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매출액이 26억 유로에 이르는 독일 언론미디어 악셀쉬프링어(Axel-Springer)의 CEO 되프너(Döpfner)는, 지난 2010년 4월 아이패드(iPad)가 언론기업에 선사할 사업 기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Every publisher in the world should sit down once a day and pray to thank Steve Jobs that he is saving the publishing industry. (전 세계 언론인 또는 언론기업은 하루에 한 번 무릎을 꿇고, 언론 산업을 구원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에게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한다.)”

사실 와이어드(Wired)의 아이패드 매출실적을 살펴 본다면, 잡스에 대한 감사 기도가 과한 것은 아니다. 와이어드는 4달러 99센트 가격의 아이패드 앱을 지난 6월 약 10만 개 가량을 판매하였다. 반면 종이잡지 와이어드 6월호는 74000 부가 팔리는데 그쳤다. 물론 종이판과 아이패드판 와이어드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품이다. 아이패드 와이어드에는 동영상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요소와 다채로운 인터액티브 양식이 넘쳐나고 있다. 더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종이잡지(magazine)’ 와이어드가 아니다.

   
  ▲ 2010년 1월 마지막 주 The Economist 표지.  
 
그렇다면 와이어드처럼 소비자로부터 신뢰받는 언론 콘텐츠가 아이패드에 적합한 ‘형식의 혁신’을 이뤄낸다면, 굳게 닫힌 소비자의 지갑 문이 열릴 수 있을까?

와이어드는, 아이패드로 대변되는 태블릿(Tablet)에서 유료화에 성공한 모델로 그 ‘일반성’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NO, NO다.

이러한 부정의 일차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종이잡지 와이어드는 미국이라는 지역시장에 제한되어 있지만, 아이패드 앱(App) 와이어드는 현재 약 3백 만에 이르는 전 세계 아이패드 얼리어답터 소비자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2) 종이잡지 와이어드는, 이미 웹에서 무료로 제공된 콘텐츠가 담겨 있지만 매우 뛰어난 재구성에 기초한 이른바 ‘지속가능한 미디어 소비 문화’를 창출한 훌륭한 예에 속한다. 전 세계에 최소 10만 명에 이르는 와이어드 광팬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아이패드에 걸맞는 와이어드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말해, 아이패드 와이어드 유료 소비자는 결코 일반화시킬 수 없는 소비자 집단에 속한다. USA Today가 지난 7월로 예정했던 아이패드 앱 유료화 도입을 연기한 것도 이와 맥이 통하는 이야기다(출처보기).

그러나 아이패드를 위시한 태블릿에서 유료 뉴스 콘텐츠가 근본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전통 웹(Web)에서와 동일하게 모바일 웹 또는 모바일 앱(App)에서도 (뉴스) 생산(production)과 (뉴스) 유통(distribution)이 분리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시장원리의 핵심은, 네트워크 기반 노동분업이다. 생산, 유통, 소비를 포함하는 일렬의 생산 과정 또는 노동 과정이 매우 잘게 분절화되고 있으며 이 분절 단위들은 수많은 ‘링크(Link)’를 통해 새로운 가치생산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분업질서가 어떻게 뉴스 콘텐츠의 유료화를 아이패드에서도 방해하고 있는지 아래에서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콘텐츠 유통 서비스, 플립보드(Flipboard): 알고리즘의 승리

아이패드 등 태블릿을 통해 뉴스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다는 기대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서비스가 지난 7월 20일 플립보드(Flipboard)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스스로를 소셜 매거진(Social Magazine)이라 이름붙인 플립보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지인들이 추천하는 글, 사진, 동영상을 자동으로 깔끔하게 편집해서 보여준다. 또한 와이어드, 뉴욕타임즈, 이코노미스트,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 등 다양한 콘텐츠가 사용자들의 개인취향에 따라 선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아이폰 또는 아이패드 멀티터치(multi-touch)의 효용을 극대화한 ‘종이를 넘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요소- 이를 플립(Flip)이라 부른다-가 곁들여져 있다.

잡지 레이아웃과 유사하게 배치된 개별 콘텐츠는, 제목, 짧은 요약, 그리고 관련 사진이 함께 보인다. 또한 개별 콘텐츠를 추천한 사람의 트위터 또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 함께보인다. 바로 콘텐츠와 신뢰가 결합되는 지점이다.

플립보드 사용자가 개별 콘텐츠의 완전한 소비를 원해 해당 글, 사진 등을 클릭하면, 네이버 뉴스캐스트처럼 해당 콘텐츠를 생산한 웹사이트로 이동하게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개별 사용자는 자신의 관계망 속에서 뉴스 소비를 즐길 수 있게된다.

