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그리고 다른 언론사 모두가 인정하는 노동조합을 수용치 않겠다는 경영진의 경직된 태도를 지켜본 편집국 조합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 탄압의 수법은 21세기를 향해가는 언론사에서 일어났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원시적’이다.

노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기자직을 박탈한 경우는 언론사에서 처음있는 일이다. 노조 간부들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 주재기자로 발령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상식과 통념을 무시한 독선적 조직운영, 문화일보 노조 결성의 모태는 이것이다.

경영진의 독선과 전횡은 4년밖에 되지않는 문화일보의 지면과 조직을 황폐화시켰다. 지난 17일 긴급소집된 노조사수를 위한 비상총회에서 발언에 나선 편집국 기자들 대부분은 “불신과 침묵만이 흐르는 편집국 분위기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살아왔다”고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광고지를 만들기 위해 기자가 된 것이 아니다”는 한 기자의 절규에 가까운 말은 문화일보의 상황을 압축한다.

종합지 전환을 위해 정부와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나 민자당에 비판적인 기사는 쓰지 말라”고 반공개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편집국 간부들은 광고가 어렵다며 기업비리는 보도하지 말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필자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원고’가 버젓이 지면을 차지했다. ‘청산거사 수행기’ ‘미국은 지금’ 등 일부 연재물의 경우 기자들은 어떻게 기획됐는지, 필자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기사를 싣고 제목을 뽑아야 했다. 회사 최고위층에서 ‘낙하산’ 식으로 떨어뜨린 기사이기 때문이다.

사회부 경찰기자팀이 “신도시 안전에 이상있다”는 특종성 기사를 사회면 머리로 내보낸 다음날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도시 구조적으로 문제없다”는 기사가 게재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마저 빚어졌다.

조직운영과 인사 역시 파행을 면치 못했다. 편집국 기자들은 “거의 두달에 한번꼴로 숙청인사가 단행됐다”고 말했다. 보복, 편가르기식 인사가 반복됐다는 것이다. 축출된 임원집에 인사차 들렀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밀려난 간부와 점심을 먹었다는 게 인사사유가 됐다. 밥먹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자들의 창의와 자율성을 가로막는 ‘긴급조치’가 시도때도없이 발효됐다. “책상정리 잘해라” “술을 석잔이상 먹으면 회사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여기자들을 겨냥해 “편집국에서 담배피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현재 긴급조치는 9호까지 발동됐다.

일방 통행식의 지시와 규제가 있을 뿐 자유로운 토론은 자취를 감췄다. 한때 ‘개성있는 기자’로서 참신한 기사를 쓴다는 평가를 받던 문화일보 기자들의 어깨는 처지기 시작했고 지면은 생기를 잃어갔다. 문화일보 노조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결성됐다. 거꾸로 가는 문화일보의 시계를 돌려놓기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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