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친서민 정책’을 무책임한 ‘표퓰리즘’으로 매도하는 보수신문들의 공세가 연일 지면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복지 포퓰리즘’ 반대 전선에 뛰어든 이들 신문이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4일자 1면 머리기사로 실린 <반값 등록금 희한한 역설> 기사에서 “애초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반값 등록금 논의가 자칫하면 서민의 지갑을 털어 대기업 금고로 넣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될 경우, 그동안 임직원 자녀에게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줬던 대기업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어 1천억 원에 달하는 ‘의외의 이익’을 대기업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이어 조선은 “다른 부문에 들어갈 정부 예산을 삭감하지 않는다면 전국 1700만 가구는 1년에 세금 30만원씩을 더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국민 1가구 세금 30만원씩 더 내고 5대 대기업은 1000억 ‘의외의 이익’”이라는 부제목을 큼지막하게 뽑았음은 물론이다.

   
▲ 조선일보 7월 4일자 1면.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될 경우 대기업이 ‘의외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듣고보니, 반값 등록금 정책이 그렇지 않아도 제 배만 불리기 바쁜 대기업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안겨주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를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 대기업의 금고로 들어간다’는 식으로 단순화 시키는 조선의 ‘용감한’ 주장에는 빈틈이 너무 많다.

먼저 ‘묻지마 반값 등록금(조선일보의 표현임)’을 실현하기 위해 서민의 지갑을 털어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여야가 내놓은 반값 등록금 정책의 재원마련 방안 조차 뜯어보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한규 민주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로 악화된 조세부담율을 전체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반값 등록금)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지, 가구당 세금을 얼마 더 걷겠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처럼 법인세 감세가 기업의 투자를 '장려'한다면, 대기업의 임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 부담 완화가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평소대로라면 '포퓰리즘의 역설'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이 문제는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대기업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게 조선일보의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설령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더라도 그 금액을 ‘가구당 30만원’으로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소득에 따라 부담하는 세금의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특별세’를 도입해 소득에 상관 없이 모든 가구에 30만원씩 부담하라고 한다다면 모를까, 평균적으로 가구당 얼마를 부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비록 '반값등록금'에 소요되는 재원을 전체 가구수로 나눠 그 부담액을 산정했다고 하더라도, 평소 '평준화'를 싫어하는 조선일보가 왜 이런 때만 유독 '평균내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 지난 6월 10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
 

또 여당과 야당이 당장 세금을 더 걷어 반값 등록금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조선의 주장대로 전국 1700만 가구가 1년에 30만원씩 세금을 더내면 5조1천억원에 이르는 재원이 마련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추산하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비슷한 규모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목소리 중 어느 누구도 필요 재원의 100%를 모두 세금으로 더 걷자고 주장한 적이 없다. 조선은 “다른 부문에 들어갈 정부 예산을 삭감하지 않는다면”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다. 그러나 ‘다른 부문에 들어갈 정부 예산을 삭감’하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예산을 줄여 이를 반값 등록금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게 바로 여당과 야당의 주장이다. 조선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가정’을 동원해 악의적으로 반값 등록금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가장 큰 함정은 따로 있다. 생각해보자. 대기업의 임직원 자녀들만 누리던 학자금 지원 혜택을 모두가 함께 누리자는 게 반값 등록금 정책의 취지가 아니었던가. 이를 통해 설령 대기업이 이익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극소수 ‘선택받은’ 사람들은 등록금 부담에서 오히려 면제되어 온 반면, 정작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부담이 큰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혜택이 제공되지 않았던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값등록금' 때문에 대기업의 부담이 줄어든다면, 서민의 부담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크게 줄어든다. 절대적 액수는 같을지 몰라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상대적 비용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등록금 부담을 덜 수 있다면 대기업이 그 때문에 일부 '혜택'을 본다한들 그것을 ‘역설’이라며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반값등록금으로 대기업의 학자금 지원 부담이 일부 줄어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조선일보가 평소 주장해왔던 것처럼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는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인기 영합 정책이 도리어 서민의 발목을 잡는 ‘포퓰리즘의 역설’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 점잖고 고상한 말투 속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짜 좋아하지 말라’는 오만한 시선이 담겨있다고 느낀 것은 과연 기자 혼자 뿐일까? 조선일보는 정말 ‘서민의 지갑을 털어 대기업 금고로 넣는 역설적 결과’를 우려하는 것일까? ‘포퓰리즘의 역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역설’이란 말인가? 조선일보에게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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