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책이 왔다. 많다. 택배 아저씨가 두 손으로 잡고 끙끙대며 힘겹게 갖다 주신다. 모두 합쳐 그런 커다란 상자 두 어 개 분량이다. 문화부는 이 책들을 놓고 회의를 한다. 이번 주 출판면에는 어떤 책을 밀어올리고 어떤 책을 작게 쓸지, 어떤 책은 넣고 어떤 책은 뺄지 그 짧은 회의시간에 결정해야 한다.
서울 쪽 신문사의 방식은 잘 알지 못한다. 부산에 있는 국제신문의 경우 서울의 도서 유통업체가 일주일 동안 나온 신간을 몰아서 주 1회 보내준다. 여기에 출판사들이 따로 보내주는 책 그리고 부산 등 지역 출판사들이 낸 책이 있다. 이 책들을 갖고 토요일 출판면을 꾸려야 한다.
책이 한꺼번에 오니 그 책들을 검토할 시간은 충분치 않다. 기자생활 15년 중 9년째 문화부에서 묵새기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식으로든 출판면에 관여했고 지금은 출판면 책임자 격이다. 때로 그 경험에서 온 감을 믿는다. 그런 감이 좋은 운과 만나면 기쁘다.
두 달 쯤 전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책 ‘간송 전형필’을 받아들었을 때, 이 중요하고 위대한 인물의 삶을 정면에서 다룬 대중서를 그간 거의 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크게 틀린 판단이 아니었다. 이럴 땐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출판면 회의 자리에서 자신 있게 면톱으로 밀자는 의견을 냈다. 그 책을 읽은 뒤 기사로 쓴 문화재 담당기자 또한 만족스러워했다. 이럴 때 남모르는 기쁨이 있다. 이런 날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뭘 면톱으로 삼을지 고민을 거듭한다.
▲ 국제신문 5월15일자 14면. | ||
2번 기준은 다양성이다. 같은 색상으로 지면을 도배하는 행위는 신문에겐 지옥이다. 3번 기준은 독자의 접근성과 꼭 써야할 필요성 사이에서 하는 갈등의 어딘가 지점에 있다. 쓰고 보니 장황해져 버렸는데, 이런 기준을 매번 지켜낸다기보다는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렇게 해서 책을 정하면 일단 한숨 돌리는 건 맞지만 사실 상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읽어야 한다. 완독이어도 좋고, 완독이 아니어도 좋다. 비중이 높게 책정된 책은 그 책을 맡은 기자가 어느 정도 내용에 대한 판단이 서거나 적어도 쓸 거리를 도출해낼 정도까지는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난주에도 후배기자가 “선배, 이 책 읽다가 어려워서 토하는 줄 알았어요”하고 나를 책망했다. 새벽까지 읽었는데, 방향이나 수준, 내용이 애초 판단과는 달라 뒤늦게 책 자체를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다. 거의 매일 밤늦게 또는 새벽 일찍 들어가는 내가 모처럼 일찍 집에 가면 어머니는 묻지도 않고 “오늘 책 읽는 날이가?”하고 인사한다. 친한 이들 중에는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날엔 아예 전화를 하지 않거나 전화했다가 “아, 맞다! 니 오늘 책 보는 날이제?”하고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내겐 더 어렵고 안타까운 문제가 있다. 저자와 그 조력자들이 열심히 쓰고, 출판사가 애써 만든 책들 가운데 상당수가 제한된 지면에 아예 선택받지 못하거나 작게 소개된 뒤 한 쪽에 쌓이는 걸 보는 일이다. 출판사나 저자들이 우리 지면이 독자나 시장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보든 적거나 없다고 판단하든, 솔직히 그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만들고 마케팅하는 건 출판사 일이고, 그 중 우리에게 맞는 걸 골라 독자에게 소개하는 건 우리 일일 뿐인 거다.
▲ 조봉권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 | ||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지하철에서 얼마 전 단 몇 줄로 소개하고 그친 소설을 읽으며 “이게 그렇게 넘어가고 말 책이 아니었는데…”하고 혼잣말했다.
아마 비슷한 일을 하시는 모든 분들의 숙명 같은 것 아닐까도 싶다. 그래도, 책과 독자를 연결시켜주는 줄 위의 어딘가에서 매일 헤매는 이 일은 고맙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