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얼굴을 가장 많이 떠올린 사람은 누구일까? 김윤옥 여사? 아니면 청와대에 가 계신 분? 답은 시사만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그분을 매일같이 그리는 것도 모자라 그분의 생각까지 꿰뚫어야하기 때문이다.

#퀴즈 둘
그럼 시사만화가들의 하루일과는 어떻게 될까? 그림 한 컷만 그리면 끝난다고? 모르시는 말씀이다. 어느 개그맨의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시사만화가의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루하루 피를 말린다는 시사만화가의 생활을 뒤쫓았다. 지난 16일 오전 11시가 가까운 시각. 목동 CBS 사옥 앞에 잔뜩 수염이 난 얼굴에 퀭한 눈을 하고 나타난 권범철 화백(39)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커피나 한잔 하자”고 말했다. 치열한 시사만화가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겠다는 기자의 마음에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권 화백은 처음부터 “기자님, 아마 원하시는 그림이 없을 것 같은데요”라며 확인 사살(?)까지 했다.

파란만장했던 수련생시절

잠깐 권 화백의 프로필을 보자. 권 화백은 지난 2000년 부산 국제신문에서 시사만화 수련생으로 시작해 2010년부터 CBS 노컷뉴스 카툰을 맡고 있다.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 권 화백의 프로필 이면에는 깊은 얘기들이 많다. 권 화백은 마산 창원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 그림패 활동을 계기로 시사 만화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회과학계열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대신 현장에서 사회과학의 힘을 확인하기로 하고 이주노동자 상담소에서 일을 도왔다. 지금이야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지만 당시에 이주노동자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직군이었다.

처우나 환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노동 현장에서 욕설이 난무했고, 산재나 임금 체불 문제가 비일비재했다. 자원봉사를 하다가 아예 눌러 앉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 인생에 그림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을 쌓기 위해 청소하고 관리만 하면 방세는 공짜라는 시골 빈 집을 구해서 수개월동안 그림만 그렸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 부산 국제신문에 시사만화 수련생으로 공개채용이 됐다. 순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수련생이 건방지다’고 선배 화백에 찍혀 3개월 만에 잘렸다. 학생 때부터 독자투고를 해왔던 경남도민일보에 문을 두드렸다.

창간 초기 제대로 된 지역신문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권 화백이 처음으로 만평 코너를 시작했다. 몇 십 만원의 월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버텼다. 그리고 2005년 회사를 나왔다. 프리랜서로 매체에 시사만화를 그렸다. CBS 노컷뉴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2010년 편집진이 권 화백의 시사만화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 시사만화의 생명은 끝이라는 생각에 권 화백은 ‘이런 식이면 만평을 그리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뜻밖에 편집진은 정식으로 권 화백을 CBS 시사만화가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다. 권 화백의 표현대로라면 화백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파란만장의 길을 걸은 셈이다.

 

 

 

 

마감에 애타는 건 기자들과 마찬가지
자, 이제 권 화백의 하루 일과로 돌아가보자. 시사만화가는 보통 마감시간 직전까지 머릿속에 온통 한 컷을 무얼로 채울까로 채워진다. ‘눈을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라는 것이 권 화백이 생각하는 시사만화가들의 숙명같은 생활이다. 아침 일간지를 정독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상적인 대화나 인기 있는 영화, 인문과학 서적, 만화책 등 모든 것이 한 컷 만평의 소재다.

요즘 권 화백은 스마트폰을 통해 트윗글을 눈여겨 본다고 했다. 140자로 제한된 글에서 많은 시민들이 촌철살인의 문장을 내놓는다. 트윗글은 시사만화가들에게 매력적인 소재지만 유혹에 빠지게 되면 자신만의 시사만화를 그릴 수 없다는 고민도 크다. 권 화백은 “트윗은 기존 언론들이 키우지 않는 이슈가 잘 올라온다”면서도 “대안적 사고에 도움을 많이 주긴 하지만 사안에 대한 반응 정도로 보고 있다. 거의 만평 수준이여서 주제가 겹치게 될 경우 더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권 화백은 이날 만평 소재에 대해서 “각 당이 공천에 매달리면서 대형 이슈의 잠복기가 왔다. 힘든 한주가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까지 잡혀있어 여유가 없다. 오후 1시 30분. 아직까지 머릿속에 만평의 윤곽을 잡지 못했다. 인터뷰 답변을 짜면서 머릿속으로는 ‘뭘로 한컷을 채우지’라는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권 화백은 오후 2시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과 함께 출연했다. 한겨레 장봉군 화백과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넷이 모여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만평을 묶은 책을 소개하는 인터뷰다. 진행자 김미화씨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하차하면서 이들 만평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어 인연도 깊다.

