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은 4년의 기다림이 빚은 결과물이다. 땀과 눈물의 결실은 풍성한 메달레이스로 이어졌다. 박태환의 쾌거, 장미란의 감동, 지소연의 웃음은 국민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중국 광저우의 ‘금빛 환희’는 악용될 수도 있다. ‘스포츠 열광’은 어느새 정치공포 예고신호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G20에 ‘올인’하던 방송사들이 G20이 끝나자마자 아시안게임에 ‘올인’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의제와 현실이 공론화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고 있다.”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는 지난 19일 <스포츠가 ‘국면전환’용인가?>라는 성명에서 방송사의 스포츠 올인 보도 위험성을 지적했다.

문화연대는 “언론이 아시안게임에 매진하는 동안 국회예산정국, 4대강 강행, 종편 선정 등 우리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사실과 현장은 가로막히고 있다”면서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선수들의 선전이 즐겁기는커녕 공공의 영역에서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한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아시안게임을 맞아 스포츠 뉴스가 홍수를 이루면서 정치 사회적인 쟁점들이 가려지고 있다는 우려이다. 스포츠를 정치적 목적에 활용한 예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S(섹스, 스포츠, 스크린)’ 정책이 대표적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수단이 훈련하고 있는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장미란 등 역도선 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올인, 사회의제 실종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스포츠 활용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어김없는 ‘정치적 활용’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11월 11~12일 열린 G20 정상회의에 정부 역량을 집중시켰다. 국격 상승은 물론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홍보에 나섰지만 결과는 의문이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2일 G20 정상회의 결과와 관련해 “우리가 원했던 특별한 성과가 없이 끝났다. 따라서 이 무대를 통해 위상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입지 확대는 되지 못했다.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G20에 쏟아 부었던 국력과 홍보에 비춰볼 때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언론의 시선은 아시안게임으로 급속하게 이동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G20 정상회의가 열린 12일 개막식을 열고, 오는 27일까지 보름에 걸쳐 이어지기 때문이다. 박태환, 장미란 등 유명선수들이 감동의 경기를 이어갔고, 야구와 축구 등 인기스포츠의 선전도 계속됐다.

대포폰 악재, 스포츠뉴스 구세주

청와대는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었다. 청와대는 최근 불법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됐고, 증거인멸 과정에 대포폰이 사용됐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정치적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원내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이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입을 열어야 할 때다. 군부독재식 공안통치 부활에 경악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이제는 사죄와 책임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 할 이번 사건은 정권이 두 번 세 번 바뀌고도 남을 정도로 엄중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야 5당이 ‘청와대 대포폰’ 특검 공조에 나서고,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 서울광장 농성에 돌입하는 등 정치쟁점화에 나서고 있지만, 여론의 동력을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언론과 국민 시선이 스포츠에 쏠려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청와대는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청와대 버티기’는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크다.  인기 스포츠 종목에서 대표팀 선전이 계속될 경우 국민 시선은 그쪽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금빛 환희’에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은 쪽은 청와대만이 아니다. KBS 이사회는 지난 19일 현행 2500원에서 3500원으로 수신료를 올리는 내용을 의결했다. KBS 이사회의 수신료 인상 타이밍은 기막혔다. 수신료 인상은 기본적으로 정부-여당의 구도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 결정을 내린 11월 19일은 ‘드림팀’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야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던 바로 그날이다. 또 이날은 한국 여자역도의 세계적인 스타 장미란이 투혼의 금메달을 따낸 날이기도 하다.

KBS 수신료 인상, 기막힌 타이밍

KBS는 이날 장미란 금메달과 야구대표팀 경기소식을 포함해 ‘뉴스9’ 메인뉴스부터 13번째 뉴스까지 아시안게임 소식으로 도배했다. 국민 시선이 스포츠에 쏠려 있는 동안 민감한 현안인 KBS 수신료 문제를 처리한 게 우연의 일치인지 따져볼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쏠쏠한 재미를 봤다. 정치적 악재와 관련한 여론의 시선이 분산됐고, 스포츠 선수들의 ‘쾌거‘는 정권 홍보 수단으로 활용됐다. 월드컵, 올림픽,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 국민 시선이 집중됐던 대형 스포츠 행사가 마무리되면 어김없이 청와대로 선수단을 불렀고, 언론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언론이 스포츠 뉴스에 집중할 때마다 사회의 주요 현안은 관심의 뒷전으로 놓였다. ‘금빛 환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언론인 셈이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아시안게임 언론보도와 관련해 “공영방송 메인뉴스도 국가주의 뉴스로 가고 있다. 정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뉴스는 ‘5공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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