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기밀문서가 공개된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추악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 더 큰 문제다. 정부의 신뢰가 추락했다."

1971년 뉴욕타임즈가 미국 국방부의 기밀 문서를 입수, 통킹만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폭로했을 때 상원 의원 조지 맥거번이 한 말이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려고 거짓 증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전 운동이 확산됐고 결국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기밀 문서를 넘긴 다니엘 엘스버그는 메사추세스공과대학 부설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미국 정부는 그를 흠집 내려고 비밀 요원을 배관공으로 위장시켜 그가 다니는 정신병원에 잠입, 의료 기록까지 뒤진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대법원은 미국 정부가 보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이를 기각하고 “미국 헌법이 언론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들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사건은 30년이 지난 최근 위키리크스 사태와 비교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긴다. 내부 고발자였던 엘스버그는 온갖 정치 공세에 휘말렸지만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아프가니스탄·이라크 기밀 문서는 여전히 제보자가 누군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상 최대의 기밀 문서 유출이라는 미국 외교부 문서 폭로 역시 마찬가지다. 엘스버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기자를 찾아갔지만 위키리크스는 직접 터뜨리고 언론사들이 받아쓰도록 만든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들었던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대통령이 직접 불법 도청을 지시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는 빨간 깃발이 꽂힌 화분을 아파트 베란다에 내놓는 것을 신호로 제보자를 새벽 2시 지하 주차장에서 만났다. ‘딥 스로트’라고 알려진 익명의 제보자는 그가 죽기 직전인 2005년이 돼서야 연방수사국(FBI)의 마크 펠트 부국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지금까지 특종 보도는 이처럼 내부 고발자의 제보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흔히 '빨대'라고 부르는 핵심 취재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취재원을 보호하는 게 탐사·고발 보도의 기본 원칙이었다. 그러나 기밀 정보일수록 출처가 쉽게 드러나고 그만큼 내부 고발자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이 크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엄청난 정치적 부담과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고 때로는 직장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위키리크스는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했다. 제보자 보호가 법적으로 보장된 스웨덴에 서버를 두고 있고 파일을 업로드하는 동시에 자동으로 네트워크 정보를 삭제해 운영자들도 누가 제보자인지 알 수 없다. 세계적으로 수천명의 해커들이 지원하는 시스템인만큼 외부 추적이나 해킹을 완벽하게 방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키리크스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는 미국 정부도 아직까지 위키리크스의 첨단 보안 장벽을 뚫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에는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온갖 기밀 문서가 집중되고 있다. 기업 비리에 대한 제보도 쏟아지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건 위키리크스가 진실을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엄격한 제보자 보호와 철저한 사전 검증,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폭로하는 용기,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거래도 없다. 다만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질 뿐이다. 위키리크스는 집단지성과 미디어가 결합한 대안적인 미디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이 위키리크스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도 그들이 숨기고 싶은 추악한 진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샌지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유와 정의가 결핍된 곳에서는 윤리적으로 무장된 시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면서 “원칙있는 폭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좋은 쪽으로 바꿨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용기에는 전염성이 있다"는 위키리크스의 구호도 의미심장하다. 위키리크스에서 독점적으로 자료를 넘겨 받은 뉴욕타임즈와 가디언, 슈피겔 등이 연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 외교부 문서는 일부일 뿐이다. 주미 한국 대사관이 작성한 문서도 1980여건이나 되지만 이 가운데 공개된 것은 80여건 밖에 안 된다. 2007년 대선 직전에 작성된 문서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 건인 BBK 관련 문건도 포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샌지가 최근 성폭행 등의 혐의로 영국 검찰에 구속된 상태지만 위키리크스가 폐쇄되더라도 또 다른 위키리크스가 나올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어샌지의 동업자들이 오픈리크스라는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고 세계적으로 어샌지를 지지하는 해커들이 수많은 미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어샌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암호를 걸어 배포한 '최후의 심판' 파일에 무엇이 담겨있을까도 초미의 관심사다.

저널리즘 전문 블로그인 넥스트제너레이션닷컴은 "지금까지 기자들은 왜 이런 사건을 고발하지 못했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기자들은 우편함에 들어있는 걸 꺼내서 멋진 문장으로 다듬는 사람이 아니다. 진실을 찾고 이를 보도하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닌가. 아마도 취재 역량의 한계와 정부의 폐쇄적인 정보 공개 마인드, 그리고 정치적 보복 등의 우려 때문이겠지만 위키리크스는 이런 모든 한계를 넘어 탐사 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뉴욕대 저널리즘스쿨의 제이 로젠 교수는 "위키리크스는 저널리즘에서 '미들맨(중개인)'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는 내부 고발자가 익명으로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직접 만나는 통로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뭔가를 알리려면 주류 언론의 기자를 찾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됐다. 언론이 끼어들 틈이 없다."

주목할 부분은 이처럼 기밀의 문턱이 낮아지고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날 것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시대에 주류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외교부 기밀문서 폭로 이후 뉴욕타임즈 사이트에 1800만명이 방문할 동안 위키리크스에는 35만명이 방문했다. 위키리크스가 뉴욕타임즈 등을 파트너로 잡고 엠바고를 걸어 기밀문서를 사전에 공개한 것도 여전히 주류 언론의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 편집국장 빌 켈러는 "위키리크스가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 꾸러미는 훈련된 저널리스트가 아니라면 거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 같은 소셜 미디어와 주류 언론의 영역이 다르며 여전히 주류 언론의 역할이 남아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버드대 부설 니만저널리즘연구소는 "정보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데이터 저널리즘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면서 "소셜 미디어와 주류 언론의 결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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