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경향신문이 민주노동당의 북한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종북주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진보진영 전체가 찬반양론으로 갈려 진보 자격 논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경향신문이 보수진영의 색깔론 프레임에 갇힌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역매카시즘'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29일 민주노동당의 논평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북한 후계구도와 관련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면서 "북한 당대표자회가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에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1일 사설에서 "3대 세습이라는 명명백백하고 중요한 사안을 두고 비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하고 말았다"면서 "북한은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진보적 성향의 경향신문이 민주노동당을 이처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논쟁의 핵심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곧 진보적 가치의 포기이며 북한을 추종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느냐다. 경향신문은 "진보라면 3대 세습 문제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노동당은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도식적인 비판이 최선이 아니라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정희 대표는 "국가보안법 법정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고 이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대근 경향신문 위원은 "북한 지배세력의 이익 보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이익을 더 중시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다시 반박했다.

논쟁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대리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모적인 종북주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손호철 서강대 교수 등 진보 인사들이 경향신문의 비판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민주노동당이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옹호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북주의 취급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빚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유씨는 경향신문의 비판을 '진보적 색깔론'으로 규정했다.

역사학자 김기협씨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북한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왜 북한을 감싸주는 것이냐"면서 "지금의 북한 사정으로는 적합한 권력 승계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자체가 절대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런 태도야말로 정말 위험한 제국주의 논리"라고 덧붙였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평화와 통일을 중요 강령의 하나로 채택하고 정부 차원을 넘어선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경향신문의 주문처럼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경우 정책적 선택에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된다"면서 "이념적 커밍아웃이 북한 민주화의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없으며 이런 식으로 자기고백을 강요하는 건 독선적"이라고 지적했다.

유영주 언론연대 정책위원도 인터넷 신문 미디어스 기고에서 "지금 북한 인민의 삶이 행복한가 여부로 접근하면 세습은 사소한 문제로 평가될 수도 있다"면서 "민주노동당이 단지 북한의 권력을 의식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은 비판받을 일이지만 경향신문이 단지 세습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민주노동당을 비난하는 것은 한마디로 분에 넘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최형익 한신대 교수도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척 보면 안다는 이야기인지 외적으로 표명되지 않는 의사를 행간을 읽어서 사람의 의식상태를 단정하는 것은 일종의 사상검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면서 "침묵하면 모두 동조자고 진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경향신문의 민주노동당 비판은 '역매카시즘'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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