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든 살인자”, 그의 장례가 치러지지 못 하는 이유
“펜을 든 살인자”, 그의 장례가 치러지지 못 하는 이유
[미디어 현장] 김규현 뉴스민 기자

10월31일 새벽 2시2분, 한국패션산업연구원 17년차 책임행정원이 한 언론사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섬뜩한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낸지 10시간가량 지난 12시9분께 그는 한국패션센터 지하 주차장 자신의 차 안에서 번개탄, 페인트통, 소주병 등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일하던 고 손 모 씨(57)는 연구원이 대구시로부터 위탁 받은 한국패션센터의 대관 업무 담당자였다. 그가 문자를 보낸 기자는 10월16일, 30일 두 차례 한국패션센터 대관 업무에 대한 문제점을 보도했다. ‘(손 씨의)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 씨가) 특정업체 편의를 봐 주는 등 횡포를 부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등 제보를 풀어내는 기사였다.

손 씨의 사고 소식과 문자가 공개된 뒤, 언론 갑질 의혹이 당연히 불거졌다. 사고 전 문자에 특정 기자를 지목했으니 더 의심해볼만 했다. 손 씨가 직접 남긴 A4용지 3장 분량 문서에는 기자가 대관을 부탁했고, 이를 거절하자 기자가 협박을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연구원도 손 씨가 기자와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손 씨가 속한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연구원지부와 유가족, 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는 손 씨가 부당한 청탁에 항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기자는 제보와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반박했다. 노조가 주장하는 협박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로의 주장은 지금도 엇갈린다. 대책위는 손 씨와 기자의 통화 녹음, 손 씨가 기자를 협박·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고 준비해둔 고소장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주장을 더했다. 대책위가 공개한 통화 녹음에서 기자는 손 씨에게 대관이 안 되는 이유를 계속해서 추궁한다. 협박이라 단정할만한 욕설은 없었다. 대화 분위기만 짐작할 뿐이었다. 기자는 “내가 (대관) 되는지 안 되는지만 물었지, 내가 행사 대관해달라고 했어요?”라는 말도 한다. 대책위가 해당 기자를 강요 미수,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해당 기자는 더 이상의 해명을 피했다.

한국패션연구원은 해당 기자의 보도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언론사에 보내며 언론중재위 제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 씨도 스스로 기자를 고소할 준비를 했다. 손 씨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멈췄다. 대책위는 기자의 자료 요청에 대구시, 연구원 등이 손 씨를 압박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구시, 연구원 모두 이를 부정했지만, 손 씨는 담당 법무사와 통화하면서 “위에서 자꾸 만류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또 다른 의혹이다.

▲ 김규현 뉴스민 기자
▲ 김규현 뉴스민 기자
손 씨가 숨진지 9일 만에 기자의 부당한 청탁 여부는 의혹만 남긴채 검찰 수사에 맡겨졌다. 대구시는 엄중 수사를 요청했다. 해당 언론사는 사고 기사를 통해 도의적 책임을 밝혔다.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 아무 얘기도 안 했으면 방관한 거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손 씨의 외동 아들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의 아들은 14일 오후 무엇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끌었는지 묻기 위해 대구시청 앞에 선다. 여전히 손 씨의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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