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5·18 피고소·피고발인 전원에 대해 신군부의 일련의 행위가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신군부의 일련의 조치가 외형상으로는 최 전대통령의 사전재가나 지시없이 기획·입안된 것이라고 하여 내란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했다. 검찰이 이처럼 내란 혐의사실의 상당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통치행위’란 이유만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은 법률상으로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우선, 통치행위란 법치주의의 예외적 현상이므로 그 주체와 성질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즉 통치행위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최고국가권력기관이 국가전체를 총괄적으로 지도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가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계엄선포나 선전포고, 국회의 의결등과 같은 헌법기관의 행위라야지 정부 보조기관이나 사인의 행위는 통치행위가 될 수 없다. 신군부가 군인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행위는 그 주체, 성질의 두 측면에서 결코 통치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내란죄는 통치행위가 될 수 없음이 헌법상 명기되어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란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대통령 재직중이라도 내란죄에 대해서는 형사소추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신군부의 일련의 행위들이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통치행위라서 불기소처분한다고 한 것은 검찰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은 또 정치적 변혁과정에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저지른 일련의 행위들은 통치행위여서 권력분립의 원칙상 법원의 재판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아닌, 법원이 판단해야 할 영역이다. 검찰은 그 본래의 기능에 따라 철저하게 수사하고, 기소를 했어야 옳았다.

검찰이 스스로 상당부분 내란죄의 성립을 인정한다면서도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린 것은 그 내용상 내란행위가 명백해 도저히 무혐의처분을 내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경우 예상되는 국민의 거센 반발을 우려한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와같은 기소해야할 사안을 궁색하게 공소권없음 처분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삼 대통령은 ‘5.13 특별담화’에서 현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선 정부임을 밝혔다. 그런데도 그는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검찰은 이러한 대통령의 요구에 너무나도 충실하게 답변하고자 견강부회의 통치행위론을 들먹이며 곡학아세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검찰의 수사 결과는 성공한 내란죄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란에 성공만 하게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매우 나쁜 선례와 잘못된 가치관을 우리 사회와 역사에 남기게 되는 것이다.

5월항쟁 이후 국민들의 민주화의지가 끊임없이 분출되어 종국에 가서는 집권세력을 축출하고 문민정부를 세운 것으로 보아 검찰의 형식판단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과연 신군부의 정권 장악이 과연 ‘성공한 내란’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하겠다.

무엇보다 검찰이 공소권없음 결정을 할 것이었다면 그것은 신속하게 이뤄져야 했다. 이러한 판단은 내용의 실체에 접근하기 전에 이뤄져야 하는 형식적 판단으로 고소인·피고소인·참고인에 대한 조사를 1년2개월여나 질질 끌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공소시효가 불과 1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검찰은 고소-고발인의 항고, 재항고, 헌법소원 등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원천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 검찰이 주남마을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도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공소시효를 넘겨버린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시위가 벌어지는 도심도 아니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것은 명백한 살인죄에 해당한다. 그것이 공소시효만료전인 4월 중순경에 밝혀졌다면 그 학살사건만이라도 기소를 하였어야 옳았다. 검찰이 아무런 이유없이 공소시효를 넘겨 버린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직권남용이다.

우리는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제대로 척결하지 않아서 해방 반세기가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정기가 바로서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김대통령은 12·12군사반란자이면서 광주학살자인 신군부세력을 비호하고 불기소결정을 함으로써 문민정부마저 반빈족적·반민주적 만행을 저지른 자들을 단죄하지 못하여 민족정기 확립에 실패했다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에 직면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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