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노동쟁의 관련 신문보도


언론에게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에 대한 조그마한 아량도 없는 것일까.

노동쟁의만 일어났다 하면 어김없이 사용자의 편에서 노동자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 ‘3자 개입’을 서슴지 않아왔던 게 지금까지 언론의 모습이었다. 쟁의가 발생한 사업장이 대규모 제조업체이면 ‘경제적 손실’과 ‘수출 차질’이, 공공 부문이면 ‘공공기능 마비’와 ‘시민 불편’이 마치 무슨 공식처럼 뒤따랐다.

그동안 민실위는 이런 언론의 편파적인 태도에 대해 누차 부당성을 지적해 왔다. 그런데도 이번 서울지하철 노사협상 과정을 보도하는 신문의 태도는 이전과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 노사가 심야 마라톤협상 끝에 가까스로 타결을 보았기에 망정이지 노조는 또다시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단체행동’이라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을 뻔 했다.

이런 편파적인 시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보자.

노사의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던 3일 밤 한국일보는 4일자 서울시내판에 사회면 두 번째 중요기사로 ‘서울지하철 타면 지각할 판…오늘 내일 준법운행 출근길 비상’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2단 크기였지만 ‘출근 지각사태 우려’라는 제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일보는 이날 첫판에 ‘출근길 지각사태 우려’라는 제목으로 사회면 머릿기사를 요란하게 장식했다가 시내판에는 기사크기를 4단으로 줄이고 제목도 ‘서울지하철 운행 비상’m로 목소리를 낮추는 ‘수고’를 했다.

이와는 달리 첫판에 ‘지하철 노사협상 막바지 진통’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던 한겨레신문은 되레 시내판에서 제목을 ‘오늘 지하철 지연 운행비상’로 고쳐 내보냈다. 경향신문도 ‘서울지하철 비상’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지하철 노사협상이 타결됨으로써 결국 이러한 보도는 오보라는 웃지못할 결과를 낳고 말았다.

물론 제작시간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당시로선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노조의 준법투쟁이 이날 예정돼 있어 어쩔수 없었다고 항변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그렇다면 같은 조간인 조선일보가 ‘서울지하철 막바지 절충…밤샘협상 타결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한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불가피했다가 보다는 먼저 예단과 편견이 앞선 나머지 언론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신중함마저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사태진전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설사 그런 항변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편파적인 태도가 결코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지하철 노조쪽은 “전동차 지연운행에 따른 시민불편을 감안해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 준법운행 적용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방침”(경향신문)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이런 언급은 이미 석간신문에도 보도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문은 이를 무시한 채 ‘출퇴근길 비상’으로 몰고갔다. 상황에 대한 충실한 전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출근길에 엄청난 혼잡이 빚어지고 지각사태가 속출하는 엄청난 불편이 있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어쩌면 일부 시민은 오보인 신문기사를 보고 지하철을 피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불편을 겪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이는 경제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라치면 언론이 먼저 나서서 ‘시민 불편’이니 ‘경제 혼란’이니 떠들며 원천봉쇄하려 든다. ‘법대로’를 따지며 불법쟁의에 철퇴를 내릴 때완 사뭇 다르게 ‘무법’을 조장한다.

더구나 협상에는 언제나 쌍방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협상결렬 때는 사용자의 잘못이 있을 법도 한데 언제나 돌아오는 매는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뿐이다.

이번 지하철 노조처럼 협상과정에서 핵심 요구사항인 해고자 복직과 소송 취하 등을 유보한 것도 매를 줄이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사용자가 ‘시민의 발을 볼모로’ 노조를 무력화시키려고 할 수도 있을텐테.

만약 언론에 다음과 같은 보도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거나 너무 순진한 걸까. ‘지하철 오늘은 느긋이 기다리세요…노조 준법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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