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하는 방심위 4기, ‘정권 지킴이’ 오명 벗어야
새롭게 출범하는 방심위 4기, ‘정권 지킴이’ 오명 벗어야
[시시비비] ‘양적 공정성’에서 ’과정의 공정성’으로 전환할 때

6개월째 공백상태였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구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에 제3기 방심위의 임기가 종료되었지만, 새롭게 구성해야 할 9명의 방심위원 중 야당 몫 3자리를 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다툼을 벌이면서 방심위가 출범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됐다. 최근 바른정당이 분당 사태로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게 되자 야당 몫 3자리에 자유한국당이 2명, 국민의당이 1명을 추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방심위는 방송프로그램과 인터넷 콘텐츠에 관한 광범위한 규제 권한을 가진 곳이다. 방송프로그램이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위반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방송사에 벌점이나 과태료 처분 결정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차단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재승인 허가에 민감한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웬만해서는 방심위의 제재를 피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방심위가 문제가 된 보도나 프로그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제재결정을 내리는지는,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최근 발견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문건 “방심위를 적극 활용하라”

그간 방심위는, 심의권한을 무기로 언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옥죄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고, 웃자고 만든 코미디 프로그램에 정색하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모습에, 도대체 방심위라는 기관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많았다. 최근 발견된 청와대의 문건에서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방심위를 적극 활용하라’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가 확인되었다. JTBC 보도에 대한 집중적인 제재 등 방심위의 그간 활동이 정권 보위를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 금준경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 금준경 기자.
방심위의 제재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하게 현업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을 길들인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소재를 다루려고 할 때 데스크는 왕왕 “이렇게 방송을 내보내면 방심위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수위 조절에 나선다. 기자나 PD의 입장에서는 데스크와 싸우기보다는, 방송을 맨숭맨숭하게 만들거나 아예 민감한 쟁점을 다루지 않는 편을 택하게 되기 쉽다. 정권 비판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 않는 건, 방송사가 직접 소속 PD나 기자들에게 ‘정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지시해서가 아니다. 직접적인 보도 통제를 하지 않더라도, 정권은 이처럼 세련되게 방송을 장악하게 된다.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개념, 다시 정립해야

방심위가 유용하게 활용해 온 무기 중 하나는 방송심의규정 제9조 제2항(방송의 공정성)이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야 한다”라는 이 규정을 근거로, 방심위는 대립되는 양쪽 입장을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지 않으면 그 자체로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해왔다. 예컨대, 어떤 역사적 인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에도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함께 넣어야 공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하여 방심위는 “두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다수 있는데 이를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중징계 결정을 했다. 이같은 양적 공정성 개념을 고집하는 한, 방송과 보도가 무색무취하게 제작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보도나 프로그램이 어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한지 살펴보는 일이다. 향후 이 부분 해당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아쉬운 것은 이번 방심위원으로 내정되었거나 추천될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 역시 50대 이상 남성 일색이라는 사실이다. 9명 위원 전원이 남성이었던 3기 방심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방송과 인터넷에 대한 감수성을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인다. 어쨌든 여러 산적한 과제 중 방심위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는 ‘정권 보위기관’이라는 오명을 씻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심의제도가 언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 가운데,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심의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긴절하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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