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사들은 앞 다퉈 선거결과 예측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선거의 결과는 어쨌든 언론기관들의 여론추이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국내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선거결과에 대하여 사전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셈이 됐다. 선거가 끝난 이제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지 않은 숨은 여론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어쨌든 언론기관들은 사실보도, 객관적인 팩트 포착에 결정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낭패를 본 것은 언론기관들에 그치지 않는 모양이다. 청와대를 비롯하여 주요 관련기관에 여론추이를 보고해 온 다양한 정보채널들도 하나같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에 낙관적인 결과만을 보고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허위사실” 보고가 이루어진 셈이다.

선거예측은 추정일 뿐, 객관적 사실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측 역시 보고 당시의 여론이 그렇다는 분석에 입각한 것이고, 통계학적으로 불과 며칠 사이에 엄청난 편차의 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는 것을 전제로 추정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사정이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허위인가? 국가기관과 언론기관은 과연 사실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객관적 사실은커녕, 특정 정치세력의 세몰이에 나서는 게 언론의 사명인 양 평소에도 숱하게 여론조사를 빌미로 허위사실을 남발하거나 자기 보도내용조차 뒤집기를 밥 먹듯 했던 일부 언론들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했다고 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허위인지 아닌지 결국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대부분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산다. 국회 5공화국 청문회가 있기 전까지 우리에겐 “광주민주화운동”은 없었으며 “폭도들의 광주사태”만 사실로 존재했다. 법원의 무죄 재심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32년간, 형장에서 스러져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주역들은 엄연히 우리 사회가 배척하는 “빨갱이들”이었으며 그들의 후손조차 “빨갱이 자식”임을 면할 수 없었다.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만 해도 국내 보유 외환이 거의 바닥이 드러나기 전까지 경제부처 수장의 말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여전히 “펀더멘털이 튼튼한 경제”였다. 우리는 아직도 4대강 사업이 “홍수 피해예방과 수질개선”을 위한 사업인지 “변형된 대운하사업”인지 무엇이 허위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산다.

사실에 직접 관여하는 정부기관이나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해서 사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언론기관도 이처럼 허위사실 유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 그만한 특권도 없고, 사실 접근이나 확인에 소요되는 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일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사실 확인의 책임”을 지라거나 “허위사실을

   
  ▲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유포하면 안 된다”는 건 쉽게 말해서 “말하거나 글 쓰지 말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아직 사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데, 네티즌의 글이 정부발표와 다르다 해서 “허위사실”이라고 재단하는 것도 섣부르다. “허위사실”이니 삭제하거나 접근차단을 하라는 것은 더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표현이 제약을 받고, 위축되면 결국 국가나 언론도 제 기능을 못하고 그릇된 판단과 무책임한 행동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이젠 시민의 말과 글을 경청할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