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1500만 가구의 시청이 중단됐다. MSO(복수유선방송사업자)는 16일 오후 3시부터 KBS2 광고 등을 중단했고, 지상파 방송사측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MBC, SBS의 재송신도 중단할 방침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30분께부터 지상파측과 케이블측을 소집해 막판 협상 중재에 나섰고, 오후 5시 30분 긴급 전체회의를 열었다.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더라도 이번 사태는 중대한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방송사업자 간에 재송신 대가라는 수익 문제로 분쟁이 발생돼, 시청권이 훼손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양측의 수년 간 재송신 분쟁 과정에서 SD(표준 화질)가 중단된 경우는 있었지만, ‘검은 화면(black out)’이 나오는 사태는 이례적인 일이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파국’을 미리 막을 수 없었는지 고민해볼 대목이다. 우선, 케이블과 지상파의 방송 사업자 간의 입장 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측이 협상을 하고 있는 지상파 재송신 대가는, 케이블(정확히 말하면 유선방송사업자인 SO)이 지상파측에 이들 프로그램을 재전송하는 비용으로 제공하는 1개월 월당 가입자 당 요금 (CPS, Cost Per Subscriber)이다.

현재 지상파는 280원(지상파 3사 총840원), 케이블측은 100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전체 케이블 가입자를 1500만 명으로 계산하면 지상파측은 1512억 원을 케이블측은 540억 원을 주장해 양측이 972억 원의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상파는 케이블이 무료로 지상파 콘텐츠를 재송신해 광고·홈쇼핑 수수료까지 챙겼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케이블은 지상파를 통해 직접 전파를 수신하는 가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케이블이 수신 보조를 수년 간 해왔고 그 결과 지상파의 전파 커버리지가 넓어져 광고 혜택까지 줬다는 입장이다. 결국 양쪽의 대가 산정 액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협상 과정에서 280원이 쟁점이 된 것은 수년 간의 협상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방송사업자 간 ‘힘 겨루기’의 역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공방전이 치열했다.

재송신 분쟁은 지난 2007년 MBC와 CJ헬로비전 등 케이블 3사가 콘텐츠료를 두고 협상을 개시하면서 시작됐다. 2008년 양측의 지리한 협상이 결렬되면서 2009년부터 지상파 3사는 CJ헬로비전을 상대로 재송신 금지 가처분 소송을 했다. 첫 소송의 시작이었다.

지난 1995년 케이블 출범 이후 14년 만에 뒤늦게 소송을 건 이유에 대해, 손계성 한국방송협회 정책실장은 작년 11월 3일 ‘제3회 국제 방송통신 분쟁조정 포럼’에서 “(케이블 출범)당시 지상파가 먹고 살만했다”면서 “신생 매체 케이블에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해 신생매체 저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부정적 여론을 받고 싶지 않았고, 유료 매체 발전이라는 정부의 신매체 정책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유료 방송 시장이 커지고, 뉴미디어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뒤늦게 지상파가 콘텐츠 관리나 유료방송사업자들에 대한 견제에 나선 셈이다.

이후 △지상파 3사의 CJ헬로비전에 재송신 금지 가처분 소송(2009년 1심 기각), 지상파 3사의 티브로드 등 민사본안 소송(2009년 11월) △지상파 3사의 CJ헬로비전 가처분 소송 항고(2010년 1월), 민사본안소송에서 지상파의 저작권 인정-간접강제는 불인정(지상파, 케이블 각각 항소) 등이 이어졌다.

지리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다 지난 해 중요한 ‘변곡점’이 생겼다. MBC와 SBS가 KT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CPS로 280원 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KT스카이라이프는 수도권 HD 방송을 중단하는 등 현재 케이블처럼 수 개월간 방송 중단을 강행했지만 논란이 크지 않았다. 당시 KT스카이라이프는 총 가입자는 300만 명 수준으로 총케이블 가입자의 5분의 1 수준이었고 HD를 중단한 수도권 지역의 가입자는 100만 명도 채 안 됐다. 또 KT스카이라이프의 OTS(올레 TV 스카이라이프) 가입자는 이전처럼 HD방송을 볼 수 있었다. 1500만 명 가입자를 가진 케이블이 중단되는 사태와는 파급력이 다른 셈이다.  