 

 

 

 

김씨는 “시사만화가는 재미있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생겼다”고 소개하자 권 화백은 “개그하는 분들을 존중한다. 개그도 만평과 마찬가지로 대상을 관찰하는 정도를 뛰어넘어 대상과 공감해야 하지 않느냐”고 응수한다.

권 화백은 이어 특별히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귀엽게 그리고 있다면서 “비판의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그분이 잘해야 국민이 잘 사는 것 아니냐”며 재치발랄한 발언을 이어간다.

하지만 책 내용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이내 심각한 분위기로 돌변한다. 유효기간이 짧은 시사만화는 태생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왜 책 제목을 ‘기억하라’고 정했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다. 권 화백은 이명박 정부 4년과 이전 정부와 다른 점에 대해 “과거로 회귀가 됐고, 폭력이 난무하고 염치가 실종됐다”고 혹독히 비난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 3시. 권 화백은 18층 노컷뉴스 편집국 사무실에 들어서 본격적인 한컷 만평 그리기에 골몰한다. 

종합편성채널 한반도에 공기업 협찬 강요가 있었다는 뉴스가 이슈로 떠올라 있고, 배구에 이어 야구까지 승부조작 연루설에 휩싸여 있다. 한 장의 메모지에 이슈들을 나열해보고 다른 소재가 없는지 찾아본다. 그리고 두 건의 뉴스가 권 화백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대학들이 등록금 인하를 발표하면서 장학금, 수업일수, 강의 시간 등을 축소하는 행태를 보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3년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뉴스도 쉽사리 무시할 수 없다.

사무실 한켠에 앉은 권 화백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난다. 오후 5시 권 화백은 최종적으로 아이템 선정에 들어간다. 한 컷 그림에 한줄 정도의 문구를 정리하기에 앞선 권 화백는 산책을 나간다. CBS 사옥 주변을 약 30분 정도 돌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다.

권 화백은 이날 만평 그림과 주제에 대해 넌지시 “법의 의해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는데, 법의 심판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을 한 컷 만화로 그리려고 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생각이 정리되면 그때부터는 막힘이 없다. 만평의 주제는 김진숙 지도위원 3년 집행유예 선고뉴스로 정했다.

법관이 김진숙 앞에 무릎 꿇은 이유

사무실로 돌아온 권 화백은 인터넷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사진을 띄어놓고 A4 위에 본격적으로 스케치를 하기 시작한다. 연필 스케치 소리와 기자들의 타자소리만이 사무실 안을 채운다. 스케치가 마음 들지 않았던지 결국 4장 째에 기본 스케치가 완성된다.

1차 스케치로 30분 만에 판사가 무릎을 꿇고 김 지도위원의 손을 잡은 그림이 완성된다. 완성본은 곧바로 스캔을 떠서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일러스트용 태블릿PC 기기를 이용해 스케치 바탕 위에 세밀한 묘사를 하기 시작한다.

 

 

 

 

한 눈에 김진숙 지도위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짧은 머리에 뿔테안경을 쓴 특징을 부각시킨다. 권 화백은 김 지도위원의 모습이 어떠냐고 묻고 약간 젊어 보인다는 지적에 따라 머리카락 위에 회색빛의 색을 덧칠한다.

컴퓨터 화면은 금세 김 지도위원과 법관이 손을 맞잡고 있는 입체적인 법정 풍경으로 바뀐다.

권 화백은 무릎을 꿇은 법관의 구두 뒷축과 법정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청중의 모습까지도 허투로 그리지 않는다.

권 화백은 신경을 곤두세워 약 1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음영 효과를 준 뒤 문구를 집어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숨을 고른다. 권 화백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한 컷 그림 좌측 상단에 “이런 풍경… 그렇게 어렵나?!…”라고 써놓고, 무릎을 꿇은 법관이 김 지도위원에게 “법이 지켜주지 못한 분들을 지켜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문구를 집어넣는다.

