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속보는 양날의 칼이다. 신속하게 소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설익은 내용을 전달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11월 17일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여자 49㎏급 경기에서 발생한 대만 양수쥔(楊淑君) 선수의 실격패 논란은 한국과 대만 국민의 감정대결로 이어졌다. 양수쥔은 ‘대만의 김연아’와 다름없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받는 선수이다.

유력한 아시안게임 금메달 후보이기도 했던 그는 9대0으로 일방적으로 앞서다가 경기종료 12초를 남기고 실격패했다.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TV 중계로 전해지자 대만 국민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자국 선수가 억울하게 패했으며, 뭔가 음모가 있을 것이란 의혹이 불길처럼 번졌다. 벌써 일주일이 지난 사건이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만의 반한시위 소식이 언론에 전해지면서 관심의 초점이 됐다. 첫 번째 반응은 왜 반한시위가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언론은 충분한 설명 없이 대만 국민이 태극기를 불태우고 한국 라면을 부수는 모습을 기사로 내보냈다.

대만에서 한국의 인기 아이돌 그룹인 ‘소녀시대’를 폄하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 국민의 반응도 격앙됐다. 한 대만 방송사가 이번 사건을 전하면서 “소녀시대의 사과도 필요 없다”고 언급한 게 화근이었다.

일부 대만 국민과 언론의 행동이 정도를 벗어났지만, 이를 전하는 일부 한국 언론 역시 정도를 넘어섰다. 뉴시스는 11월 19일 <소녀시대와 태권도가 무슨 상관?…미친 대만 언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뉴시스는 기사에서 “지난 2일 타이완 초시TV 연예 프로그램 ‘명운호호완(命運好好玩)’은 소녀시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국 여자연예인들의 성접대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거꾸로 한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대만 언론을 향해 ‘미친 언론’이라고 제목을 뽑은 행위는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일 뿐이다. 이런 형태의 언론보도는 잠깐의 쾌감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그 폐해는 심각하다. 대만에는 한국 교민이 있고, 대만과 무역을 하는 한국 기업도 적지 않다. 한국 내부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대만 일부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는 양국 국민의 정서적 반발심을 키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대만 일부 언론이 ‘선동보도’를 한다면 한국 언론은 거꾸로 ‘냉정 보도’를 해야 제3자의 동의를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사건은 대만 내부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일부 대만 정치인은 11월 27일 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후보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자국 국민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면 그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집권 국민당과 제1야당 민진당이 이번 사건을 선거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사자인 양수쥔은 “정치는 정치이고 체육은 체육이며 이는 두 가지 다른 일이다. 지금이 마침 선거 기간인데 정치와 체육을 함께 뒤섞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청할 대목이다. 대만의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게 된다면 양수쥔 실격을 둘러싼 사실관계와 타당성 여부를 냉정한 시각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대만 일부 언론 보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한국 일부 언론의 맞대응에서는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냉철함을 잃지 않는 태도, 언론 본연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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