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

지난해 12월 16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 들어섰다. 기자들은 그 의원들에게 시선이 쏠렸다. 한나라당이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여당 국회의원 22명이 ‘국민과의 약속’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12월 17일자 1면에 <“여야 합의 안하면 한미 FTA 상정 않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는 이 발언을 한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사진까지 곁들였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의원 22명이 성명을 발표할 때 여론은 극히 좋지 않았다.

대통령 ‘형님’ 예산은 대폭 증액됐는데 저소득층, 노인 등 사회적 약자 예산은 삭감됐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강행처리 이후 비판여론이 들끓자 22명의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직을 걸겠다’면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조선일보 2010년 12월 17일자 1면.
 
   
조선일보 2010년 12월 17일자 6면.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걸겠다고 밝힌 것은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얘기다. 이제 민심에 귀를 기울이겠으니 우리의 선택을 주목해 달라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성명에 참여한 22명 의원 중에는 남경필 국회 외통위원장은 물론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2011년 11월 그들의 다짐은 '거짓'으로 결론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 강행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야당이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밝혔지만, 여당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강행처리하겠다는 얘기다. 국회는 다시 ‘격투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조짐도 있다.

국회 주변을 경찰이 삼엄하게 에워 쌓다. 언제라도 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한 셈이다. 11월 2일 오후 주요 언론이 ‘속보’ 기사를 전했다. 연합뉴스는 <외통위 한미FTA 비준안 상정>이라는 제목이 담긴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께 야당이 점거하고 있는 전체회의장이 아니라 소회의장에서 외교통상부에 대한 예산안 심사를 마친 직후 비준안을 직권상정했다. 남 위원장은 야당의 반발 속에 구두로 "한미FTA 비준안을 상정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 후 곧바로 ‘토론과 의결은 분리하겠다’고 밝힌 후 토론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기사에는 국회 경위들과 야당 보좌진들이 국회 외통위 회의실을 놓고 몸싸움을 벌이는 현장 사진이 담겨 있다.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을 하지 않겠다던 다짐을 헌신짝처럼 버린 셈이다.

남경필 국회 외통위원장과 황우여 원내대표는 말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당시 주장은 그냥 ‘쇼’였나. 여론이 워낙 안 좋다보니 나라도 일단 살아 보자라는 ‘얄팍한 계산’ 때문인가. 물리력에 의한 강행처리, 그러한 의사진행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나 몰라라 하겠다는 것인가.

제일 나쁜 정치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국민 기억력을 ‘금붕어’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지난해 12월 그 많은 언론이 보도했던 내용을 국민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가. 청와대 거수기를 거부하겠다는 약속은 누가 했는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지 않았는가.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CBS노컷뉴스
 
청와대가 손짓하면 여당 의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거수기 역할’ 이제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 한나라당 의원, 특히 남경필 위원장과 황우여 원내대표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앞으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

지금 이 약속을 실천했다고 보는가. 실제로 총선에 불출마한다면 약속을 지키는 것일까. 분명히 해두자. 남경필 의원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수원 팔달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지 않더라도, 황우여 원내대표가 인천 연수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지 않더라도 ‘감동’할 국민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민심의 흐름으로 보면 수도권 지역구를 둔 남경필 황우여 의원 모두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나온다고 해도 당선이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한미 FTA 처리의 문제는 남경필 황우여 두 정치인의 총선 출마 여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다.

총선 불출마 약속을 지킨다고 정리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남경필 황우여 의원 등이 포함된 한나라당 의원들의 다짐을 국민이 주목한 이유는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그 약속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걸고 저렇게 약속하는데 그래도 지키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 국민의 믿음을 무참히 짓밟아도 되는가. 그렇게 비웃어도 되는가. 국민을 조롱하고 우롱하는 정치의 결말은 이미 예고돼 있다.

"닥치고 투표."

내년 4월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답이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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