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는 여러 가지다. 크게 보면 우선 그 모든 불의들을 그저 남의 일로 여기며 적당히 자신만의 안락한 성채를 쌓는 이들이 있을 터다. 반대로 그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 더해 알면서도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테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이런 것을 ‘냉소적 이성’이라 불렀다.

1940년대 프랑스에서 벌어진 ‘레지스탕스’ 운동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93세의 저자는 “분노하라”고 외친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는 그는 “여러분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고 썼다.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는 게 이유다. 저자는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거나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고 진단한다.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는 저자의 말에는 묵직한 힘이 있다. 

   
 
 
34쪽의 이 얇은 책은 200만부 넘게 팔리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속속 번역되고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전달의 몸짓으로서 더욱더 관심을 끄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세대를 가로질러 ‘저항’의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어느 노(老)투사의 외침이라는 뜻이다. 그 외침은 세대 뿐만 아니라 이제 국경마저 가로질러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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