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는 무책임한 폭로사이트인가, 아니면 권력을 감시하는 미디어인가.

전 세계의 시민사회가 이 물음에 어떤 답을 내놓는가에 따라 위키리크스의 운명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전문지 <더 힐>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16일 법사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법무부를 상대로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샌지에게 간첩죄를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법적인 문제를 따질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과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 등의 어샌지에 대한 간첩혐의 기소 주장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특히 리버먼 의원의 경우에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의 처벌까지 주장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심각한 것은 이런 움직임이 일부 의원으로부터 가시화되기는 했지만 미국 정부의 의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위키리크스가 각국의 주재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각 정상들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담긴 외교문서 전문을 공개하자 어샌지의 처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이 때문에 위키리크스 쪽에서는 최근 어샌지에 대해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를 적용해 체포하려고 한 스웨덴 정부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샌지는 최근 영국 경찰에 자진 출두해 체포된 상태다. 위키리크스에 서버를 제공했던 아마존이 서비스를 중단하고 페이팔,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등이 후원계좌를 폐쇄한 것도 미 정부의 강력한 압력이 작용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 지금까지의 전개로만 보면 적어도 미 정부는 아니다. 미 정부와 의회의 이런 태도는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를 자임해 왔던 미국의 이중성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으며, 동시에 사이버 세상에서는 기존 권력이 항상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전문 공개로 치부가 드러난 미국 정부가 어샌지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고 사이트까지 영구 폐쇄시키려는 전방위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위키리크스는 서버를 스웨덴과 프랑스 등으로 옮기고 폭로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또, 사이버 세상에서 위키리크스를 지지하는 실력 있는 해커들이 빠르게 결집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위키리크스 압박에 동조한 업체들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 일시적인 서비스장애를 유발시켰으며, 미러사이트(일종의 복제사이트)를 개설해 위키리크스를 폐쇄시키려는 미 정부를 비웃고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시위도 거세다. 어샌지의 체포 후 스페인 마드리드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과 중남미 여러 곳에서 어샌지의 석방과 스위스은행 계좌폐쇄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어샌지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하나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압력은 언론자유를 전면 부정하는 위험한 행동으로 중단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런 현상에 대해 “기존 체제와 인터넷이란 자생적 풀뿌리 문화의 첫 번째 충돌”이라고 논평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어샌지에 대한 미 정부의 간첩죄 기소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주목된다. 신문은 12일 <위키리크스를 기소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 정부는 스파이가 아닌 사람을 또 기밀 준수에 대해 법적으로 구속돼 있지 않은 사람을 기소할 권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법에서는 특히 언론에 간첩혐의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위키리크스에 대해 광의의 언론이라는 해석이 내려질 경우 어샌지 처벌은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가 이미 언론이라는 공감대도 폭넓다. 위키리크스는 이코노미스트로부터 뉴미디어상(2008년), 국제앰네스티로부터 미디어상(2009년)을 수상했으며, 어샌지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후보에도 올라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