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완패' 한 조중동, 내년 '복지 대회전' 칼날 벼른다
'완패' 한 조중동, 내년 '복지 대회전' 칼날 벼른다
총선·대선 겨냥 '선택적 복지' 설득 노림수…조선일보, 자본주의 4.0 담론 주도 박차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해 무산된 다음날(25일), 대부분의 신문이 ‘오세훈 혹은 여권의 완패’에 주목할 때 조선일보는 1면에 <무상시리즈, 빗장 풀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민주당 등 야권이 주도해 온 ‘무상 복지 정책’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빗장이 풀렸고,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벌인 ‘보편적 복지 vs 선택적 복지’ 대결에서 1차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였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 거부로 무상급식 논쟁에 마침표를 찍으려 했지만, 보수 언론은 ‘보편적 복지=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담론을 접지 않고 있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를 둘러싼 진검승부는 내년 총선에서 벌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상복지로 인한 세금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말을 비중있게 전하는 언론 보도에서 10·26 재·보궐 선거까지는 몰라도 내년 4월 치러질 총선까지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돌려놓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복지 논쟁’이 끝난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보수언론이 가장 먼저 빼든 카드는 ‘투표율 분석’이다. “애초부터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에 힘든 선거였다”는 평가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전체 유권자의 17.3% 지지를 얻은 것에 비하면 25.7%의 투표율은 놀라운 수치라는 논리를 동원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던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급식실에서 점심를 먹고 있다.
 
중앙일보는 “(민주당이)‘나쁘다’ ‘착하다’는 감성적이면서 이분법적인 접근을 통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신들의 논리를 전파”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단계적 무상급식’이라는 구호보다는 민주당의 ‘나쁜 투표, 착한 거부’란 슬로건이 이번 주민투표에서 더 먹혀들었다”는 이색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조선일보는 ‘발빠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해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무효가 됐음에도 서울시민의 무상급식 적용범위(소득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단계적 실시)에 대한 의견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의미부여하고, 한나라당 서울 지역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1.8%가 복지 포퓰리즘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서울 시민들은 자신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기권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에 표를 던지는 선택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투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조선일보가 막상 투표율이 미달되자 ‘주민투표 결과가 무상급식에 대한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며 결과를 부정하는 모양새다.

오 시장의 사퇴 직후 터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단일화 논란은 한나라당은 물론 보수언론에는 ‘전화위복’의 기회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무상급식 투표를 놓고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 패배했는데, 10·26 재·보궐 선거와 내년 총선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될 ‘복지’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10·26 재보선에서 당이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 대결 2라운드’로 선거를 치르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무상급식 투표에서 사실상 한나라당의 ‘선택적 복지’가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에 밀린 만큼 복지 노선을 재점검해 10월 재보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조선이 “한쪽에선 무상급식 반대 캠페인을 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무상보육 정책을 발표해 한나라당의 진짜 입장이 무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거나, 복지 정책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한나라당을 향해 “복지철학과 정책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급식, 보육, 의료에 반값 등록금을 합한 ‘3+1 복지 플랜’으로 복지 이슈를 선점한 상태인데, ‘무상급식’ 하나에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면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충고인 셈이다.

보수언론이 앞으로 어떻게 ‘복지담론’을 주도해 갈지는 조선일보의 행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따뜻한 자본주의’, ‘다같이 행복한 공생의 자본주의’, ‘시장과 기업의 힘으로 사회모순을 극복하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지난 2일부터 시작한 ‘자본주의 4.0’ 시리즈에서 ‘선택적 복지’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리즈는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를 ‘곳간을 비우는 정부 복지’로 폄훼하면서 대기업 등 ‘시장’이 그 기능을 일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에게 최소한 4대 보험이라도 정부와 기업이 책임지자’거나(3일)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해 일하는 빈곤층이 더 큰 복지를 누리게 하자’는 주장(5일), ‘대기업·공공부문에 해마다 청년 7만명 고용의무제를 도입하자’(8일), ‘고졸자 의무고용 할당제 도입’(10일) 등은 한나라당 입장에서 ‘선별적 복지’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고민해 볼 만한 내용이다.
조선일보의 ‘자본주의 4.0’ 시리즈가 시작된 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생발전’을 제시하고, 여기에 화답하듯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잇달아 수천억 원의 사재 출연을 약속한 것을 보면 조선일보가 ‘보수’의 복지담론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지 논쟁이 재벌과 노동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발빠르게 복지의 일부를 재벌(시장)이 책임지자고 나선 것은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선수’를 빼앗긴 것일 수 있다. 복지 문제가 최대의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바로 지금 더 분발해야 할 곳은 보수언론이 아니라, 진보언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