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은 ‘선거여론’을 둘러싼 헤게모니 경쟁의 변화를 보여준 상징적인 선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더는 지상파 방송사와 거대 일간지가 선거여론을 주도하는 시대가 아니다. 주류 언론이 권력 편향적인 ‘편파보도’를 일삼을 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선거정보 유통의 새로운 창구로 급부상했다. / 편집자주

언론이 눈을 감고 편향된 정보만 제공하는 ‘깜깜이 선거’. 내년 중요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띤10·26 재보선에서 언론이 유권자의 정보 갈증을 채워줬는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특히 언론사 영향력 으뜸을 다투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모습은 논란의 초점이다. 여권에 불리한 소식 전달은 미온적이고 야권에 불리한 소식 전달은 적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은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이후 방송3사의 보도가 ‘하향평준화’ 됐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편파·부실보도를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가 26일 오전 서울 신당2동 제4투표소로 남편 김재호씨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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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보도만 봐서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주요 신문 역시 ‘편파의 늪’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스피커’를 자처하던 언론들은 선거 막판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쏟아졌을 때는 보도에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선거 여론조사를 통해 사실상 선거에 개입하는 ‘여론조사 정치’ 행태도 재연됐다. 문화일보는 지난 21일자 1면에 <(지지도) 나 47.7%-박 37.6%>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전했다. 공표 가능한 마지막 날인 10월 19일 조사한 해당 여론조사 결과는 비슷한 시기 조사됐던 다른 여론조사와 경향성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문화일보 여론조사는 나경원 후보가 오차범위를 벗어난 격차로 앞선 것으로 조사됐지만, 10월 21일 발표된 조선일보 여론조사(10월 19일 조사)는 박원순 43.5%, 나경원 41.4%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문화일보가 집 전화 조사인 반면 조선일보는 ‘집 전화+휴대전화’ 조사이기 때문이다. 집 전화 방식보다 휴대전화 조사를 병행한 방식이 더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언론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동아일보는 10월 22일자 5면 <못 믿을 여론조사…해법은 ‘휴대전화’>라는 기사에서 “여론조사가 정확성을 갖추려면 현재의 집 전화 중심의 조사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비슷한 시기 발표된 다른 여론조사와는 다른 ‘튀는 여론조사’는 보편적인 여론을 전달한 조사인지 의심하는 게 합당하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다양한 여론 조사 결과 중 문화일보 조사를 부각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주류 언론들이 선거보도와 여론조사 보도를 통해 선거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만만찮은 벽에 부딪혔다. 주류 언론의 보도에 맞서 시민들이 ‘SNS’를 통해 선거여론 형성에 나섰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일인 26일 오전 서울 방배동 제3투표소에서 박원순 야권단일후보가 부인 강난희씨와 함께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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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는 꼼수다> 방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류언론과의 본격적인 선거여론 헤게모니 경쟁이 가열됐다. 이명박 대통령 강남 내곡동 사저 논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청담동 ‘고급  피부클리닉’ 이용 논란 등 10·26 재보선을 달궜던 뜨거운 이슈들은 <나는 꼼수다>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 내용이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퍼지면서 쟁점으로 부각되는 유통과정을 보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선거보도에 갈증을 느꼈던 유권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유용한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출퇴근, 점심시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SNS 이용이 가능한 편리성이 강점이자 무기이다.

과거에는 주류 언론의 보도와 칼럼이 선거여론을 이끄는 변수였지만, SNS 등장으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김순덕 논설위원은 동아일보  10월 24일자 34면 <무너지는 그리스, 赤旗(적기)가 펄럭입니다>라는 칼럼에서 “무식한 대학생들은 지금의 ‘반값 등록금’이 미래 자신들의 연금인 줄 모르고 트윗질이나 하면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칼럼은 SNS를 통해 리트윗(RT) 되면서 비판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동아일보는 10·26 재보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겨냥해 ‘색깔론’을 자극하는 칼럼을 실었지만, 과거와 같은 영향력은 커녕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선거보도 홍수 속에서도 다양한 매체가 내놓은 ‘양질의 뉴스’는 SNS를 통해 더 폭넓게 유통되고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목할 대목은 SNS를 활용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덜했던 20~30대가 주축이라는 점이다. 정치 무관심층이었던 젊은 층의 정치 관심도가 커질 경우 선거 판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네거티브는 절대로 포지티브를 이길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SNS에서 대대적인 반격이 일어났고, 흑색비방과 막말정치는 무너져 내렸다”고 주장했다.

선거여론을 주도하는 핵심주체는 주류 언론에서 시민들의 SNS로 바뀌고 있다. 정권 눈치를 보는 방송사나 보수 성향 거대신문의 선거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비중이 점점 커질 경우 SNS 영향력도 비례해서 커질 수 있다.

정부는 SNS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자 ‘법적 제재’ 운운하면서 시민들을 겁주고 있지만, 판단의 근거도 명분도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이 선거를 앞두고 SNS 단속 계획을 밝히자 언론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문화일보는 10월 19일자 1면에 <‘SNS 불법선거운동’ 대대적 단속>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조선일보는 다음날 4면에 <선거 새 바람 SNS…그러나 허위·비방·조작 심각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는 SNS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불법인 것 같은 인식을 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터넷, SNS, 문자메시지를 통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등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SNS 선거운동은 유언비어 유포 등이 아니라면 엄연한 합법인데도 <‘SNS 불법선거운동’ 대대적 단속> 등의 언론보도가 이어질 경우 선거법에 익숙지 않은 유권자의 ‘자기검열’을 유도할 수 있다.

검찰이 단속 방침을 흘리고 언론이 이런 소식을 확대재생산 할 경우 일시적으로 SNS를 통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위축시킬 수는 있어도 이미 대세가 돼 버린 SNS 선거의 큰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언론노조는 25일 오전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방심위가 SNS,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뉴미디어정보심의팀’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한나라당에 불리한 여론이 많은 SNS와 ‘나꼼수’등의 팟캐스트를 검열하려는 의도라며 공안검사 출신 박만 위원장을 규탄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김정권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에서는 이번 선거에 SNS 선거전에 대해 온힘을 다하고 있다. 여기 계신 의원님들께서도 오늘 24시까지 본인의 트위터에 많은 사람들을 팔로워해 주시고 보좌진까지 총동원해 오늘 집중적으로 트위터를 통한 당 홍보에 집중해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여당도 SNS 선거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제재’ 운운하는 정부의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태도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이 진정 민심을 제대로 듣고자 한다면 SNS의 바다에 뛰어들 것을 권장한다. 막는다고 막아질 민심이 아니고 억누른다고 입 다물 민심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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