리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을 차단하고자 최대한 빨리 의혹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후보는 연설 초반부터 "오늘 오전 11시 정동기 대검 차장이 '(도곡동 땅은) 이명박과는 관계가 없다. 증거가 있다면 왜 발표 안 했겠는가'라고 분명히 확인해 줬다"며 "검찰이 자기 할 일을 해야지 이 역사적인 순간에 오해받을 짓을 하면 큰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도곡동 땅에 이어 김경준씨와 관련해서도 해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오늘 BBK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여당이 해야하는 것"이라며 "비록 처절한 가난 속에 살았지만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왔다. 누가 제 삶에 돌을 던질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금까지 나를 음해했던 이들이 차례대로 감옥에 갔다"며 지만원씨와 김유찬 전 비서관을 거론했다. 이번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과 BBK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논조다.

박 후보가 이 후보의 최근 드러난 여러 약점들을 이야기하며 감성적 접근에 치중한 것에 비해 이 후보는 자신의 운하 공약을 강조하는 데 보다 힘을 썼다. 이 후보는 "대구 경제는 천지개벽해야 한다"며 "한반도 대운하로 내륙에 갇혀있는 대구에 물길을 열 것이고 대구는 항구도시로 바뀐다. 그렇게 해서 국가산업단지 300만평을 만들고 대기업이 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렇게 두 후보의 신경전이 날카로운 가운데 홍준표 후보는 도곡동 땅을 거론하며 두 후보 사이의 줄타기를 시도했다. 시종일관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나 20년 넘게 검사로 살면서 재산 병역 여자 문제 등 부끄러울게 없다'며 자신을 홍보하는 발언으로 이어나가던 홍 후보가 "어제 도곡동 땅과 관련해 검찰이 중간발표를 했다"고 운을 떼자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홍 후보는 "한 쪽은 네 땅 아니냐고 말하고 한 쪽은 내 땅 아니라고 하는데 주인이 없으면 내게 달라"며 "서민들 잘 살게 하는 데 쓸테니 내게 달라"고 말했다. 연설 순서상 홍 후보가 박 후보보다 먼저 연단에 서서 이런 발언을 하자 박 후보 지지자들은 크게 흥분하며 장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전초전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렇게 박 후보에게만 유리한 발언을 해줄 홍 후보가 아니었다. 홍 후보는 "검찰이 여러분을 교란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것을 지금 발표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19일에 당당하고 냉정하게 투표해야 한다"고 말해 검찰의 발표가 시기적·내용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내 조용했던 이 후보 지지자들은 홍 후보의 이 같은 발언에 일제히 일어나 "와"를 연호하며 호응했고 박 후보 지지자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대구=윤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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