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외면한 현실, 드라마에서 찾는 시대
언론이 외면한 현실, 드라마에서 찾는 시대
미생과 정도전, 개과천선, 올해 다시봐야 할 드라마 3선… '기레기'들에게 추천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자들이 비난받았던 한 해였다. 기자들은 ‘기레기’로 불렸다. 한 기사를 여러개로 양산하고 네티즌 반응을 인기검색어에 짜맞추는 어뷰징은 예사다. 언론은 세월호참사를 비롯한 각종 현안에서 오보와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쌍용자동차와 씨앤앰, 밀양 등 각지에서 현재진행형인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저널리즘 외의 영역에서 언론의 역할이 행해졌고, 주목받았다. 영화 <카트>와 웹툰 <송곳>은 브라운관이 담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 집중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SBS <웃찾사>의 는 정치권력을 도마에 올려놓고 비판해 화제가 됐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도 저널리즘”이라는 <추노>의 곽정환PD의 말처럼 올 한해 사회의 부조리를 담고, 의제를 설정한 작품이 많았다. 그 중 세 편을 꼽았다. tvN 드라마 <미생>은 직장 내 비정규직 문제와 여성차별 문제를 담았다. KBS의 <정도전>은 정치권력을 겨눴다. 양극화가 심화된 고려 말을 현실에 은유해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MBC <개과천선>은 경제권력의 횡포로 약자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그려냈다.

‘미생’, 현실을 담아 위로를 건네다

지난 주 종영된 tvN의 드라마 <미생>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약직 장그래(임시완 분)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계약직이 겪는 차별들이 드러났다. 명절선물로 정규직 사원에게는 햄 선물세트를 주지만 계약직 사원에게는 참기름을 주는 회사. 계약직 사원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없는 현실. 그리고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고문까지.

2014년 대한민국의 취업난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비정규직은 600만명을 넘어섰다.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을’들을 괴롭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TV속 장그래(임시완 분)도 같은 일을 겪는다. 때론 절망하고, 때론 희망을 품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 모습을 보며 현실의 제2, 제3의 장그래도 공감했다. 계약직이 아니더라도 취업난에 스트레스 받는 청춘들, 학벌과 스펙으로 차별받는 이들 모두가 장그래에 몰입했다.

‘미생’은 남성주의 문화가 팽배한 직장에서 펼쳐지는 여성차별 문제도 비교적 상세히 다뤘다. 직장동료의 임신소식에 업무가 늘게 됐다며 불만을 표출하는 동료들의 모습.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유리천장을 뚫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선차장(신은경 분)에게 사직을 권유하는 남편.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상적인 차별과 추행.

이처럼 ‘미생’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현실성있게 그려냈다. 다만 아쉬운 대목도 있다. 공감을 통해 위로를 주지만 작품 속 ‘미생’들은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부조리를 개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tvN 드라마 <미생> 포스터.
 

‘정도전’, 고려에서 날아온 돌직구

‘미생’과 ‘정도전’은 다르다. 현대극과 사극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도전’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개선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이다. 고려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빌려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은유한다. 이를 통해 정치의 역할을 논한다.

작품 속 고려는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다. 소수의 기득권층이 토지를 비롯한 부를 독점해 거리에 내몰린 백성들. 심지어 외적의 침입에 목숨을 잃고 포로가 되는 백성들. 백성들의 삶이 이렇게 심각한데 국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정도전은 이런 고려를 전복시키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 그가 밝힌 이상국가의 모습은 이렇다. “한줌의 귀족이 아니라 백성이 근본이 되는 나라. 가문과 혈통이 아니라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사대부가 되어 벼슬을 할 수 있는 나라. 백성이라면 누구나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나라.” 이상국가의 핵심은 권력의 역할이다. 마지막 회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안재모 분)에게 왕의 역할에 대해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 임금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권력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도전은 끊임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민주사회의 기본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기에 정도전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 KBS 사극 <정도전> 포스터.
 

‘개과천선’, 경제권력의 횡포를 상기시키다

MBC ‘개과천선’은 진실보다 이익을 좇은 대형포럼의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김명민)가 기억을 잃은 후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다.

‘정도전’이 정치권력을 주로 비판한다면 ‘개과천선’은 경제권력을 도마에 올렸다. 그것도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편의점 불공정 계약 문제, 키코 사태, 동양그룹 회사채 사태, 서해기름유출사건 등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약자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법은 약자를 어떻게 외면하는지를 드러낸다.

‘개과천선’에서는 삼성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도 있다. 서해기름유출사건의 장본인인 주원그룹이 어민들에게 최소한의 보상판결을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국회가 피해 어민배상 특별법을 추진 중이니 주원그룹이 현실적 보상을 해야 한다는 김석주의 주장에 주원그룹 임원은 이렇게 답한다. “국회의원은 4년짜리 임시직입니다. 대통령은 5년짜리고요. 주원그룹은 경영권 승계에 성공했죠. 누구의 힘이 가장 오래가는지 잘 아시는 분이 임시직 말에 신경을 쓰는 겁니까?”

   
▲ MBC 드라마 <개과천선>
 

‘개과천선’은 경제권력의 농간에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모습도 담았다. 백두그룹의 해고노종자가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어느 날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2012년 3월 30일부로 정리해고를 통보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직원 1000여 명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투기자본의 농간이었습니다.” ‘투기자본의 농간’과 ‘정리해고’. 론스타 사태와 쌍용차 사태 때 벌어진 일들을 연상시킨다.

이 드라마는 언론마저 망각하는 과거사건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잊지 않아야 개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듯 말이다. 

   
▲ 드라마 <개과천선>의 한 장면.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