권 화백은 “시정 지시와 법원의 권고까지 무시한 한진중공업에 맞서 생명을 걸고 탑 위에 올라간 사람인데 법원은 당시에 뭐했냐고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당연한 내용이지만 사법부는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기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권 화백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뉴스를 아이템으로 선정했지만 등록금 문제도 한 컷 만평의 주제 후보작으로 올려놓았다. 권 화백이 구상한 등록금 만평 그림은 “등록금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대학관계자가 학사모를 푹 눌러써 눈만 빼곰히 드러낸 복면을 하고 있는 강도의 모습이다. 뒤에서 등록금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아온 대학들이 이제는 대놓고 강도짓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구조조정 1순위,  지원제도 절실

한 컷 만화 속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지만 시사만화가들은 ‘고작 한 컷 만화’를 그린다는 편견 속에서 살고 있다. 전국시사만화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권 화백의 고민도 시사만화가의 처우 문제에 쏠려있다.

권 화백도 프리랜서 생활을 수년 거쳤듯이 시사 만화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좁다. 권 화백의 경우 회사에 적을 두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지방·인터넷 신문사의 경우 시사만화가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일하거나 컷당 수당을 받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있다. 신문사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1순위 대상으로 내몰리는 이도 시사만화가다.

 

권 화백은 “지면의 효율성, 공간의 효율성이란 잣대로 보면 시사만화가가 설 땅은 없다”면서 “신문업계가 정신을 차리고 시사만화가를 소중한 자산으로 키워야 한다”고 비판했다. 권 화백은 “기자의 경우 협회 소속으로 각종 지원 제도가 있지만 시사만화가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다”며 “시사만화가는 단지 언론사에 적을 두지 않고 있을 뿐 기자와 같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화백은 지방·인터넷 신문사 등 어려운 여건에 있는 군소 신문사를 대상으로 시사만화가를 뒀을 때 정부에서 일부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안도 계획하고 있다. 권 화백은 시사만화가에 대한 지원 제도와 함께 시사만화가 스스로도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자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화백은 매일 전통적인 만평을 그리면서도 매주 이틀씩 영상 만평을 그려 인터넷 웹에 올리고 있다.

만평 그림 위에 움직이는 동작을 덧씌우고 사운드를 입힌 ‘수타 만평’이 그것이다. CBS는 지난해 9월부터 기자, PD, 작가, 영상편집팀, 시사만화가를 한 팀으로 한 스마트뉴스팀을 꾸려 ‘노컷 V’라는 웹 페이지에 각종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수타 만평도 스마트뉴스팀 콘텐츠 중 하나다. 권 화백은 “사람들이 플랫폼의 변화가 다양해졌다고 떠들고만 있지 수많은 플랫폼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적은 것 같다”면서 “창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뉴미디어 시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사 만화의 미래도 결코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권 화백은 시사만화가의 길을 걷고 싶은 후배들에게 “시사만화가는 매일 등판하는 투수와 같다. 매일 던지고, 죽지만 다음날 다시 살아나서 다시 던진다. 체력은 기본이고 자기 검열까지 신경써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종합편성채널에 하루 몇 억씩 쏟아 부을 거라면 한 신문사당 시사만화가 3명을 돌려서 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낫다”고 일갈했다.

 

■ 권범철 화백은…

권범철 화백은 창원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0년 부산국제신문에서 시사만화가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경남도민일보, 일요신문, 오마이뉴스 등에 만평을 게재했고, 2010년부터 CBS 노컷뉴스에 적을 두고 만평을 그리고 있다. 최근 한겨레 장봉군, 경향신문 김용민,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과 함께 책을 냈다. ‘시사만화로 엮은 MB 4년의 현대사’라는 부제목에 ‘기억하라’는 제목의 책이다. 4명의 화백의 만평과 함께 자유기고가 유한이씨의 글이 실렸다. 권 화백은 작가의 말에서 “두려운 것이 없다. 뒤가 든든하다. 독자들이 있어 그렇고, 이번 작업을 함께한 선배 작가들이 있어 그렇다”면서 “지겹게 싸웠고, 아까운 것도 없다. 기껏해야 잃을 것은 직장 따위가 아닌가! 그건, 지난 4년간 목격한 ‘죽음’에 비하면 새털같이 가벼운 것들이다”라고 썼다. 지난 4년 동안 그린 만평 중 권 화백의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순항길에 올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의전 행렬이 없는 그림과 함께  ‘광장을 싫어한다고 해서’ 라는 문구를 단 작품이다. 권 화백의 개인적인 비밀 한 가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색약이다. 특정한 색을 보지 못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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