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분이 멀다하고 ‘빵’ 터졌다. 그의 입은 판도라의 상자이자 웃음제조기였다. 수많은 정보들이 개그로 가공되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남을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행복할 수 없다. 그는 해고 노동자에 파업을 지휘하는 노조 위원장이며 그로 인해 수많은 고소고발을 당했다. 국민일보 조상운 노조위원장, 국민일보 파업이 63일째 되는 23일, 그를 만났다.

“해고됐지만 사장보다 먼저 출근합니다”

그를 만난 장소는 역삼동에 위치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국민일보 지부에 속해있는 국민CTS 지회와 사측이 임금협상결렬에 따른 지노위 조정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위원회 내부에서는 조용하다가도 간간히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16일 노사 간 임단협에 노무사를 내보냈던 국민CTS는 이날 다시 사측 관계자가 나왔지만 송인근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결정권자가 조정에 참석하지 않으니 대화의 진전이 안 된다”며 CTS 노조 간부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사측은 조정위원회에서도 임금 인상안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상보다 길어지네요” 조상운 노조위원장의 얼굴은 아직 침착했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날 조 위원장은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 7시 30분 경 노조 사무실에 도착했다. 해직언론인이기에 출퇴근 시간에 제약이 없음에도 그는 일찌감치 노조 사무실에 나온다. “조민제 사장이 출근을 잘 안하고 있는데, 저는 사장보다 먼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장보다 빨리 나와야 사장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국민일보 노조는 돌아가면서 사장 출근을 감시하고 있다. 이는 사장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장 출근을 독려하기 위함이라고 노조 측은 설명한다. “일단 회사를 나와야 대화를 할 것 아닙니까? 대화를 안 하겠다면 왜 안 하는지라도 물어봐야 하는데 회사에 얼굴을 비치지 않아요” 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다시 지노위. 조 위원장은 쉬는 시간에 담당 노무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지노위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복직이 안 됐다. 국민일보 사측이 중노위에 항고했기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너무 약하게 보는 것 아닌가 싶어요. 회사가 이행 강제금만 내고 버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복직조치를 강제할 수 없어요.” 그는 이와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지노위 1차 조정은 낮 12시40분이나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애초 계획보다 1시간여 정도 늦은 시간. 이날 종일 바쁜 일정이 있지만 그는 파업 집회 등은 다른 노조 집행부 간부에게 맡겨놓고 조정에 참석했다. “CTS 지부와 합병하면서 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CTS도 평온한 상태는 아니니까요” 조 위원장의 답이다. CTS노조 간부들도 조 위원장의 합류가 “큰 힘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 조 위원장은 1시가 넘어서야 CTS노조 간부들과 늦은 점심을 먹었다.

 

노조 6개월만 하기로 했는데 결국 6년

1996년 국민일보 공채 7기로 입사한 조 위원장은 2001년 국민일보 파업 당시 노조 간부를 맡아 집회 사회를 봤다. 그리고 2007년 1월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에 취임했다.

이후 무려 6년 간의 장기집권. “기수별로 1년씩 내려갔는데 5기 이후 6기에서 노조위원장이 안 나왔어요, 노조 임기 종료와 임단협 기간이 겹쳐 노조 임기를 옮겨 6개월만 하기로 했는데 당시 현안이 있었고 노조위원장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 첫 연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인 박미석 논문표절 의혹을 국민일보가 단독보도를 했는데 2보가 청와대 압력으로 못나갔어요, 우리는 이 상황을 편집권 침해라고 봤고 편집국장과 편집인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결국 당시 편집국장이 재임 8개월 만에 퇴진했고 편집인도 보직사퇴를 했지요 그러다 3번째 선거에 나섰어요.”

그의 장기집권 비결은 노조원들의 신뢰다. 편집국장 평가투표제로 편집권 독립을 지켰고 재임기간 동안 임금인상 성적도 훌륭했다. 한 국민일보 노조 간부는 “기억력이나 추진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사측에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임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제일 고민 된 것이 이번 임기에요. 노사갈등이 생기면서 노조원들도 이런 상황에서 다시 조상운에게 맡기느냐 다른 후보에게 맡기느냐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내가 안 나서는 것도 무책임한 거고, 다른 사람도 출마를 하지 않았어요. 저는 적어도 80%의 득표율이 나오면 그동안의 노조 스탠스를 밀고 가라는 것으로 판단했는데 투표에서 80%이상 나왔죠.”

0원 월급 명세서, 그마저도 못 받고 보니

조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13일 국민일보에서 해고당했다. 분위기는 이전부터 감지됐지만 노조위원장의 해고는 노조원들에게 충격을 줬다.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차장대우 급 간부들이 “조 위원장을 해고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그동안 조민제 사장에 직격탄을 날려온 조 위원장은 결국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때는 덤덤했어요.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죠. 해고에 앞서 8월 회사가 최후통첩 공문을 보냈을 때 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느낌을 받았어요, 9월에 이재만 경영전략실장이 경질된 것도 징조였죠. 이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해고 목적을 달성하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저도 해고에 대비가 안 되었고 가족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준비된 것 없이 이 상황을 돌파하기는 힘들겠다 싶었어요” 조 위원장은 말했다.

