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에 찬성한다는 소신을 밝힌 국회의원은 단 두 명이었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6일 국회의원 298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대는 96명, 무응답은 200명에 이른다. ‘단 두 명의 찬성’은 뜻밖이다. 물론 그 조사결과에 통계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무응답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한 교수모임의 조사에 국회의원들이 일일이 응답할 의무는 없을 게다. 그러나 그 조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4대강 사업은 범국민적 관심사이다. 절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야당은 국민의 뜻을 등에 업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국면이다. 야당은 4대강 예산을 놓고 육탄전을 벌인다. 친수구역활용에 관한 특별법(친수법)을 놓고도 격렬하게 맞서고 있다. 결코 정략적인 반대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대국민 설득은 여당 발등의 불이다.

그런 판국에 ‘단 두 명의 찬성’이라니.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전체 국회의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찬성률이라면, 국민의 반대를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 아닌가. 누군가는 높은 ‘무응답’ 비율을 들어 반박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응답’도 피해갈 구멍은 아니다. 교수모임은 진지한 자세로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조사는 지난 9월부터 이번 달 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전자우편과 전화, 팩스 등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도됐다. ‘무응답’한 의원들은 사업의 적절성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하려는 성의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은 명백하다. 설득에 나서야 할 사람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의원도 MB 4대강 올가미 갇혀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무응답’ 의원들의 태도는 당당하지 않다. 4대강 사업은 나라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자, 훗날 후손들의 지탄을 면치 못할 망국적인 사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터다. 한나라당의 침묵은 비겁하다. 비겁한 침묵 뒤엔 ‘직선’을 추구하는 MB의 의지가 도사리고 있다.

4대강에 집착하는 MB의 뜻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국민의 뜻을 잘 아는 한나라당도 이미 반대의 때를 놓쳤다. 이명박 올가미에 완벽하게 갇힌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옥죄고 있는 덫은 MB의 ‘직선의 철학’,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이다.

‘직선’과 속도에 고갱이를 둔 MB철학의 뿌리는 깊다. 직선은 물리적으로 두 점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속도는 최대 이윤을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기업가에게 시간은 돈이다. 공정이 늦어지면 원가는 뛰고 이윤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생산성은 곧 시간과의 경쟁력을 의미하지 않는가. 특히 토건업자에게 속도는 생명이다. 더구나 그는 ‘직선’의 묘를 체득하고 향유한 특별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눈부신 속도로 대기업 CEO 자리에 올랐다. 그 시절 기업의 성장 속도 역시 폭발적이었다. 평생을 거의 기업인으로, 그것도 토건업에 몸 바쳐 살아온 MB에게 ‘직선’은 영원한 벗일 수밖에.

그의 ‘직선’은 곳곳에서 마찰을 빚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연은 직선이 아닌 터다. 직선은 인위적인 선분이다. 자연도, 우주도, 거기에 깃든 모든 생명체의 모습도 ‘곡선’이다. 그 생명체의 운동양식도 곡선을 닮았다. 정치도, 인간관계도 곡선의 묘가 요구되는 오묘한 세계다. 전쟁과 평화, 갈등과 화합의 세계에서도 어김없이 곡선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임기 중에 그럴 듯한 치적을 노리고 4대강 사업을 벌인다면 그것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탐욕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정치의 뒷걸음질을 우리는 이미 확인하고 있다. 명분 없는 사업이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브레이크 없는 탱크처럼 앞으로 치닫는다. 여당의원들은 청와대 뜻을 거역하지 못해 내친 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그렇다고 당당하게 찬성론을 펼치지도 못한다.

‘직선의 위험성’ 경고한 연평도 포격

하찮은 범부의 지혜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했다. ‘일행 세 사람이 길을 가는 중에 반드시 한 사람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하물며, 종교계 지도자와 전문가들, 양식을 지닌 보수 진영 인사들까지 반대하는 사업을 외곬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토목공사가 아니다. 정치는, 특히 민주주의는 곡선이다. 기다림과 인내, 곡선의 예술이 정치다. 다양한 집단, 갖가지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일이 토목공사에 나선 중장비의 효율성을 어찌 당할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직선’의 위험성을 새삼 깨닫는 호기가 되었을 법하다. 세상사가 어찌 계산하는 대로 돌아가는가.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하고 ‘미꾸라지 속에도 부레풀이 있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는 하루아침에 박살나는 유리잔임을 우리는 확인했다. 북한은 결코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냉엄한 사실도 함께. 그러나 공허한 ‘사후 약방문’만 요란하다.

   
  ▲ 고영재·언론인  
 
북한의 만행으로 촉발된 전쟁의 공포가 한동안 한반도를 휩쓸었다. ‘치킨게임’을 닮은 한반도 상황이긴 하지만 ‘전쟁 불사론’은 위험하다. 치킨게임은 약자가 손해 볼 것 없는 게임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군 복무기간 연장도, 군비확장도 아니다.  불의의 사태 앞에서 혼란을 연출한 ‘병역면제 정권’의 허점조차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포탄’ 해프닝을 조롱할 일도 아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문서 내용이 마음에 걸린다. 대북라인 고위당국자의 단선적인 대북인식, 한반도 평화에 대한 철학과 전략의 부재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일은 강물처럼 흐른다. 카오스이론이 MB에게 충고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느닷없이 태평양을 건너 대륙에 무서운 폭풍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 세상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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