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물가가 비쌀 때마다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값도 싸고 맛도 있는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류의 기사가 그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비싼 식재료 사느니…” 연초부터 ‘간편 가정식’ 인기>라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최근 신선식품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대형마트 등에서 만드는 간편 가정식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는 보도였다.

   
서울의 한 대형할인마트 식품매장에 간편가정식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다른 언론도 다르지 않다. 최근 한두달 새 문화일보·매일경제·서울경제·스포츠조선 등에도 유사한 기사가 실렸다. 대부분 대형마트 측에서 준 보도자료 그대로, 직접 사서 해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맛집 수준의 품질’을 자랑하며, ‘알뜰족의 훌륭한 선택’이 되고 있다고 썼다.

이런 보도는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언뜻 보면 별로 이론을 제기할 게 없는 듯하다. 가령 보도에 언급된 홈플러스표 전복죽의 경우를 보자. 1인분 가격이 2250원이니, 일반 식당에서 사먹거나 집에서 조리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물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제품의 전복 함량은 2.38%로 전체 270g 중 6.4g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반 마트에서 껍질을 제외한 50~60g 상당의 국내산 활전복 1마리가 3000~4000원 정도에 판다. 전복죽 1인분은 족히 만들고도 남을 양이다.

그러니까 마트 전복죽엔 약 300~500원어치의 극히 소량의 전복이 들어 있는 셈인데, 더 큰 문제는 이마저도 냉동 상태의 말레이시아산 전복이라는 사실이다. 냉동된 동남아산 전복과 싱싱한 국내산 활전복, 과연 맛이 비교가 될까? 같은 양과 질일 때 과연 마트표 전복죽이 싸다고 할 수 있을까?

즉석 전복죽, 냉동 외국산에 그나마 함량도 2.38%
값도 싸지 않아 … 공력 들지만 ‘우리집표’엔 비교 불가

물가가 오르고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지면서 간편 조리식품·즉석식품이 잘 팔리고 있다는 ‘소비 경향’을 언론이 전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여기에 “야채 등 신선제품 가격이 급등할 때는 대형 마트에서 준비한 완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훨씬 저렴할 수 있다”(문화 2월 18일자) 따위의 ‘해석’을 다는 건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잘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싸다’, ‘편하다’, ‘맛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이는 결과적으로 혹세무민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이 주로 오류를 저지르는 지점은, 상품의 ‘질’은 무시하고 오직 가격만 정태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이다.

앞의 문화 기사에 나온 ‘이마트표 부대찌개’도 꼼꼼하게 뜯어보자. 2~3인분이 6800원이니, 1인분에 5000~6000원 하는 일반 식당 가격과 비교해 확실히 싼 것 같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거의 충격에 가깝다. 햄 4조각, 소시지 4조각, 떡국 떡 10여 조각, 양파 1/4개, 대파 2쪽 등 한눈에 봐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원가로 따졌을 때 1500원이면 충분한 양이었고 그 비싸다는 ‘야채 등 신선제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호주산 사골육수 100ml, 김치 80g, 사리면 1봉지, 양념이 들어 있는데, 모두 합해 아무리 많이 잡아도 1500원 안팎이면 구입 가능했다. 같은 종류와 양일 때 사골육수는 570원, 김치는 300원, 사리면은 250원이면 됐다. 양념이 빠졌는데 일반적으로 부대찌개 국물은 멸치육수에 고춧가루·고추장·국간장·다진마늘·다진생강 약간씩이면 충분하다. 이 말은, 약 4000원 정도면 집에서 얼마든지 ‘이마트표 부대찌개’ 수준의 음식은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6800원이면 양으로나 질로나 좀 더 나은 부대찌개를 해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데도 “마트에서 구입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고?

매일경제 2월 28일자 <홈쇼핑서 조리기구·반조리식품 잘 팔려>란 기사에 나온 한 제품도 검증해보자. 매경은 기사에서 “롯데홈쇼핑의 ‘크라제 스테이크(20팩ㆍ5만9900원)’는 수제 햄버거 1팩을 3000원 미만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수제 햄버거’도 햄버거 나름이다. 성분을 살펴보면 1인분 160g 중 소고기는 49.1%에 불과하고 호주산 목심 부위를 썼다. 나머지는 밀가루, 야채, 양념으로 채웠다. 그런데 햄버거 스테이크는 고기 상태만 좋으면 이런 부재료나 소스는 별로 중요치 않은 음식이다.

냉장 상태의 호주산 목심 100g이 보통 1500~2000원 정도 하는데, 이것만 그대로 잘 갈아 뭉쳐서, 소금·후추만 살짝 뿌려 잘 구우면 고기맛과 씹는맛이 훌륭한 햄버거 스테이크를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위 제품은 냉장인지 냉동인지 보관 수준과 신선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소고기를 썼고 결정적으로 냉동 상태에서 판매한다. 이는 3000원이면 훨씬 더 신선하고 맛있고 믿을 수 있는 ‘우리집표 햄버거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물론 바쁜 직장생활, 특히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대형마트의 간편식을 비롯해 온갖 즉석식품, 인스턴트 식품을 아예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음식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을 때’ 먹어야 하는 것이지, 일상적으로 먹으라고, 좋은 선택이라고 누군가 나서서 권할 만한 것은 아니다. 맛이나 영양 면에서도 그렇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 심지어 싸다고 볼 수도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대형마트와 거대 식품업체는 간편식 등으로 이를 ‘대신’해주겠다고 나선 것인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대형마트와 식품업체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면, 그 시간과 공력을 어떻게든 ‘나의 것’, ‘우리의 것’으로 되찾아 와야 할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 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