 

 

가족들은 그의 해고통지서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가족들은 처음에 노조위원장을 한번만 할 줄 알았죠. 연임할 때나 3번째 할 때 반대가 심했는데 4번째는 포기 하더군요. 해고가 되었을 때도 ‘결국 이렇게 되었구만’ 이런 반응이었고 특별히 크게 격앙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어요. 다만 경제적인 문제는 ‘당장 뭐먹고 사나’ 까지는 아니지만 얘기가 있었죠.”

그는 해고 이후 4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날은 회사에서 노조원들에게 0원 월급명세서를 배포했는데 조 위원장만은 그나마도 받지 못했다. “이럴 때 해고자임을 느끼죠” 씁쓸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래도 해고 이후 두 달 간은 대의원들의 결의로 노조비를 대출 받았고 이후 두 달은 어차피 파업을 하고 있어서 못 받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저축한 돈으로 생계를 꾸리는데 큰 지장은 없고 아이들도 초등학생, 중학생이라 큰돈을 쓸 일은 없어요.” 고통스러울 텐데, 매우 태연한 말이다.

다만 사측의 고소고발은 그에게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현재 그는 조용기 회장과 조민제 사장에 대한 모욕, 관련 민사 손해배상, 불법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으로 숱한 송사에 휘말려 있다. 그는 “아무래도 가족들이 불편해 해서 가급적이면 노조 사무실로 소장을 보내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파업 하는 것 자체로도 걱정이 많은데 소장이 날아오면 더 불안해 하겠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줄 소송을 제기하면 노조원들이 위축되어 손을 들고 말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파업 대오  ‘분노’

지노위에서 돌아오니 노조원들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강연을 한참 듣고 있었다. 이후 4시 부터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강연이 있는 상황, 그는 한 교수의 강연이 끝나자 한 교수와 인사를 나눈 뒤 잠시 복도 농성 중인 조합원들을 찾아 국민CTS 조정 결과를 설명했다.

 

 

“오전에 제가 잠시 없는 틈을 타서 제가 파업을 그만두고 사측에 복귀한 것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국민CTS 지노위 조정이 있어서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보고 순간에도 ‘드립(유머)’은 잊지 않는다.

국민일보는 파업 70일에 가까워졌지만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장기투쟁사업장’ 치고는 이탈율도 매우 적은 편이다. 누군가는 투쟁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하지만 국민일보 노조는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천천히 투쟁수위도 높이고 있다. 처음에는 임금인상이 노조의 주력이었지만 최근에는 조민제 사장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일보 파업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분노’ 때문이었다. “최근 막내기수까지 11명을 무더기 고소하면서 조합원 분노가 결집이 되었어요. 결국 대화나 합리적인 판단보다 고소고발을 무기로 굴복시키려는 비열한 술책을 쓴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죠. 노조 집행부를 고소했다는 것만 해도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막내기자 등 평 조합원까지 무더기 고소하니 이성을 상실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일보 노조는 때문에 워크숍 이후 강도를 높였다. 편집국·종교국에 진입해 침묵시위를 벌이며 선배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조 위원장은 “회사는 근로조건이 아닌 것을 주장하면 불법파업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은 누구인가요? 조민제 사장입니다. 비리혐의를 받는 사장에 대한 비판과 퇴진요구는 파업이 아니라도 노조가 할 수 있는 사안이에요. 더구나 사회 부조리나 비리에 대해 비판과 감시,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근본인데 자기 사장이라고 침묵한다면 그것은 노조라고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조용기 일가 사유재산 아니다

여기서 이 싸움이 왜 시작되었을까? 조 위원장에게 물었다. 그는 “국민일보가 조용기 일가의 사유재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6년 국민일보가 5개면을 털어 대대적으로 국민문화재단의 출범을 알렸어요, 당시 조용기 목사가 ‘국민일보를 한국 교계와 사회에 내 놓는다’고 했죠, 그런데 그 재단의 초대 이사장이 조용기 목사였어요. 그리고 사장으로 셋째 아들인 조민제가 부임했죠, 이게 사회 환원입니까?” 그가 물었다.

