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론의 자유를 믿습니다. 언론사의 자유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이 믿는 바를 구속받지 않고 말할 자유를 말합니다. 설령 그 믿음이 저질이고, 터무니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당사자가 말할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것보다는, 그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의 언론 자유를 보장하되 그의 발언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물론 언론의 자유에서 예외도 있습니다. 공공연히 공익을 저해할 목적으로, 사실관계를 고의적으로 왜곡한 경우라면 곤란하겠죠. 히틀러와 그의 추종 세력들에게까지 언론 자유를 제공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언론 자유는, 그걸 적극적으로 부르짖는 사람을 모욕할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셔니스트 황의건씨.
 
그런 점에서 저는 요 며칠간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자칭 패션 칼럼니스트, 타칭 명품 PR맨(명품 홍보담당자)의 발언을 존중합니다. 그의 발언이 ‘국밥집 아줌마’처럼 노골적으로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차별적인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저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의 자유까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의 발언이 ‘반값 등록금을 원하는 학생들이 반값 인생’이라는 식의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그것이 청담동의 이름 난 카페에 앉아 샴페인을 홀짝 거리며 비슷한 사람끼리 나눴을 법한 얘기를, 트위터를 통해 대중에 널리 알릴 목적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의 언론 자유를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감정적으로 분출한 그의 의견을 경청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트위터 글들을 비교적 담담하게 읽었습니다.

당신의 언론자유를 존중한다. 그러나 …

그런데 그의 글 한 대목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로 인해 제 언론 자유를 행사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의 자유를 존중하는 대신 그의 착각을 지적해줄 수도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대목은 이른바 명품 행사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당사자인 명품 PR맨은 자신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여배우가 ‘공짜 옷 협찬을 받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여배우는 이 사실이 허위라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추후 밝혀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정작 제가 관심이 간 것은 사실관계가 아닙니다. 명품 행사의 주역으로, 그와 같은 명품 PR맨(혹은 우먼)들이 그간 보여온 행태입니다. 남의 언행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한 번 돌아보라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네. 패션 칼럼니스트를 자칭하는 이 분은 우리 홍보업계, 특히 명품 홍보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입니다. 명품 홍보업계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입니다. 오늘날 명품업체-언론사-연예인의 삼각 공생관계, 나쁘게 얘기하면 부패구조를 만든 당사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명품 PR맨들은 명품업체를 대신해 언론사와 연예인을 상대합니다. 그리고 그 위세는 대단합니다. 제 기자 시절 경험이 떠오릅니다. 한 명품 홍보담당자의 소개로 유명한 샴페인 생산업자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그 홍보담당자가 다른 기자를 통해 불만을 제기해왔습니다. 인터뷰 태도가 불손했다며,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샴페인의 품질과 관련해 직설적인 질문 몇 개 던졌다고 불손하다뇨? 명품 홍보담당자의 반응은 더 놀라웠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왜 명품업체들을 ‘슈퍼 갑’이라고 하는지, 명품을 홍보하는 사람들이 왜 자신들을 명품으로 착각한다고들 하는지.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일제 시대 일본 놈들보다 일본 앞잡이들이 더 밉다’던 조부모님 말씀이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배우 김여진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최근 잡지 기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얘기도 명품 홍보담당자들의 저질 행태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일반적으로 잡지에서는 화보를 찍기 위해 명품업체의 협찬을 받습니다. 물론 명품 홍보업체의 홍보담당자를 통하죠. 그런데 이 잡지는 협찬 상품인 스카프를 돌려주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해당 홍보담당자가 스카프에서 냄새가 난다며 구입하라고 종용했던 겁니다. 잡지 기자가 구입할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자, 홍보담당자가 여럿이 지켜보는 매장에서 그 스카프를 기자 얼굴에 집어던졌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명품 홍보담당자들이 늘 언론과 연예인에 위세를 떠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별의별 아양을 다 떱니다. 그들이 명품을 소개하거나 소비해줘야 홍보에 도움이 되는 언론과 연예인이 그 대상입니다. 한 여성 패션지 편집장은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매달 명품 홍보업체가 보내온 선물이 책상에 수북이 쌓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렇게 화려하게 포장해서 보낼 필요가 있을까? 저런 데서 비용을 절감하면, 가격을 좀 낮출 수도 있을텐데.” 특급 연예인들이 명품업체들로부터 각종 상품을 단순히 협찬 받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선물 받는 것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바로 명품 홍보담당자들이 만든 기가 막힌 관계입니다. 한 마디로 강한 자에게는 지극히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지극히 강한 구조입니다.

명품 홍보담당자들의 위악을 적잖게 목격한 저로서는, 이번 한 명품 PR맨의 발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한 여배우의 사회적 발언은 별 볼 일 없는 연예인의 주책으로, 반값 등록금을 향한 절박한 목소리는 루저들의 집착으로 본 것이죠. 만일 장동건과 고소영이 사회적 발언을 했더라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이 결혼식 의상을 협찬 받으려 했던 사실을 들춰가며 비난했을까요? 강남 부잣집 자녀들이 등록금 문제를 제기했더라도 그들을 비난했을까요? 전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그는 강자를 비난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반면 약자를 싸잡아 공격하는 데는 도가 튼 이죠.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가혹한 명품PR맨들의 직업병

흥미로운 것은 명품 홍보담당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의외로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품업체와의 계약 환경이 워낙 열악합니다. 홍보대행사는 ‘절대 을’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홍보담당자들의 봉급도 적습니다. 그나마 명품을 남들보다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자부심의 원천이고, 명품 협찬처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의 핵심입니다. 여러 모로 경제적 약자인 자신을 강자로 군림하게 만드는 요인은 그것뿐입니다.

이번에 문제 발언을 한 홍보담당자는 샴페인과 패션에서 전문가를 자처했습니다. 그와 관련한 책도 냈죠. 그런데 그 책을 볼 때마다 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정직하게 번 돈으로 사 마신 샴페인과 사 입은 옷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요. 당사자는 성적 정체성 면에서도 소수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소수자, 약자를 지나칠 정도로 몰아부치는 것은 명품 홍보담당자의 직업병을 빼놓고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오늘날 모든 명품 홍보담당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초창기 명품 홍보시장을 연 소수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행적을 일일이 다 들출 필요야 없겠습니다만.

   
이여영 프리랜서 기자
 
명품업체와 홍보담당자들의 오만이 우리 소비자와 유통시장의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오만을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오만의 문화를 만든 당사자와 그 문화를 죽어도 버릴 수 없다는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더욱이 그가 고상하게 샴페인을 들고 축배를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저주와 비난을 퍼붓고 있다면, 그게 진정으로 그가 얘기한 ‘토가 쏠리는’ 경우 아니겠습니까? 상징적인 표현입니다만, 저는 기꺼이 그의 샴페인 잔에 침을 뱉겠습니다. 그것 또한 제 언론의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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