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가 한국인을 분노케 한 적이 있다. 30년 전 전두환 일파가 정권 탈취 음모를 착착 진행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언론 인터뷰에서, 야만적인 권력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떠올리며 ‘들쥐론’을 폈다. 그의 어법은 적절치 않았다. 그것은 한국인을 모독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말은 실현됐다.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쿠데타 실세를 좇아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쓸개도 배알도 없는 언론의 전두환 찬가도 이어졌다. 전두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들쥐들의 행진’을 우리는 30년 후 다시 목격하고 있다.

며칠 전 날치기 국회 모습은 ‘쥐떼들의 난장판’이었다. 먹이를 놓고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야수들의 세계 그대로였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을 명분 삼아, 법을 짓밟은 야만의 현장이었다. 주먹과 완력이 빛난 격투기 대회가 따로 없었다. 최소한의 심의 절차와 시늉만의 계수 조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차가운 여론을 잠재우려는 한나라당의 모습이 눈물겹다. 한나라당은 정책위의장을 희생양으로 사태를 덮어버릴 속셈을 보인다. 관련 장관을 불러 책임을 추궁하는 시도도 눈에 띈다. 그러나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이번 날치기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실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 지난 8일 오후 한나라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각종 4대강 친수법을 비롯해 쟁점법안과 예산안을 날치기처리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 사태가 벌어졌다. 이치열 기자  
 
MB 손짓 따른 ‘쥐떼들의 난장판’

유대 정신문화의 뿌리, 탈무드는 맹목적인 찬성의 위험을 경계한다. 탈무드는 고대 유대사회 최고 의결기관 ‘산헤드린’이 ‘만장일치는 무효’라는 원칙을 지켰다고 전한다. 인간의 비겁, 독선의 위험,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통찰이 놀랍지 않은가.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느 누구도 ‘이명박 사업’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국민이 4대강 파괴의 무모함을 말하면, 거기에 귀 기울이는 척이라도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그 사업이 적절하고 정당하다고 치자. 적어도 촌각을 다투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속도라도 조절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권력자의 손짓 따라 움직이는 침묵의 ‘만장일치’ 행렬,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쥐떼들의 행렬이 연상되지 않는가. 탈무드의 원칙을 새삼 곱씹게 한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 먼 행태는 또 무엇인가.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나눠먹는 짓과 뭐가 다른가. 명백한 범죄 행위 아닌가. 그것은 입법부의 합법적 권한이라는 허울 뒤에서 국가 재정을 농단한 죄악이다. 여야가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던 순간 장막 뒤에서 쪽지를 건네며 떡고물을 챙기는 풍경이라니. 슬그머니 끼워 넣은 ‘형님 예산’, ‘김윤옥 예산’, ‘실세 예산’은 사실상 국고를 축낸 중대범죄의 증거물들이다. 정작 필요한 예산이 희생됐다면 그 죄는 더욱 크다. 아이들을 질병의 위험에서 구하는 데 쓸 추가 예산이 사라졌다. 방학 중 결식아동을 위한 지원금이 송두리째 잘려나갔다. 저소득층 자녀이거나 소년 소녀가장들 30만명이 방학 중 굶을 위기에 놓였다.

예산은 곧 정치다. 공정성과 우선순위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예산 편성의 철칙이다. 날치기 난장판 뒷전에서 막판에 밀어 넣은 예산이 특정 지역에 3분의 2가 집중된 것은 공정하지 않다. 토건사업에 몰아준 것도 이명박 정권의 토건주의를 반영한다. ‘실세 예산’이나 계수 조정소위 위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는 그 자체만으로 날치기 예산안의 불법?부도덕성을 입증한다.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않는 대인의 풍모는 한국 정치인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들쥐의 길 접어든 정치는 ‘무덤’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던 순간, 서울역 광장에선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농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목 놓아 성토했다. 며칠 전 굴욕적인 한미FTA 재협상을 마무리한 터였다.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한미FTA 재협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MB정권의 진정성을 농민들은 믿지 못한다.

이미 농민들은 개방의 격랑에 파묻힌 지 오래다. 쌀은 한때 ‘돈’ 그 자체였다. 화폐 구실을 할 만큼 값진 존재였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농촌지역에서 농지가 쌀로 거래될 정도였다.  이제 한 끼 쌀값은 커피 한 잔 값에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헐값이다.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쌀값에 가슴이 타들어 간다. 생산비는 날로 오르고 올핸 하늘도 무심했다. 태풍에 이상 저온 현상까지 겹쳤다. 농민들은 실질 소득이 작년보다 30~40%는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손을 놓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야속하다.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원망스럽다. 자동차 등 일부 산업이 FTA의 수혜자라면, 그 최대 희생자는 농민들이다. “남아도는 쌀을 굶주리는 북녘 땅에 보내면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 텐데.” 일석삼조를 마다하는 이명박 정권을 농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농민은 이미 정치적인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다. 정치공학에 밝은 정치꾼들에게 농민은 무서운 이익집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야멸친 태도를 보인다면 비겁하다.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시장 개방은 잔인하다. FTA 협상 책임자의 ‘다방 농민’ 발언은 농민들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힌다.

예산안과 함께 40여개 안건이 무더기로 날치기 처리됐다. 특히 아랍에미리트 파병 동의안은 정권의 경박성을 상징하는 표징으로 기록될 만하다. 무력을 수출 상품에 끼워 판 격이다. 국가 이익을 앞세워 불법을 정당화 하는 것은 천박한 장사꾼이나 취할 일이다. 친수구역특별법도 떳떳하지 않은 법안이다. 국토를 송두리째 훼손할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난개발을 막는 법인지, 난개발을 부추기는 법인지 그 내용조차 국민은 모른다.

떳떳하지 않은 정치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행위다. 한국은 이른바 선진국을 눈앞에 둔 나라다.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람의 길인가, 들쥐의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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