“국민문화재단이 국민일보 인사권을 갖고 있는데 당시 보도대로 이것이 사유화가 아닌 환원이라면 친인척을 배제해야죠. 이후에 국민일보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봐도 후임 회장 발행인으로 오겠다고 한 것이 조용기 목사 부인인 김성혜에요. 그것을 노사가 공동비대위를 꾸려 저지한 거에요. 그리고 다시 돌아 조용기 목사가 회장으로 온 겁니다. 자기들 것이 아니라면 이런 분쟁이 있을 수 있나요? 주식도 없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가족에 의한 사유화의 증거죠. 가족 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조용기 목사가 새벽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며 국민문화재단에 사표를 냈는데 사표도 수리하지 못했어요. 일부 이사들이 그때 사표를 수리했어야 했다고 후회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여의도 순복음 교회 혼란도 잠잠해지고 국민일보 사태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죠.”

조용기 목사는 한국 교계에서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영향력은 교계 뿐 아니라 정계와 언론계 등 각계에 미친다. 그런 거대권력과 맞서는 일은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바로 그 일을 국민일보 노조가 70일 가까이 하고 있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민일보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에요. 파업에 들어간 이유는 임단협 결렬이지만 파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죠. 국민일보가 바로 서야 한국교회가 바로 섭니다. 우리는 편집권 독립으로 균형 있는 전달자가 되겠다는 것이에요. 조용기 목사 일가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소식을 전달해야지 부정이나 부도덕을 비호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일보를 그대로 국민에게 전해야죠. 사유화는 막아야 합니다. 그게 목적이에요.”

“이번 파업은 어느 한 기업에서 빚어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만은 아니에요, 특히 국민일보에 대한 독자들이나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은 ‘조용기 목사 신문’이라는 것인데 그게 아닙니다. 국민일보는 국민문화재단이라는 공공재단이 주식 전부를 갖고 있어요. 조용기 목사의 신문이 아니지만 사유화된 이 신문의 현실을 이제라도 바로 잡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국민일보가 보도한대로 국민문화재단 출범 정신을 실현하라는 것이에요.  그 약속 지킬 수 있도록, 이번 파업에서 목소리를 내고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어려운 싸움일수 있어요. 편집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는데 나는 지켜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정의가 이긴다는 우리의 피켓이 본질입니다. 이 싸움에 힘을 보태고 지지해주신다면 우리의 싸움이 좀 더 일찍 끝날 수 있겠지요”

선배들, 나와라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연이 마무리 된 뒤, 조 위원장은 회의를 주재했다. 국민일보 노조는 파업 기간 동안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다. 그리고 노조 간부들과 노조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국민일보 사태 해결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저녁 7시40분, 국민일보 사옥 앞에서 남은 조합원들과 함께 촛불집회를 열었다.

 

 

아직 국민일보 편집국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간부들의 야근으로 불이 켜져 있다. 조 위원장은 “젊은 기자들은 저에 대한 지지보다는 노조를 이렇게 대하는 회사에 분노했어요. 그런데 사측은 2001년 파업에 비해 지금은 간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해요. 애초에 사측은 이번 싸움을 노사 분쟁이 아닌 조상운과 사측의 전쟁으로 몰고 갔죠. 하지만 2001년 파업 유발자인 조희준(조용기 목사의 장남)은 대표도 아니고 인사권도 없었던 반면 조민제 사장은 인사권이 있는 현 사장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MBC 간부들이 노조 입장을 지지했는데 그런 선배를 둔 MBC가 부럽습니다. 국민일보 간부들은 철저히 사장 편에 섰어요. 내 편이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텐데 정말 아쉽고 인간적으로 서운합니다.”

조 위원장은 언제나 유쾌하다. 그의 유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국민일보 싸움도 그렇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죠. 잘못한 자들 불의한 자들이 스트레스 받아야죠. 인생은 즐거워야 합니다. 안에서는 파업하는 당신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부러우면 나와야죠, 어렵지만 현실을 긍정적이고 즐겁게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가 옳기에 이긴다. 자신감을 갖고 임해야죠. 원래 얼굴이 어두운 것 빼고는 어두운 면은 없어요.”

 

 

 

 

조 위원장은 불 켜진 편집국을 뒤로 하고 촛불을 들고 KBS 촛불문화제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이제 국민일보도 다른 언론사 싸움에 연대를 시작했고 다른 언론사도 국민일보 싸움에 연대를 시작했다. 종류는 다르지만 권력과의 싸움 판은 커지고 있다.
 

 

 

■조상운 위원장은…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은 지난 1996년 국민일보 공채 7기로 입사했다. 최초 편집부 편집기자로 근무하다 2000년 체육부로 옮겨 취재기자로 나섰고 2002년 월드컵을 취재했다. 이후 2003년 사회부를 거쳐 다시 2003년 말 체육부로 복귀한다. 지난 2001년 국민일보 파업 당시 노보 편집위 간사를 맡았다. 이후 노조 총무부장 등을 거쳐 2006년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이래 내리 6년 간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민일보 경영권 다툼에 맞서 세워진 노사공동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11년 6번째 노조위원장 임기 중인 10월 국민일보로부터 해고당한다. 같은 해 12월 22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결을 내리고 원직복직을 판정했지만 여전히 복직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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