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 갑질, 책임은 ‘을’이 져라?
드라마 제작 갑질, 책임은 ‘을’이 져라?
추석 연휴 직전 드라마 제작현장 특별근로감독 관련 ‘비공개’ 간담회,
시민사회단체 “스태프 고용 책임, 사실상 노동자인 감독들에게 전가”

올해 초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어난 스태프 사망사고 이후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고용노동부가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사 책임을 조명·녹음 등 장비팀 감독급에게 전가하는 방향의 결론을 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때문에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가 위법적 계약 관행 개선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청년유니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 언론·시민단체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당국에 드라마 스태프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사용자’로 특정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부는 지난 2월 언론·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드라마제작환경개선TF’ 요청에 따라 드라마제작현장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근로감독 결과 발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노동부는 지난달 감독 결과를 확정했다. 그러나 공개적인 발표 없이 근로감독 신청 단체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결과를 설명한다는 방침이다.

▲ 전국언론노조, 청년유니온, 공익인권법재단공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2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가 턴키계약 관행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 전국언론노조, 청년유니온, 공익인권법재단공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2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가 턴키계약 관행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노지민 기자 

이들 단체는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근로감독) 주요 내용은 드라마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 중 ‘조수급’은 노동자로 인정하고 턴키 계약을 맺은 조명, 동시녹음, 그립 등 감독급 스태프들에게는 사용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며 “노동부는 이미 그 결과를 개별 통보하고 제작사는 기존 턴키 계약서를 변형한 하도급 계약서를 스태프 감독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방송사나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을 위한 조명·녹음 등 장비팀과 관련해 감독급 스태프와 통째로 도급 계약을 맺는다. 감독급에 용역비를 지급하고 나머지 스태프들의 급여 지급 등을 관리하도록 하는 ‘턴키(turn-key·일괄수주계약)’ 계약이다. 스태프들은 이를 두고 방송·제작사가 비용 절감과 편의를 위해 위법적으로 유지해 온 ‘위장 도급’이라고 비판해왔다.

턴키계약에 대한 방송계 안팎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최근 CJENM 스튜디오드래곤의 경우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스태프들과 개별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감독급 스태프들을 사용자로 인정한 노동부 결론은 오히려 드라마 제작 관행 개선을 ‘퇴보’시키는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조명감독은 “지난 20년 동안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주당 120시간, 한 달 500시간 넘게 일했다. 조명감독이 되니 노동부가 나를 ‘갑질하는 사람’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조동혁 방송스태프지부 조명분과장은 “촬영시간을 제작자 편의에 따라 12시간 이상 몰아치면서 촬영일수가 줄고 임금도 줄었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기다려왔지만 우리는 아직도 노동자가 아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프리랜서, 도급계약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인정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신선아 변호사는 “감독들을 사용자로 보려면 이들 업무가 별도위탁도급사업이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급 감독은 별도 독립사업자로 볼 수 없다”며 “방송제작 특성 때문에 사실상 중간관리자 도급 감독도 업무 일정에 따라 담당 업무를 수행한다. 스태프 지휘 감독도 제작사나 방송사 담당 PD 지시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방송제작현장의 많은 편법들 중 하나가 노동자들을 사업자로 등록하게 해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다, 사업자다’라고 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과연 이것을 몰랐는지 의문”이라며 노동부를 비판했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고용노동부가 턴키계약 감독들을 사용자로 둔갑시킨 판단을 즉각 철회하고 현장 실태를 반영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하며 △정부는 방송사·제작사가 턴키계약을 근절하고 개별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상파 산별교섭 노측 총괄 간사인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산별교섭 과정에서 방송사들도 (스태프 계약) 문제에 충분히 공감했다. 위법 관행을 이어가는 제작사를 계약에서 배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겠다”며 “턴키 계약을 강요하는 제작사가 있으면 즉시 알려서 제작 현장 내의 다단계·하도급·위장 도급을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인 근로감독 결과는 이날 오후 국무총리비서실과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들과 노측 단체 등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전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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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8-09-20 16:07:50
지금까지 노동부는 노동자편이 단 한번도 아니었음. 노동부 공무원들의 적폐가 청산되야, 진정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부로 거듭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