결국 ‘약체’ KT스카이라이프와의 협상에서 280원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지상파는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케이블과의 ‘일전’에 나섰다. 지상파는 작년 7월에 CJ헬로비전에 간접강제를 신청했고, 10월 법원은 이를 처음으로 수용했다. 이 결과 지상파 3사의 디지털 방송을 계속 재송신 해오던 CJ헬로비전은 디지털 방송의 재송신을 곧바로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1억5000만 원씩 지상파3사에 지불해야 했다. 이 간접강제금이 현재까지 100억 원에 달한다. 결국 케이블측이 16일 지상파 재송신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하루 하루 불어가는 간접강제금 때문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수년 간 양측의 협상 과정은 방송사업자 입장에서는 첨예한 다툼일 수밖에 없다. 협상 결과에 따라 1년에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업계에서 양 사업자 간 극적 타결은 힘들고, 애초부터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에 관심이 쏠렸다.

중재의 핵심은 제도 개선안이었다. 제도개선안의 골자는 지상파를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고 하지만 KBS, EBS만 의무재송신이 되는 상황에서 MBC, SBS까지 이 무료 서비스에 포함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16일 오후 방통위에 제출한 케이블 업계 의견에서 “지상파 재전송에 대한 법 제도 마련 없이 사업자간 합의에만 맡길 경우 추후 무료-보편적 방송서비스 개념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는 작년 말까지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더욱이 ‘치킨 게임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처럼 방통위는 ‘브레이크’ 역할은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일을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5일 방통위가 지상파 채널을 변경할 때 지상파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한 절차를 폐지해 SO 임의대로 채널 변경을 하게 해 준 것이다. 당시 방통위는 “행정 합리화”라고 포장을 했지만, 지난 12월 종합편성채널의 채널 편성 과정에서 SO와 지상파 간의 ‘힘겨루기’는 더욱 불거지는 양상이다.

씨앤앰 계열 SO인 용산케이블TV는 지난달 KTV와 국회방송, 채널CGV, 스크린을 뒷번호로 밀어내고 채널 7번부터 10번까지를 4개 종편에 배정했다. 또 SO들은 지난달 16일 지상파 재송신 협상에서 ‘강성’ 입장을 보인 SBS 채널 번호를 시청 접근성이 낮은 뒷번호로 변경하는 시설변경 허가 신청서를 방통위에 제출하는 등 채널 변경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종편으로 인해 밀려난 지상파 계열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들이 이에 반발해 SO 아름방송을 검찰에 고소하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지난 3일 최시중 위원장의 측근인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의 비리 의혹이 불거진 뒤 지난 5일로 예정된 전체회의를 연기했다.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주까지 언론에 공개된 외부 일정이 없었다. 심지어 최 위원장은 케이블측이 재송신 중단을 예고한 16일 강원도 양구의 군부대를 위문 방문했다. 지난 2주 간 최 위원장이 나서서 업계의 첨예한 재송신 분쟁을 타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얘기는 업계에서 들을 수 없었다. 시청권 문제에 대한 방통위의 해결 의지가 과연 있었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결국 방통위는 작년 정부업무평가 결과에서 재송신 분쟁 등의 이유로 ‘꼴찌’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KBS2의 재송신이 중단된 것은 현 정부 초기부터 불거진 분쟁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온 방통위의 '사필귀정'이자, 'MB 멘토'로 알려진 최 위원장의 정치적 행보가 맞물린 예고된 '악재'인 셈이다. 그러나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대법원 무죄 판결, 정용욱씨를 둘러싼 잇단 의혹, 재송신 분쟁 등 방통위를 둘러싼 논란은 커지고 있지만 현재 방통위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누구도 볼 수 없다. 악재가 악재를 덮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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