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XX년생’, 한국에만 있는 나이 계산이다. 1~2월생의 경우 햇수로는 한 살 어리지만 전년도 태생의 아이들과 함께 입학할 수 있었다. 덕분에 주민등록 상의 나이는 어리지만 ‘형’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되는 것이다. 교육제도의 문제라고는 하지만 이건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나이에 따른 서열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애매하지만 중요한’ 문제 인 것이다. 단지 이런 문제뿐 아니더라도 한국사회는 애매한 것 투성이다. 연인간의 ‘스킨쉽’에도 절차가 있으며, 사귀었던 연인에 대해 고백하는 것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문제인 것이다. 

KBS <개그콘서트>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하 ‘애정남’)은 이런 애매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정남’이 말해주는 그 문제라는 것들이 지극히 사소하지만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개념없는’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분명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쌩얼’의 기준 따위가 중요하진 않다. 하지만 ‘화장발’이네 뭐네라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남성, 여성들 사이에 일상적인 일인 것도 맞다.

   
개그콘서트 '애정남'의 한 장면.
 
사소하지만 '개념없음' 시비 걸릴 문제에 '명쾌한' 해답

‘애정남’이 언급하는 부분은 사실 굉장히 디테일한 사안들이다. 고민하자니 그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아무렇게나 결정하고 행동하자니 그에 따른 후폭풍과 금전적 손실이 걱정되는거다. 결국, 우리 모두는 ‘째째’한데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사실 상식선에서 판단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쿨’한 태도만 있으면 가능한 부분이다. ‘애정남’이 환호를 얻는 이유는 그 코너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그와 같은 사소한 고민들을 하고는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을 ‘애정남’이 대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애정남’은 일상의 애매한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코믹하지만 나름 근거있게, 또 명쾌하게 제시함으로써 동감을 얻는다. 그것은 그 ‘합의점’에 대한 결핍이 대중들도 모두 느끼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사소한’ 일이 아닌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심각한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받고 있지는 못하지 않는가.

공평함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애정남에 보내는 환호의 의미

보다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에 있어서는 법률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애정남’에서 느끼는 것처럼 법률적 충돌에 있어서 시민들이 느끼는 ‘명쾌함’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애정남’이 동의를 얻는 이유는 ‘며느리들이 명절에 친정 가는 문제’에 있어서 “그래야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시어머니들도 자신의 딸을 빨리 볼 수 있기 때문”이라거나 ‘옛 연인을 공개하는 문제’에 있어 “상대방이 한명을 얘기하면 나도 한명을 얘기해줘야 한다”는, 모든 당사자에게 공평하게 룰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바로 합의와 양보를 통한 공평한 해결책 제안이 그것이다.

‘애정남’에 대한 환호는 비단 연인간의 문제에서 ‘애매모호한’ 문제를 처리해주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열, 성차를 초월한 공평한 기준의 부재는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문제이다. ‘애정남’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내용 속에는 공평한 기준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애정남’은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 상황이 보다 다변화되고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갈등 상황 해결에 대한 모두가 합의할 만한 명확한 기준을 당당하게 누군가가 말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이 ‘애정남’에 보내는 환호는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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