여기서 책장을 넘기는 듯한 플립 기능은, 플립보드 또는 이와 유사한 서비스가 콘텐츠 유통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를 논할 때 방해가 된다. 소비자의 눈을 빼앗기 위한 기능-이를 눈사탕(Eye Candy)라 칭한다-에 (뉴스) 콘텐츠 제작자가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진자의 여유: 구글의 패스트 플립(Fast Flip)”을 참조하길 바란다.

플립보드가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성과는, 태블릿에서 (뉴스) 콘텐츠 유통 방향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인기 앱 중 하나인 Pulse가 전통적인(!) RSS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플립보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축약 URL’을 실시간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플립보드 개발팀은 RSS를 뛰어넘는 분석엔진(Parsing Engine)을 개발했다.

또한 즐겨찾기(favorites)를 통해 개별 소비자의 관심을 얻은 트윗(tweet)을 제공하는 팔로워(follower)의 추천 링크를 시각적으로 크게 표시하는 기술, 중복된 (뉴스) 콘텐츠를 걸러내는 기술, 트위터나 페이스북 전체에서 최근 강력하게 인기를 끌며 유통되는 ‘링크’가 개별 사용자에게 나타날 경우 이를 보다 먼저 보여주는 기술 등 플립보드는 다양한 시맨틱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플립보드 서비스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초기 열풍’을 넘어 소비자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플립보드가 선보인 RSS를 뛰어넘는 새로운 (뉴스) 콘텐츠 유통 기술은 다양한 ‘유사 서비스’를 탄생시킬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플립보드는 아이패드 등 태블릿에서 (뉴스)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첫번째 시도이며, 플립보드를 잇는 다양한 유통 혁신이 예상된다.

콘텐츠가 왕이다? 생산과 유통이 하나일 때만!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플립보드는 (뉴스) 콘텐츠의 유통 전체를 담당하지 않는다. (뉴스) 콘텐츠는 언론기업, 블로거, 그리고 트위터 사용자 스스로 등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으며, 생산된 (뉴스) 콘텐츠의 유통은 트위터 및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일차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플립보드는 이러한 디지털 분업질서에서 (뉴스) 콘텐츠의 유통을 돕는 ‘유통 지원기능‘을 수행한다. 이 단위 과제를 위해 플립보드는 105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 언론기업 중 어느 기업이 약 115 억원에 이르는 자본을 뉴스 콘텐츠 ‘유통’에 투자할 수 있을까? 태블릿을 통해 뉴스 콘텐츠를 제작하여 유통시키려는 언론기업 중 어떤 기업이 유통 혁신을 이끌고 있는가? 소비자 눈을 사로잡는 눈사탕(Eye Candy)으로는 소비자 지갑을 열기 힘들다. 더욱이 플립보드의 눈사탕이 보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뉴스) 콘텐츠 영역에서 플립보드를 시작으로 언론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고 있다. 언론기업 입장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1) ‘콘텐츠가 왕이다’는 신념을 버려야 한다. 이 표현은 생산과 유통이 하나이던 시절, 콘텐츠 생산자가 유통에 대한 확실한 지배력을 소유하고 있던 시절에나 통했던 말이다. 현재형으로 말한다면, 신문산업에서 여전히 ‘콘텐츠가 왕이다’라는 표현은 유효하다. 네트워크 기반 노동분업 질서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누구의 말 처럼, “차별화된 콘텐츠 확보와 콘텐츠 조직화”, “콘텐츠 재목적화” 등의 노력도 중요하다. 다만 다시 찾고 싶은 “콘텐츠 업계의 힘”은 콘텐츠 ‘생산’에 제함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통 능력 없는 생산자가 유감스럽게도 전체 가치창출구조에서 힘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 시장지배력을 다시 가지고 싶다면, 콘텐츠 생산과 별도로(!) 디지털 콘텐츠 유통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2) 시대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저작권법을 아날로그 시대 방식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 외부 유통 업체가 자사의 RSS 피드를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검색 서비스가 자사의 기사를 검색할 수 없도록 막으며, 또는 포털 등 콘텐츠 유통업체에 ‘특별세금’을 징수하도록 국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엉뚱한 이야기로 들리는가? 클레이 셔키(Clay Shirky)가 다양한 곳에서 이러한 전통 미디어 기업의 역사적 저항 사례를 증명하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힘있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열려있는 뉴욕타임즈(NYT.com)는, 다른 한편으로 ‘힘없는’ 유통 서비스 업체를 거칠게 협박하는 이중적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루퍼트 머독은 ”태블릿이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eration)의 미래다!”라며 아이패드를 ‘약속의 땅’ 에 들어가는 증표로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소유한 언론기업에게나, 척박한 땅에서 고전하는 대다수 한국 언론기업에게나, 언론기업이 기득권을 버리고 (특히 콘텐츠 유통영역에서) 획기적인 기업혁신을 이뤄내지 않는다면, 아이패드로 대변되는 멀티터치 태블릿이 그들 언론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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